복통 그 가볍지 않은 고통

복통은 가볍지만, 그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의사를 만나야 한다.

by 닥터 키드니

복통. 복통은 흔하다. ‘배 아프다’는 말 한마디로 집단 모임에서 열외 대상자가 되고, 학교 가기 싫을 때 쉽게 핑계 대는 꾀병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태어나 처음 겪는 복통은 배앓이로 표현된다. 영아 산통이라 불리는 배앓이는 생후 3개월 미만의 어린 영아들에게 나타난다. 말 못 하는 아기들은 난생처음 경험하는 복통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게 울고 주먹을 쥐고 다리를 굽히며 배에는 힘이 잔뜩이다. 다 큰 성인은 ‘배 아프다’라는 말로 가볍게 증상을 표현하지만, 온몸으로 표현하는 복통은 이렇듯 실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살면서 한 번쯤 아니, 이미 여러 번 겪었기에 우리는 복통을 가볍게 여기곤 한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오늘 나의 복통은 아침 먹기 전부터, 완벽한 공복 상태부터 시작됐다. 어제도 배가 아픈 환자를 봤고,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던 그 복통이다. 나 역시 첫 만남 일리 없는 고통이지만, 복통은 만날 때마다 낯설다. 이번 통증은 여느 때와 다르다. 배꼽 주위로 꼬이는 듯한 양상의 이 통증은 전에 없던 새로운 통증이다.


따뜻한 이불에 누워 ‘엄마 손은 약손’을 하면 곧 사라질 것만 같다. 하지만 작은 이불에 눕기에 나는 너무 커버렸고, 두툼해진 뱃살을 들킬까 봐 배를 드러내기가 부끄럽다. 출근을 위해 언제까지 이불을 말고 누워있을 수만은 없었다. 급하게 타이레놀 두 알을 삼켰다. 먹자마자 통증이 잦아지길 바란다. 하지만 통증은 여전히 지속된다. 아직 약효과가 나타날 시간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멈추지 않는 통증은 불안하기만 하다.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 신경은 온통 복강 내에 쏠려있다.


복통에 점수를 매긴다면 5점 정도는 거뜬하게 줄 수 있을 것이다. 복통이 있으면 내 머리는 복잡해진다. 생각해야 할 질환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식탁에 앉아서 지금 복통의 원인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나는 복통이 다른 신체의 어떤 통증보다 두렵다. 내 의사 면허증의 연차와 그 질병의 병력이 같기 때문이다. 이 복통의 근원이 나를 지겹도록 따라다니고 있는 그 병 때문은 아닌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마지막 재발이 4년 전이었고, 더 이상의 재발은 안된다고 했다. 최근에는 약도 잘 먹었고,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어서 병의 재발을 의심하기는 힘들었다. 재발은 제발 아니기를 바랐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복통 원인은 흔하디 흔한 장염이다. 어제 먹었던 음식을 떠올렸다. 점심과 저녁에 먹었던 도라지, 냉이, 고사리나물들, 돼지갈비, 굴전, 미역국. 많이도 먹었다. 명절 이후라 어느 때보다 풍성한 식탁이었다. 의심이 될만한 것들을 되짚어보지만 마땅치 않다. 같은 음식을 먹은 친정 엄마나 남편은 멀쩡한 걸 보면, 아무래도 죄 없는 음식을 탓할 수는 없었다.


지난 1년 내내 2달에 한 번씩 걸렸던 방광염을 떠올렸다. ‘그렇지. 나는 꼭 방광염의 시작이 복통이었지.’ 소변 볼 때 통증이 있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으면 의사는 방광염을 의심한다. 하지만 나는 어김없이 아랫배가 먼저 아팠고, 뒤 이어 한두 시간 내에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지난 1년 동안 방광염에 시달렸다. 방광염이라면 항생제를 먹어야 하는데, 정말 방광염인지 확실하지 않다. 항생제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며 화장실에 가본다. 소변이 잘 나오는 걸로 봐서 방광염은 아닌 것 같다.


혹시 그날은 아닌가 달력을 확인했다. 화장실에 가서 직접 두 눈으로 보고도 확신할 수가 없다. 자궁내막증으로 석 달 전부터 호르몬제를 먹고 있는데 약을 먹은 이후로 매일이 그날인 거 같은 출혈이 있기 때문이다. 이 호르몬제는 생리통과 생리량을 줄여주는 약이라고 했다.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이 복통이 생리통 때문이라면 약효가 전혀 없다는 소리다. 호르몬제를 먹기 전에도 이렇게 아팠던 적은 없었기 때문에 생리통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게실염을 의심해본다. 2년 전 오른쪽 아랫배 통증으로 응급실에 갔었다. 당연히 충수염인 줄 알았지만 CT를 찍어보니 게실염이라는 뜻밖의 진단명을 붙이게 되었다. 재발을 잘하는 게실염이지만, 이번에는 위치가 다르다. 게실염을 진단받았을 때는 오른쪽 아랫배의 통증이었는데, 이번에는 배꼽 주위의 통증이다. 만약 게실염이라고 하더라도 금식하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금식은 내가 싫다. 금식은 안되기에 게실염은 아니어야 한다.


설마. 누가 땅을 샀나 생각해 보지만, 최근에 땅을 산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통증을 느끼며 차를 몰고 출근을 했다.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시선을 분산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복통은 여전히 나를 약 올렸다. 나 아직 끝난 거 아니라며 자꾸만 쿡쿡 찔러댄다. 이렇게 기운 빠지는 상태로 누구를 진료할 수 있을까 싶다. 병원에 도착해 대기실을 힐긋 보니 다행히 나를 기다리는 환자는 없었다. 배에는 따뜻한 핫팩을 올려놓고, 주전자에 물을 끓여 마시며 진료 준비를 했다. 다른 일에 집중하는 사이 복통의 횟수는 줄어드는 것 같다.


