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풍경이 달라지면 생활이 달라질까. 더 많은 용기를 냈더라면, 귓속에 들리는 언어가 달라졌고 아파트 대신 넓은 바다가, 광활한 산이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내민 용기는 고작 101동에서 102동만큼이다. 오랫동안 익숙한 공간에 있다 보니 집에서 하는 행동이 일정했다. 그 식탁과 그 쇼파와 그 책장 속에서 눈동자는 미간 거리만큼의 시야 속에 갇혀 있었다. 앞동 틈으로 보이는 산의 위치도 같았고, 비 오는 날 보이는 우산의 면적 또한 바뀌지 않았다. 수많은 계절 속, 틀에 박힌 공간에서 나도, 내 생각도 벗어나지 못했다.
"인테리어가 지겨워. 이사나 갈까?"
이런 부르주아는 아니다. 원래 이사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뤄지는 법이니깐.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명령에 따라 몇 바퀴의 삶을 연명했지만 이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우리 인생의 가시거리는 딱 2년이었다. 구멍 난 통장을 간신히 어르고 달래며 버티던 중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새로 맞춘 안경을 쓴 느낌이었다.
그래, 2년 주기 삶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되었어.
앞서 말했듯이 난 겁 많은 탐험가이므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다가 방향만 틀었다. 아이가 전학을 가지 않는 것이 첫번째 조건이자 마지막 조건이었으므로 결국 도로명 주소는 바뀌지 못했다.
이전 삶을 들여다 보면 아주 오래된 책방에 오르내리는 먼지 같았다. 다소 데워진 공기 속에서 느슨하게 떠도는 삶. 이젠 2년마다 갱신되는 지루한 안정감 대신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다정한 두통을 느낄 때가 되었다. 그렇게 이사를 결심했다.
그토록 낯선 두통을 원했건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세상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순간이 과연 있긴 할까. 계약서의 조임 속에서 수많은 통장을 거치며 입안은 바싹바싹 말라만 갔다. 무모한 결심이 세상 물정 모르는 투정은 아니었는지, 수첩엔 볼펜의 신경질적인 움직임만 가득했다.
모든 계약서의 인주가 마를 때쯤, 낯선 벽지를 마주했다. 새로 구매한 메트리스의 단단함을 느끼며 천장을 바라봤다. '드디어 끝났어.'
내가 내린 결정이 잘못되었다면 어땠을지. 생각만으로 아찔했다. 아늑함을 단조로움으로 치부해 버렸던 지난 치기가 얼마나 위험했던 건지, 수많은 계약서를 찍으며 인감도장의 빨간 무게를 경험했다. 이름 석 자가 이토록 무서웠던 것인가.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란 무엇일까. 결혼했지만 중요한 결정 및 계약은 남편이 도맡아 했다. 큰 단위 금액은 그의 명의로 된 통장에서 오갔고, 난 어쩔 수 없다는 듯 먼발치에서 널찍한 등을 바라봤다. 전업주부로써 월급통장이 없단 명분, 대출이 쉽지 않다는 명분, 남편보다 어리다는 명분, 아이 키우기에도 정신없다는 명분.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핑계로 책무를 벗어났던 걸까. 경제적 독립과 자유를 꿈꾸면서 정작 책임은 지기 싫고 머리 아픈 것으로 치부해 버린 지난 내 어리석음은 남편의 잠 못 드는 밤을 수없이도 만들었다.
"이제 와서 말하는데, 그동안 많이 힘들었어."
지난 세월을 담담히 말하는 그의 말이 묵직했다. 가장이란 한 글자는 얼마나 많은 말을 삼키게 했던 걸까. 찰랑이는 맑은 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무수한 문장을 삼켰을 그. 막막한 현실에 비하면 소주의 쓰기는 오히려 다디달지 않았을까. 그깟 고통은 넘기면 그만이니깐.
다행히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이젠 그의 고통을 함께하려 한다. 휘청거리는 고통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옆에서 술잔을 매만지며 삼켜질 문장을 찾아오려 한다. 잠 못 드는 밤, 혼자 수많은 별을 세지 않도록, 달빛을 함께 나누며 그렇게 서로의 잔을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