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이 완벽함을 향해 질주할수록 아이를 향한 답답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다. 절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없는 현실 속, 손에 얼굴을 파묻는 일이, 머리를 쓸어올리는 일이 많아졌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일전에 담임선생님 상담을 통해 최고의 육아 성적표를 받아왔건만, 이는 우리에게 지나친 족쇄가 되어 나도 모르게 아이를 다그치는 상황이 많아졌다. 또한 본 성향을 무시한 채 두 아이 반대표 역할을 맡은 지금 무엇하나 시작되지 않았건만 마음 체력은 이미 바닥을 치고 말았다. 사람은 역시 살던 대로 살아야 하나....해보지 않은 일에 쏟는 에너지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에 반해 드는 힘이 곱절이었고, 이는 심심치 않게 마음 배터리를 확인하게 했다. 놀이터 모드로 on 된 내 얼굴은 집에 들어와 off가 되자마자, 숨겨온 한숨과 함께 몸에 묻은 헛헛함과 공허함의 허물을 스르르 벗겨냈다. 실로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건만, 책임이 주어지자 튜브 없이 바다에 내던져진 느낌이었으며, 망망대해를 헤매는 기분이 이런 것인지 생각도 들었다. 때론 직무 유기와 함께 꼬르륵 잠식해 버리고 싶었다. 심연에 가라앉아 그 어떤 소리도 정확하게 듣고 싶지 않았다. 무릎을 모아 껴안고 가만히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고, 나 또한 그 무엇도 볼 수 없도록.
어중간한 페이지가 접힌 채로 읽힘을 기다리는 책들이 눈에 밟힌다. '여태 읽지 않았니?' 하는 눈 흘김에 가슴 한쪽이 빽빽한 글자처럼 막혀온다. 읽어야 하는 책들이 수두룩하건만 다시 새로운 책을 흘깃거리는 변덕스러움이 나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 읽다 만 책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이것도 직무 유기야.'
뭣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뭣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다.
뭣하나....보잘것없다.
발만 툭 걸쳐놓고, 뭣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이 답답함의 무게 추만 쌓여가는 상황 속에 가야 할 길도 막막할 뿐이다.
'대체, 네가 바라는 삶이 뭐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작가의 서랍을 무겁게 열었다. 빈 콩 껍질처럼 주제 없는 글들이 애매하게 쌓여 부피만 차지하고 있었다. 후...어쩜 하나 같이 다 정체하고 있는지, 물을 먹고 체한 느낌이 이런 것일까.
어쩌지 못한 체증에 달리러 나가려 해도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뇌가 불안에 잠식되자 몸은 뇌에서 울리는 알람을 모두 꺼 버린 채, 자기만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니, 거절한다. 아이와 있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절대 꿈쩍도 하지 않겠다며 여기저기서 피켓을 들고 시위한다.
"제발, 우리를 가만히 두라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뛰어오르고 싶은 마음 뒤편에, 대못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질 듯한 충돌이 함께한다. 자발적 글쓰기라기엔 즐거움이 상실된 채, 인정받지 못한 채, 한 걸음 나아가기가, 한 글자 입력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체 뭘 하고 싶어서 발설되지 못한 우울한 감정을 의도적으로 끌어안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벗어나려 헛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자두의 얇은 껍질을 쑤시고, 물렁물렁한 살을 비집고 그 안의 단단한 씨를 손가락으로 헤집고 있었다. 그 찝찝하게 달콤하고 단단한 씨를 손에 쥐고 싶었다. 그 거칠고 덕지덕지 묻은 알맹이를 손아귀에 집어넣어야만 안심할 것 같았다. 어떤 성취, 그것이 가장 필요한 때 임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성취에 대한 노력, 그것으로 생각은 귀결된다. 성취에 대한 압박으로 불안과 우울한 감정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인가. 박스 테이프를 돌돌 말아 두른 뒤, 애써 그 감정의 순간을 찍찍 찍어가며 모으고 있는 꼴이라니. 먼지와 함께 모인 감정 부스러기들을 어쩌겠다는 건지 나 역시도 모르겠다. 무릎 꿇고 찍어가던 모양새를 고쳐 앉다 털썩 주저앉아버린다. 그리고 또다시 두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고 머리칼 속으로 숨어버린다.
'난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일까. 그곳이 어디기에, 자꾸만 마음을 아리게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감정 또한 애써 눌러야 함이 아닌 피어오르길 바라며 지펴야 하는 감정이 맞을까. 그렇게 힘들게 써야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하는 것이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