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뜨거울지 알 수 없는 햇살의 기세에 눌려 터벅터벅 귀가한 뒤, 아이들 소음을 배경 삼아 집을 치운다. 숟가락에 붙은 밥풀때기를 닦고, 오전에 돌려놓은 빨래를 너는데 몸이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온 듯 축 늘어진다. 누적된 피로가 슬슬 몰려오더니 생전 처음 아이들을 뒤로하고 낮잠을 잤다. 잠시 뒤, 핸드폰을 보니 벌써 흐른 30여 분. 노곤한 잠결 속에서 아이들과 얘기를 나눈 듯도 한데 이젠 정말 일어나야만 한다. 주춤거리며 침대를 짚고 다시 싱크대 앞에 선다. 이제 방 좀 치우고 오늘 해야 할 공부를 하자는데 도통 움직임이 없는 그들. 식재료를 꺼내며 목소리가 차츰 올라가자 그제야 굼뜨게 치우는 둥 마는 둥 한다. 웃고 떠들다 서로를 향해 "왜 나만 치우냐"를 외치더니 결국 엄마의 마지막 데시벨이 정점을 찍고 나서야 문제집의 첫 장이 넘어간다.
늘 그랬듯 쌀을 씻으며 생각한다.
지금 난 어떤 모습일까. 엄마의 무색무취 표정이 꼭 직무 유기인 듯한 피곤한 삶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따뜻한 눈 맞춤 속에 재잘거리는 아이를 봐주다가도 이내 썰물 빠져나간 휑한 뻘이 되어버린 표정에 마음마저 황폐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노력해야 하는데.
아이들 교육도 있지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라도 책과 강연을 살피며 도움을 얻고자 한다. 학습서를 보며 교육 로드맵을 세워보기도 하고, 정서를 살피려 노력하는데 어째 그러면 그럴수록 버겁기만 하다. 모든 결론이 '부모의 노력'으로 귀결되면서 어떻게 이보다 더할 수 있을까, 어찌 더 하라고만 할까, 때론 하소연하고프다. 지금도 힘들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루를 믿으며 쌓아가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진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지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수학 문제집을 풀고 인증을 하면서도 '이게 맞을까' 의심이 든다. 결국 하루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가 인지하고 따라오는 것에 만족해야 할지, 아니면 부모 욕심인지 생각하지만 역시 답은 없다. 수많은 육아서와 학습서마다 다른 방향을 제시하기에 초보 부모는 자신만의 방향키가 무엇인지 헤매기 일쑤다. 좌충우돌해도 결국 방향이 맞다면 종국엔 기쁨과 희열을 맛볼 수 있을까. 막막한 이 길 끝에 잃어버린 생기가 돌날이 올지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다.
부모가 학습에 관심을 두고, 정서를 살피며 관계가 잘 형성된 아이들은 무엇이든 해낼 것이라는데.... 사실 그걸 모르는 부모는 없다. 말은 쉽지만 지키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고, 뜬구름 잡는 고리타분한 원칙이 되었을 뿐. 어쩌면 가장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에 편법으로 키우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시간과 편리에 맡기고 싶은 달콤함이 자꾸만 마음을 들쑤신다.
지나가던 남편이 무심코 한마디를 던진다.
연애할 때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는. 나는 우스갯소리의 말을 주워 와 웃음기 빼고 결국 확인하고야 만다.
"뭐가 다른데?"
연애할 때는 네가 이렇게 완벽주의인 줄 몰랐다고, 스스로를 타이트한 기준에 옳아 놓지 말고 내려놓으라는 속 편한 말을 한다. 참나, 누군.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런가.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 만약 우리 둘이었다면 모든 것이 가능했겠지. 각자의 배고픔을 알아서 해결하고, 원하는 방식대로 여가 시간을 보내고. 퇴근 시간이 엇비슷하면 만나서 가볍게 맥주 한 잔 곁들이거나 편의점 봉투를 달랑이며 마음 편히 귀가 했을 테다. 또한 서로를 향한 잔소리 대신 취기 오른 육체로 뜨거운 밤이 되었을 수도 있겠고.
하지만 우린 부부를 넘어 부모가 됐다. 그저 놀고먹고 싸는 행위로 칭찬받던 아이들은 기관을 다니게 되었고, 배움의 영역에 깊이 발을 담그게 되었다. 이것은 가계부 상단 랭킹을 교육비가 차지하고, 우리 논제의 영원한 주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아이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기대치가 쌓일수록 집 나간 그 녀석이 돌아올 생각이 없다. 사실 생각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봐도 아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 나도 한때는 여유로웠고, 기다려주며 사랑 가득한 사람이었는데. 육아가 뺏어간 과거의 모습이 다시 돌아올 날이 올는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사랑으로 믿으며 아이와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고 싶다만 녹록지 않은 현실의 무게를 실감하다 보면 이렇게 속절없이 있을 게 아니라는 위기감이 휘몰아친다. 내 기준을 갖고 키우다가도 나 혼자만의 유리 속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지지부진한 발걸음이 계속된다. 앞으로 또 얼마나 쥐어짜야 하는지, 그 불안함을 가득 안고 아이 앞에서 온화한 표정을 짓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는지. 부모와 아이가 편한 그 길이 있긴 한 걸까, 고민이 깊어지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