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팔에 기대 옷을 적시는 아이를 보며 부모의 부재를 생각한다. 어제 내린 비로 날씨는 이렇게 청명하건만 너의 마음은 푸른 하늘 대신 궂은 날씨가 이어지는구나. 수업 중에 문득, 놀이 중에 문득 그러다 밤이 데려온 그리움의 시간에 짙어지는 네 마음을 헤아려 보지만, 할 수 있는 건 작은 토닥임밖에. 그리곤 되뇐다. 아이한테 하는 말인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분간이 서지 않을 읊조림이다.
"조금만 참아, 곧 올 거야. 일곱 밤만 지나면 아빠 만날 수 있어."
흩날리는 노란 깃발 사이로 아이 뒷모습이 흔들린다. 지난주보다 어깨가 조금 더 처지고, 발걸음이 끌린다. 안쓰러움을 눈에 달아서 그런가. 눈을 다시 비벼 보지만, 눈동자에 깃든 울컥거림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는다. 첫째는 두 눈을 파묻고 눈물을 닦다가도 동생 얼굴에 손을 뻗쳤다. 혹시 같은 그리움을 흘리고 있진 않은지 확인하는 한 살 많은 오빠의 부담감일까. 자신은 울어도 동생의 슬픔은 흐르지 않도록 단속하는 손길이 제법 안쓰러운 의젓함을 동반한다. 남들이 들으면 기가 막히고, 어안이 벙벙할 수 있다. 누가 보면 파병 나간 아빠의 부재려나 싶고, 흡사 불안한 가정 속 아이의 위태로운 마음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고작 열흘 남짓한 시간이다. 전화 연결이 안 되는 것도 아니요. 하루 두 번의 영상통화로 서로의 그리움을 애끓게 표출할 수 있는 환경이다. 무엇이 이토록 아이를 힘들게 하는지, 메마른 감정의 엄마는 도통 이해가 서지 않다가도 코끝이 찡해진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뭐니, 아빠의 빈자리가 그렇게 채워질 수 없니, 어떻게 해야 눈물 젖은 그 마음에 5월의 햇살이 찬란히 들어올 수 있니.
아빠에 대한 그리운 몸짓에 슬슬 한숨이 동반할 쯤, 사진첩 속 해사한 웃음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 옆에는 항상 아빠가 있다. 그의 두 다리가 있고, 어깨가 있다. 아빠 등에 매달린 짓궂음이 있고, 목에 두른 다정함이 있다. 찰나를 보고 느낀 소박한 사랑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이밀었었지. 그들의 더 애틋할 수 없는 틈새를 보며 작은 질투심을 느낀 '척' 행동하고, 뒤돌아 미소 지었던 나다.
사진 속 아이는 대단한 무언가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숨 쉬는 공기에 아빠의 규칙적인 심장 소리가 함께 했고, 거친 수염을 비비적 거리면 앙탈을 부렸다. 아빠와 함께하는 그 모든 순간이, 엄마로서는 절대 채워지지 않은 순간들이 네 해맑은 미소를 만들었겠지. 든든한 어깨에 얼굴을 파묻을 수 있는 그 자체로 네 어깨를 펴고, 자신 있는 발걸음으로 세상을 향해 뛰어나갈 수 있었구나. 사진 속 부자의 모습을 보다 나도 모르게 남편의 귀국을 손가락으로 세어본다.
오빠의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모습에 둘째도 감정 이입하며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고 만다. 양쪽에서 우는 아이들에 고단한 인내심이 끝을 보일 때쯤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빠 좀 토닥여 줘. 엄마는 오빠가 우는 데 아무렇지 않아? 속상하지 않아?"
가장 속상한 사람은 엄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이 작은 아이에게 진실을 고해봤자 뭐가 달라 지나. 그저 토닥이는 손길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달래지기를 바라며 허공을 응시할 수밖에. 아이들에게 아빠의 부재가 이 정도라니. 내 어린 시절, 친정 아빠의 부재에 나 역시 뜨거운 슬픔을 흘렸던가. 사무치게 그리워 베갯잇을 적신 적이 있었는지, 새삼스러운 시간이 붙들려 왔다.
"우와! 엄마, 오늘 아빠 와?"
한창 아빠의 손길이 필요하던 시절, 부모님은 주말 부부셨다. 네 남매를 키우며 주말부부를 한다는 것이 어떤지 알게 된 지금, 과연 나는 그 용기와 자립심을 가질 수 있을지 되묻곤 한다. 처음 몇 달은 아빠가 오는 주말이 기다려졌다. 한 놈은 손에 잡고 더 어린 동생은 뒤에 업은 엄마의 모습 뒤로 발칙한 꿍꿍이가 동행했다. 지금 생각하니, 원하는 군것질을 쟁취할 속내로 따라간 나는 얼마나 거추장스러웠을까. 어린 동생을 보고 있을 테니 엄마 혼자 다녀오라는 의젓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빠가 오시면 식탁 반찬이 달라졌다. 분명 같은 찌개일 텐데 윤기가 달랐다. 바싹하게 구운 갈치가 도톰하게 위용을 빛냈고, 노르스름하게 봉긋 솟은 달걀찜이 하얀 김을 내고 있었다. 그 외 곁가지 반찬들이 더 올라와, 6식구의 밥과 수저만으로 교자상이 가득 찼다. 평소와 다른 상차림은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몇 달이 더 지났다.
"아빠 이번 주에 또 온대?"
좋아하는 가수의 컴백을 본방 사수해야 했다. 아빠가 온다면, 손꼽아 기다린 그날을 뉴스에 양보해야만 한다. '요즘 것들'이라는 프레임에 씌워진 '우리 오빠들'에 대한 잔소리는 덤이요, 공부에 대한 설교까지 들어야만 했다. 시간이 흐르자, 아빠의 빈자리는 가요와 친구들이 메꾸었고, 그렇게 딸에게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만 갔다. 막상 내가 아빠를 필요로 했을 때, 아빠는 옆에 없었다. 이제 그 부재를 실감할 수도, 때론 불편함이 되어버린 그리움은 마음에서도 밀어내기에 바빴다. '이제 와서 왜?' 그렇게 나는 이기적인 작은 소녀가 되어갔다.
어쩌면 아빠에 대한 그리움도 유통기한이 있는걸까. 아이는 농익은 감정의 터널에서 '그리움'을 배워 가고 있다. '부재를 통한 애타는 마음'을 가슴에 새긴 아이는 '주변 어느 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겠지. 뜻은 모른 채, 활자로만 눈에 들어왔던 단어가 이젠 마음속에 박혀 각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철학이 따로 있나 싶다. 훗날 아이가 '그리움' '보고 싶은 마음' '만날 수 없는 상태'라는 불확실한 단어를 마주쳤을 때, 지금의 시간을 복기하며 절절한 마음을 상기하기를 소망한다. 잠시 떨어진 지금, 부자는 더 도타워지고 끈끈한 결속이 생겼을 테다. 새삼 남편의 빈 자리가 느껴지는 요즘,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