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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May 30. 2024

밥이라는 핑곗거리

지긋지긋했다. 엄마의 칼질 소리도, 보글보글 끓다 못해 흐르는 된장찌개도, 별반 다르지 않은 그 안의 내용물도.  



엄마의 하루는 아침 6시 언저리에 맞춰진 태엽 인형 같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전날 씻어 놓은 쌀을 안치고 한쪽에 가지런히 검은콩을 올렸다. 그 행위는 가족 모두를 위한 배려였다. 콩 하나씩은 씹혀야 먹을 맛이 난다는 시부모, 백미 외 모든 것은 거부하는 4명의 자식. 모두를 위해, 항상 그 가지런한 수고가 덧붙여졌다. 또한 계란찜을 만들어도 송송 썬 파는 한쪽에만 가득했고, 국에는 건질 수 있을 정도의 대파만 들어갔다. 이것은 남편을 위한 사랑이었다. 어떤 연유인지, 아빠는 파를 싫어했다. 어린아이가 콩을 골라내듯, 아빠는 항상 파를 골라냈다. 엄마의 사랑을 보고 자란 우리는 아빠 국그릇엔 파가 들어가지 않도록 미세한 국자 질을 해야 했다.  

집에서 김밥이라도 싸는 날에는 각자 통을 따로 준비했다. 담석이 생길까 시금치는 입에도 안 대는 시어머니를 위한 김밥, 당근을 골라내는 막내딸을 위한 당근 뺀 김밥,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손주를 위한 지단 뺀 김밥. 각자 취향에 맞춰 김밥을 싸다 보면, 누구 하나 놓치진 않았나 쌌던 김밥 속을 계속 확인해야 했다. 보통 정성이 아니었다. 짜진 않을까, 밥이 질진 않을까, 목 막힘에 국물을 찾진 않을까. 그래서인지 엄마의 음식엔 사랑과 함께 사람이 있었다. 누구 하나라도 소외되지 않도록, 사랑을 조절해서 각자 그릇에 수고로운 다정함을 얹었다.  

© unsplash

하지만 엄마의 음식은 항상 정도를 넘었다. 뚝배기 그릇은 날마다 조금 다른 내용물을 보듬다 못해 흘렀다. 불 세기를 아무리 미세하게 조절해도, ‘더 이상 넘치지 않겠지’ 마음 놓는 순간에도, 찌개는 매번 넘치고야 말았다. 삶은 국수 면은 1인분 양이 꼭 처치 곤란하게 남았고, 남은 떡국 역시 퍼져서 버려야만 했다. 엄마의 음식은 바람 맞았다. 식구들을 향해 넉넉한 사랑을 담았던 음식은 때론 누군가의 차디찬 부재로 남겨져야만 했다.  


"엄마가 그렇게 키워서 쟤가 이렇지!" 

"아들이라고 끼고 키우지 마!" 

"엄마는 항상 그래!"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란 우리는 때론 밥값 대신 짜증과 화를 지불했다. 모든 게 다 엄마 탓이었다. 가족에 대한 화살은 주인을 잃고 뱅뱅 돌다가 결국 엄마라는 가장 안전한 과녁을 찾아 꽂히고 말았다. 마치 원래 엄마를 향했던 것처럼.  

© unsplash

엄마는 이해했다. 때론 이해되지 않는 상황조차 오죽하면 저렇겠나 싶은 마음으로 보듬었다. 자식이 많은 게 죄라면 죄였다. 한 명이 몰아칠 짜증은 4배가 되어, 아니 그 이상으로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그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 받고도 밥을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만들고, 점심을 만들어 시부모님 끼니를 챙기고, 누가 먹을지도 모를 저녁을 만들어 식구들을 기다렸다. 어쩌다 밥이 조금 모자라는 날이면 마치 숙제를 안 하다 들킨 아이처럼 미안해했다. 밥솥에 밥이 없다며 툴툴거리는 이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이라며 부산스럽게 쌀을 씻었건만, 툴툴거림은 그새 냄비에 물을 올리고 라면을 꺼냈다. 집에 밥도 없냐는 짜증스러움은 덤이고. 


엄마는 밥솥 같았다. 항상 그 자리에서 언제 올 지 모를 식구들을 기다리며 보온 상태로 데워져 있었다. 집에 들어올 누군가의 곯은 배를 위해, 세상의 짜증에 속상했을 마음을 위해, 엄마는 항상 기다렸다. 따뜻하고 포근한 시선으로 들을 준비를 하고 선. 툴툴거리는 그 입이 가벼워지도록, 속이 상했을 마음이 보듬어지도록, 반찬을 밥공기 주변으로 밀어주며 그렇게 곁에 있었다. 

엄마가 된 지금, 엄마가 전해준 사랑의 고단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몸이 힘들 때면 엄마 생각이 간절하다. 간신히 아픈 몸을 버티다 못해 심한 몸살이 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보온 상태의 온기 가득한 전화가 걸려 왔다.  


“애들 봐 줄 테니 집에서 좀 쉬어.”  


그리곤 남편 편으로 엄마의 음식이 도착했다. 어렸을 적 먹던 엄마의 사랑. 집에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부지런한 사랑. 꼬들꼬들한 오이지무침이 오기도, 밥 찰기가 딱 적당한 김밥이 오기도 했다. 음식을 보면 이젠 눈물부터 난다. 이거 만들겠다고 아픈 손목으로 얼마나 짓눌렀을지, 다듬고 채 썰어 볶느라 힘들었을 텐데..... 빨갛게 부었던 목구멍은 엄마의 시큰거리는 손목이 생각나 유독 더 따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unsplash


어김없이 주말 점심이면 엄마의 메시지가 뜬다.  


“비도 오는데, 오징어 부침개 해서 먹자.”  

“시금치가 많이 자랐네, 김밥 한번 해 먹을까?”  

“상추가 많아, 삼겹살 구워 먹게 와.”  


음식을 먹기 위한 핑계는 흘러넘쳤다. 밭에서 키운 상추가 너무 맛있어서, 조금 있으면 시들어서, 비가 내려서, 날이 좋아서. 엄마의 귀여운 핑곗거리에 내 발은 마지못해 친정집을 향했고, 항상 그랬듯이 소화제라는 디저트를 먹어야만 끝이 났다.  

사실 엄마가 호출한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주들이 와서 심기 불편한 할아버지의 기분 좀 풀어달라는, 아흔을 넘긴 시모의 얼굴에 생기가 돌게 도와달라는. 어쩌면 엄마는 가족을 위해 콩을 한쪽에 가지런히 올렸듯이 식구들 얼굴에 행복이 스미도록 그럴듯한 핑곗거리를 찾아 음식을 준비한 게 아닐까. 

이제는 안다. 엄마의 밥은 사랑 그 자체였다. 지난한 사랑이 때론 귀찮기도,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이젠 그 시간이 봄날의 벚꽃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화양연화는 그리 길지 않을 것임을, 아무리 애타게 그리워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자꾸만 몸이 체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주말 어김없이 울릴 엄마의 메시지를 조금은 따스하게 바라봐야겠다. 온기 가득한 엄마 밥을 먹고 흐드러져 가는 사랑 속에서 행복을 충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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