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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Jul 04. 2024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세상에서  소리 없는 강자.

요즘 아이들에게 "무인도에 딱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면?"하고 묻는다면 당연히 "스마트 폰이요."라는 답변이 돌아오지 않을까. 그리곤 이내 한 문장 덧붙일 수 있겠다. 

"무인도, 와이파이 터지죠?



릴스와 쇼츠, 틱톡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글을 쓴다는 건 어떤 행위일까. 센스있는 짧은 영상을 보고 있자면 두 줄 이상 길어지는 단어 조합이 따분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비주얼 리터러시(visual literacy) 세상에서 '검은 글자 쓰기'를 지속한다는 건 자급자족으로 1,000포기가 넘는 김장을 하는 것과 같달까. 배추씨를 뿌리고 모종을 키워 밭에 심는다. 속이 실하게 크도록 정성과 시간을 들이고, 절이고, 씻어서 버무리는 과정을 거친다. 하나 이렇게 애를 썼다고 맛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배추가 병이 들어 무르기도 하고, 잘 된 배추를 고춧가루가 망치기도 하며, 슬프게도 내 입맛에만 맞을 수도 있다. 


글쓰기라고 이와 다를까. 생각을 심고, 시간을 거쳐 쓸만하게 영글어지면 글로 정리한다. 이 글이 만인에게 읽힌다면, 가령 서점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좋겠지만, 그럴 확률은 터무니없이 적다는 걸 모든 작가가 알고 있다. 그렇다고 김장을 나만 하느냐. 양에 차이만 있을 뿐, 전국적으로 대부분이 김장을 한다. 이 힘든 수고로움을 다신 안 한다 안 한다 하지만 김장 시기가 오면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쓰기와 퍽 닮았다.

서로 쓰고 내뱉기에 바쁘다. 기어이 시간을 들여 읽으려는 독자가 없다(물론 나를 포함하여). 유명 작가의 책조차 1/3 지점을 넘기기 힘들며 읽다 만 책들이 쌓여 간다. 진득이 읽을 때면 핸드폰 속 알람이 머릿속을 헤쳐 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신간 입고 문자가 비슷한 상황을 연출한다. 


(새로 나온) 책이 (읽고 있던) 책을 덮어 버린다. 


달콤하고 지적인 속삭임에 신간의 첫 장을 넘겨버리지만, 이 역시 지속하기 힘들다. 현시대는 읽는 사람은 적고, 쓰는 사람만 많지 않은가. 독자는 한정적인데 이젠 독자마저 작가가 되는 세상 속에, 내 글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 unsplash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거친 파도 속에서 살아남은 글은 어떤 글일까.
우리는 절대 강자와의 싸움에서 '내 활자'를 지킬 수 있을까. 


숏폼의 침략에도 살아남은 고전적인 네트워크를 살펴보자면 라디오와 종이책을 들 수 있다. 팟캐스트, e-book 등 다소 진화된 형태가 나타나도 우리의 눈과 귀는 아날로그 방식을 놓지 못한다. 종이 질을 느끼며 한장 한장 넘기는 촉감과 책에서만 느껴지는 활자 냄새, 그 두툼한 복합체가 전해주는 향연은 손가락 터치로 대신할 수 없다. 스트리밍된 음악도 좋지만, 디제이의 숨소리를 느껴가며 소통하는 라디오 역시 우리 귀에 쉼표를 찍는다. 특유의 고른 숨으로 삶에 띄어쓰기를 선사해 준다.  


인공지능 시대가 돌입했고, 벌써 나보다 더 완벽한 목차의 글을 쓰는 훌륭한 컴퓨터 선생님이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읽고 쓰기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위와 같은 사유의 힘이다. 개인적으로 완독으로 이끌고 가는 작가의 흥미진진한 필력도 대단하지만, 읽다가 책장을 덮고 생각하게 만드는 여백의 필력에 짜증스러운 감탄을 내지른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내려갈수록 대체 이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어떤 책을 읽었기에 생각의 물꼬가 이렇게 이어지지? 하며 작가의 책장을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 독자와 시간을 공유하는 작가의 위대함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 읽기와 쓰기를 현명하게 하기 위해 궁리하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특히나 팬심 가득한 독자층이 없는 무명작가들은 자꾸만 내 글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적는 생각들이 인스타그램을 뒤로하고 쭉쭉 읽힐 뒷심을 발휘할 것인가. 그들의 시간을 살 수 있는 필력을 갖추기 위해 오늘도 쓰고 또 쓰는 방법밖에 없다.


책은 조용히 출간되고 있다. 라디오는 여전히 주파수를 타고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 쓸 수밖에 없다. 찢기고, 젖고, 때론 쓸 만한 종이조차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하는 것만이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다. 쓰고 고치고, 지우고, 또 쓰면서 갈고 닦는 시간 속에 글의 유연함과 유려함이 담길 때까지 단단한 마음으로 쓰는 것만이 내가 강자와 싸움에서 한 발 꿈틀거릴 수 있는 유일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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