완벽하게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굶어야 한다. 따뜻한 물을 마시며 복통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정신없이 환자를 보고나니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아침도 굶었으니 배가 고플 만도 했다. 마침 간호사가 꽈배기를 가져왔다. 기름으로 튀긴 설탕 가득 꽈배기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한입 베어 물면 행복할 것 같다. 바사삭. 조심스레 한입 두입. 역시 맛있다. 다행히 더 이상 배도 아프지 않았다. 이렇게 통증의 횟수가 줄어들고, 강도가 약해지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기운이 차려진다. 아침에 겪었고 분명하게 실재했던 고통은 거짓말처럼 없었던 일이 된다.


제 배가 왜 아팠을까요?


복통은 가볍고 흔한 내과 증상 중 하나로, 그 원인은 다양하다.

가장 흔한 것은 장염이다. 장염은 복통과 함께 구토 혹은 설사가 동반되기도 한다. 장염의 원인은 다양한데 전날 먹은 음식, 스트레스 등이 영향을 준다. 같은 음식을 먹었어도 개인마다 가진 장 예민도에 따라 고통의 크기가 다르다. 장염으로 인한 복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고, 하루 이틀 내에 완전히 사라진다.


많은 현대인들은 출근하기 싫을 때 배가 아프다. 소화기 증상을 호소하며 내과를 방문하는 환자의 30%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다. 이들에게 복통은 하루 이틀이 아니며, 복부 팽만감, 설사, 변비 등의 증상이 동반된다. 면접을 앞두고 있거나 시험 직전 등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상황에서 나타난다. 중요한 상황이면 꼭 나타나는 복통은 불안하고 당황스럽다. 장의 예민도를 감소시키는 약이나 불안을 줄이는 약을 사용하여 증상을 조절할 수 있다. 이들에서의 복통은 근본적인 원인인 스트레스를 제거하면 사라진다


한 번쯤 배 아픈 사람들이 깨닫듯 복통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는, 당장 특별한 처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단 배가 아프면 아무것도 먹지 않아야 한다. 배를 따뜻하게 하고 배고픔이 느껴지기 전까지 금식을 유지한다. 복통의 원인이 확실하다면 타이레놀과 같은 진통제를 먹어 볼 수 있다. 하지만 복통의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 진통제 사용은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공복을 유지하면서 따뜻한 물 정도는 시도해볼 수 있다. 배도 아프지 않고, 공복감이 느껴지면 슬슬 허기를 채워 본다. 이때 음식은 자극적이지 않은 형태가 좋다.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고 평범한 식사를 시도한다. 식사 후에도 배가 아프지 않고 일상생활로 돌아갔다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는 없다. 원인은 뚜렷하지 않지만, 음식, 스트레스 등으로 생긴 가벼운 복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몇몇의 경우에 그 복통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의사의 존재의 이유는 이 가볍고도 흔한 복통을 심각한 질환과 분리하는 데 있다. 의사를 만나지 않고는 그 가벼움을 증명할 길이 없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귀찮더라도 병원에 가는 것을 미뤄서는 안 된다.


첫 번째. 복통이 흔한 소화기계 증상 (설사, 변비, 복부 팽만감 등) 이외에 또 다른 증상이 추가될 때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배가 아파요.'로 시작하는 아이들을 위한 동요 - 병원놀이에서도 '배 아프고 열이 나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복통에 더해 열이 나거나, 혈변, 검은 변이 있거나 혹은 혈뇨나 소변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복통은 더 이상 가벼운 증상이 아니다. 복통과 함께 다른 증상이 동반된다면 꼭 의사를 만나야 한다.


두 번째.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복통이다. 가벼운 복통은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고, 어느덧 우리는 고통을 잊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복통이 호전되지 않고, 하루 한번 이상 복통이 생각난다면, 그건 더 이상 가벼운 고통일 수 없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하면 적극적으로 그 원인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상생활의 기본은 먹고 자는 일이다. 복통으로 인해 먹는 것이 힘들고 배가 아파 잠을 깰 정도라면 반드시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여기에 개인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여성의 경우 산부인과적 질환으로 인한 복통일 수 있고, 과거 복부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경우에는 장의 일부가 막히거나 마비로 복통이 온 것일 수 있다. 이외에도 복통의 위치도 중요한데 오른쪽 아랫배는 충수염 (맹장염), 오른쪽 윗배의 통증은 담낭염을 의심한다. 이런 복통은 시기를 놓치면 위험해질 수 있다.


가벼운 복통과 가볍지 않은 복통. 의사는 진찰과 검사로 복통의 무게를 가늠한다. 그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일단 의사를 만나야 한다. 병원에 갈까 말까 고민이라면, 가시면 된다. 대부분 괜찮겠지만, ‘괜찮다’는 소견은 의사에게 들어야 할 소리다.


복통으로 이른 아침부터 의사를 찾은 환자. 내가 내게 말한다.


“ 오늘 있었던 복통의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낼 수는 없지만, 지금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복통이 사라지지 않고 반복적으로 나타나거나, 다른 증상이 동반될 때, 꽈배기를 입에 물 수 없을 정도로 일상생활이 힘들다면 지체하지 말고 다른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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