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뿔고래와 유니콘

뿔을 키우면 유니콘이 될 수 있다

by 빵집알바생

외뿔고래는 마치 바다의 유니콘 같다. 외뿔고래의 이빨이 마치 유니콘의 뿔처럼 나 있는 생김새가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쉬이 접하지 못해 신화에 나오는 동물과 비교되는 듯하다. 외뿔고래는 빙하 녹은 물이 조용히 바다로 흘러 떨어지는 곳을 좋아한다. 기후 변화로 인해 빙하가 더 많이 녹게 되면, 그때쯤이면 외뿔고래의 습성을 알 수 있을까. 이런 외뿔고래를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가 사건들을 해결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간간이 보고 자폐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좋아하는 고래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 중 특히 외뿔고래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이유는 우영우 변호사가 본인을 낯선 흰고래들 사이에 있는 외뿔고래에 비유하고 자신의 삶을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다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그 장면에서 주인공이 특히 더 멋져 보였다. 마지막 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이어서도 있겠지만 몇 년간 잃어버린 수첩이 기억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 내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그 사람에겐 내가 속하고 싶은 직군을 한 단어로 이야기했지만, 속으로는 하얀색 수첩 모퉁이에 써놓은 글을 떠올리고는 했다. 한국과 필리핀을 오고 가는 여덟 번의 전학 생활이 동기가 되어 내가 만나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각각의 삶이 가치 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빵을 먹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빵에 발라 먹는 버터만 줄이면 되겠지 생각하듯, 그러한 수첩 또한 잃어버릴 때가 있었다.

변명하자면, 다른 모든 사람 중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마저 가치 있다는 것을 표현해주는 사람이 되는 게 맞는 것일까라는 고민과 어떻게 싫어하는 사람한테까지 그렇게 해야 하냐고 소리 지르는 것만 같은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머리를 채운 나머지 수첩의 위치가 기억나지 않았다. 외뿔고래에 관한 대사를 들은 뒤, 아차 싶었다. 나의 이상향과 대비되는 좀먹는 생각들이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하얀색 수첩이 때 타는 것만은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이 제공하는 시간과 가능성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런 생각은 그만두어야 했다.

외뿔고래가 아무리 유니콘을 닮았다고 하더라도 생김새만으로 이를 이상하다고 정의 내려 우영우 변호사와 동일시되진 않았을 것이다. 외뿔고래 중 ‘다른 고래 무리’에 섞인 외뿔고래였기에 주인공이 이에 자신을 별나다고 비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고래 무리’, 자기와 맞는 환경에 소속돼 있다고 해서 별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별종(別種)은 이보다 더 쉽게 정의되는 것 같다. 우리는 같은 외뿔고래끼리도 따져보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기와 같은 종(種)의 무리와 같이 다니는 흰고래도 타(他) 흰고래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생물이 저마다 다르듯, 하물며 우리 인간들도 모두 다르고 어딘가는 이상하다. 이런 사실은 억지로 이해할 필요 없이 생명과학의 일부처럼 그냥 인지하고 넘어가면 되는 정보에 불과한 것이다. 둘러 여기까지 왔지만,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 그 사람이 가치 있다는 것을 표현할까 말까를 고민할 시간에, 싫어하는 사람을 이해할 시간에 이를 생명과학의 정보처럼 인지하고 적당히 별나고 이상하게 잘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고민으로 인한 시끄러운 심장 소리가 머리를 채우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심장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정보로 이를 받아들인다면 하얀 수첩은 더는 잃어버리기도 힘들 것 같다.

기후변화는 빙하를 녹게 한다. 책 [팩트풀니스]의 저자가 세계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질문하면 사람들은 침팬지보다 높은 오답률을 낸다. 그중 거의 유일하게 인간이 높은 정답률을 가지고 있는 문제가 기후변화 문제인 만큼 이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큰 문제임은 틀림없다. 해결할 수 없어만 보이는 이러한 커다란 상황조차 마냥 바다의 유니콘 같았던 외뿔고래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을 해결해줄 수 있게 됐듯, 항상 나쁜 상황이 나쁜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전하고 싶다. 나쁜 상황을 넘길 수 있다면, 당신의 머리에서는 그 상황보다 더 큰 상황을 버티게 해주는 뿔이 자라지 않을까. 삶은 마냥 버틸 수 없는 일들의 연속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항상 이유가 있길 마련이고, 그러한 이유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계속 각자의 방법으로 뿔을 키워나가면 된다. 뿔이 충분히 자라게 될 때 즈음 그때 누군가는 외뿔고래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신화 속에 나오는 유니콘에 비유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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