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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Jul 15. 2024

여전했다.  나 없이도.

몇 번을 뒤척였는지 모르겠다. 십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추고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수없이 깬 뒤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잠을 잔 건지 도통 모르겠으나, 이건 알겠다. 난 새벽에도 여전히 불안했다.

무엇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앞설 때마다 조바심과 불안이라는 쌍둥이가 방문했다. 문을 꼭 닫아두었건만 틈 사이로 몸을 유연히 비집고 들어와 샐쭉한 인사를 건넸다.

"안녕? 우리 또 왔어."


전혀 반갑지 않은 두 명의 친구를 되돌려 보낼 순 없다. 그저 또 와 버렸냐는 한숨과 함께 동고동락할 수 밖에. 어쩜 너희는 이리 달갑지 않은 표정에도 불구하고 두 다리를 뻗었는지. 가장자리로 빗겨나 그런 너희가 물러나기를, 아니 물러나 주기를 바라며 쭈그릴 뿐이다.


무작정 일어나 몇 개월 만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나갔다. 잘 뛰지 못하는 몸뚱어리지만 뛰는 사람을 동경한다. 달릴 때 떨리는 허벅지 근육이 멋있고, 질주하는 모습에 덩달아 뛰고 싶은 욕망이 든다. 현실은 무거운 지방을 달랑달랑 달고 헉헉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언제 멈출까를 생각하지만, 그래도 난 그들의 숙련된 달리기를 사랑한다.

뛴다. 그저 뛴다. 생각을 정리할 목적으로 나왔건만 아무 생각 없이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을 구를 뿐이다.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호흡이 거칠어지고, 팔과 다리가 무거워 속도를 늦추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5분, 10분, 15분이 넘어가자 더 이상 내 정신이 아니다. 그저 살기 위해 심장 박동이 최대치로 펌프질할 뿐.

불안, 뛰는 동안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다.

© unsplash

아드레날린 폭주 기차가 지나가고 집을 향했다. 몇 개월 전보다 햇빛은 찬란했고, 공기는 이미 데워져 후끈했다. 아마 오늘 아침도 무척 더울 것이다. 계단을 내려오자 각자 하루를 시작한 분주한 그들이 보였다. 무심하게 가방을 둘러메고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이. 주말 동안 쌓인 재활용을 정리하는 이. 이른 새벽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이. 조용한 소란스러움을 바라보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들은 여전했다.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단지 내가 없었을 뿐.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지속임을 그들은 유지했다. 헬스장에서 마주친 사람들도 마찬가지. 나처럼 멈추었을 거로 생각했던 안일함에 뒤통수가 얼얼했다. 똑같은 신발을 신고, 익숙한 운동복을 입고 자신의 루틴대로 운동하고 있었다. 순간 눈이 마주치자 민망함은 내 몫이었다. 어디 못 올 곳이라도 온 듯,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 고개 숙이고 종종걸음쳤다.  

© unsplash


매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 그 일상이 7번 반복되면 일주일, 30번 남짓 되면 한 달, 365번 반복되면 일 년이다. 365일의 평균값을 구해 하루를 그려본다. 그 작은 무게가 쌓여 한 해가 된다. 그러니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상의 무게다. 선택하는 절댓값이 모여 그 사람을 나타낸다. 가령 몇 시에 기상하는지, 아침 식사는 무엇을 먹는지, 독서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운동을 하는지, 혼자 있는 시간의 비중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따라서 우리는 보통의 날을 우습게 여기지 말고 단단한 일상의 근력을 키워가야 한다. 하루의 조각들이 모여 근육이 쌓이면 절대 우습게 볼 수 없다.

평범한 하루가 쌓여 가볍게 찢어지지 않을 힘을 길렀다면 불안과 조바심이 세찬 입김을 불어도 우리의 단란한 하루는 무너질 수 없다. 하물며 조금 무너졌더라도 금세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또 하루를 살아내고 방문을 기꺼이 열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내 정신건강을 위해 근력을 쌓아야겠다. 강한 인내심을 갖고 보통의 나날을 믿어 볼 수 밖에. 난 언젠가 해낼 것이니깐. 해내는 날이 올 테니깐. 그 기적은 다름 아닌 일상의 근력일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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