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미다 Jul 03. 2024

결혼 10년차 부부는
이렇게 연애합니다.

 남편의 사랑이 전해지는 뜻밖의 소소한 순간들.


 아이를 재우다 내가 나를 재우는 경험을 종종 하는데 오늘만은 그러지 않기를, 눈꺼풀 바벨을 들어 올린다. 일주일의 피로가 쌓인 어깨와 고단한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오자, 회식한 남편이 도착했다. 멍하니 쇼파에 기대 있는 와이프 앞에 작은 사랑을 전하는 그. 밤이라 디카페인으로 사 왔다는 따뜻한 소곤거림도 함께 테이크 아웃 됐다. 이 시간이면 남이 타 준 커피 생각이 간절하지만, 시간상으로도, 상황적으로도 어려워 고민하고 있을 아내를 또 한 번 취향 저격했다. 커피를 내려놓는 그는 참 이해할 수 없는 다정함을 가졌다. 마음속으로만 가질 수 있는 생각을 기어이 꺼내놓을 줄 아는 이 나이 많은 남자는 매번 내가 구원해 줬다 하지만 실은, 나를 구원해 줬다. 물론 이런 마음은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다소 짧은 시선과 무심한 감탄사로 대신할 뿐. "아. 땡큐."




그는 주말의 달콤한 늦잠을 선사해 준다.

본인도 힘들고 지칠 텐데, 주말이면 저절로 눈이 떠지는 새 나라 어린이들의 아침을 챙긴다. 각자 취향에 맞춰 새우를 굽거나 군만두를 튀기거나 샌드위치를 만드는 사람. 분명 바깥의 소란스러움을 알고 서서히 눈이 떠지려는데 "엄마 좀 더 자게 방문 닫자."라는 그의 속삭임이 들려오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도로 눈을 붙이고 만다. 

내가 남편의 사랑을 확인받는 순간은 서로의 살갗이 뒤엉키는 뜨거운 밤도, 사람들 틈 튀어나오는 손길도 아닌(때론 부럽기도 하지만) 나만을 위한 커스터마이즈 주말 아침밥과 육퇴 후 세팅해 놓은 야식 테이블에서 느낀다. 그 무엇보다 나를 배려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은 상을 볼 때면 잠시 몇 초의 시간을 삼키곤 한다(주로 자신이 즐기지 않는 닭발이나 오돌뼈를 시켜놓았을 때 이는 배가 되기도). 상대를 위해 피로를 참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기에, 그가 개발한 이상한 메뉴에도 웃음이 나고 젓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다. 




사실 우리가 야식을 함께 하는 것은 '먹는 행위' 그 이상에 해당한다. 다음날이면 퉁퉁 부은 눈과 턱선 잃은 얼굴을 보며 한숨 쉬겠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지난 뜨거운 밤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나트륨 과다복용의 밤은 육체의 뒤엉킴이 아닌 마음 돌봄 시간이었다.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고, 각자의 잔을 부딪치는 순간. 너의 수고로움을 위로하고 나의 수고로움을 토로하며 그렇게 잔을 비워가는 모든 순간이 10년 차 부부만의 연애 방식이다. 둘만의 시간이 10년 전처럼 야릇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넉넉한 홈웨어를 비집고 느슨한 안도감을 불어 넣는 이 시간은 맥주만큼이나 사랑스럽다. 


활활 타올라야 사랑이라 여겼다. 서로에게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내 시간'을 희생해야 사랑이라는 이름을 씌울 수 있었다. 같이 한 시간이 늘어짐에 따라 느슨해진 관계는 결국 끊어진다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마흔의 사랑은 달랐다. 철부지 살갗이 전부가 아니었다. 서로의 군살과 함께 늘어나는 주름을 보며 나이 듦에 드는 안타까움 역시 사랑이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성숙한 지혜를 섹시하게 바라보는 것 역시 또 다른 사랑이었다. 너와 내가 무르익을수록 서로에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온전한 사람으로 독립하는 것이 진정한 관계였다. 올곧은 자아는 바른 관계를 정립해 주고 서로를 온화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줬다.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때론 독립적으로, 때론 느슨하게 지속되며 숙성되어 간다.


한때 연인이었던 우리는 이렇게 부부가 되고, 가족이 되어 서로의 삶에 적절한 온도의 안정감을 선물해 준다. 외형적으로 변질된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겠지만, 그건 남편의 눈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전 내가 사랑했던 소녀를 찾고 있을 그의 내면은 모르겠지만, 그 마음을 숨기고(어쨌든 티는 안 나므로) 다정한 시선을 보내주는 그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고 감사하다. 


어디서도 채워질 수 없는 너와 나만의 적정한 온도에 기꺼운 마음을 담아, 글로써 너를 보듬는다. 애정하는 나의 남자야.



매거진의 이전글 그 시절의 빌런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