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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Mar 16. 2023

틀린 글자는 지우개로, 틀린 사람은 하나님께로

일단 먼저 물어보기

이름이 뭐였더라.

맞아, 구철이었다.


잠시 소개팅으로 만났던 못된 남자!


친구는 혀를 끌끌 차며 그 남잔 네 인생의 오점이라며 이름을 구철이 아니라 구점이라고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인생의 년수가 더해지다 보니,

없었더라면 하는 사람은 구철이 뿐이 아니게 되었다.


내 인생에 오점 같은 사람. 당신만 없으면 내 속이 후련할 텐데, 하는 사람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서 있는 것만 같다. 지긋지긋한 이 사람 드디어 더는 안 봐도 되겠다 하면 그 뒤에 숨어있던 사람이 빼꼼.


넌 또 누구야? 이건 또 뭐야 진짜!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 난 사람 여럿을 보았다. 화가 나고 분노도 차올랐지만 결국 가만히 나의 할 일을 하다 보면 그들은 스스로 자멸했다. 마치 더 글로리의 몇몇 인물들이 제 발에 걸려 넘어지듯이, 결국 그들은 자기 성질에 못 이겨 풀썩 넘어지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무반응으로 반응하기로 했다. 리더인 네가 선을 분명히 그으라는 주변에 성화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결국 제 풀에 못 이겨 꺾일거다 라고 대답했다. 저 사람은 하나님께 맡기고 난 나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그러면 지나가는 날이 올 거라고.


하지만 남편은 단호했다.


그 사람의 행동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도 리더의 한 역할이니 그러한 일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내야 한다고. 네 성격에는 조금 어렵겠지만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그때부터 울적해졌다.


툴툴 대면서도 나름 잘 흘려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어딘가 거북해지고 몸이 나른해지며 몸을 지탱하기가 힘들었다. 힘이 축축 빠지는 기분. 실시간으로 힘이 없어지는 그 기분을 누군가는 공감할 거야.


리더로서 일하면서 스스로 다독이던 차였다. 하나님은이 날을 위해 그동안 나를 이토록 단련시키셨구나 할 만큼, 예상했던 것 보다 맡은 일을 자연스레 감당하고 해결해 가는 모습이 썩 대견했다. 전처럼 엄지를 척하고 칭찬 듬뿍 해주시던 분이 없어 바들바들 두려워 하던 때를 뒤로 하고, 나는 일터에서의 자존감을 단단히 하며 참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그 사람의 공격에 흔들릴 리 만무했다. 지적받은 그 부분은 앞으로 보강하겠다 정도였지 나는 왜 완벽하지 못할까 에 대한 쓰라림은 아니었다. 물론 굉장히 거슬리고 불편했지만, 나의 근간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럼 뭐 때문에 힘이 들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푸념처럼 툭툭 말을 풀러 놓다 발견했다.


리더로서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을 지혜롭게 해주는 것이 내게는 부담이었구나.


성질을 내거나 기싸움으로 이길 수 없는 문제임은 당연하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건 하나님의 방식이 아닐뿐더러 일단 나는 쫄보니까. 그렇다면 결국 그 사람을 위한 진심을 전해주는 게 옳은 일 일텐데. 그래야만 지혜로운 메시지를 감정 뺀 채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글쎄. 그렇게 하기는 영 싫다 이 말이다.


결국 또 사랑하라고요 하나님?

또 노력해야 하고 또 씨름해야 하고 또 져줘야 하고.

어후 저 지금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있잖아요. 여기서 무슨 노력을 더 해요. 조금의 여유라도 있어야 생각도 하고 기도도 하고 남도 돌볼 것 아니에요. 저 진짜 진짜 힘들다고요!


찐이 등장했다. 날 괴롭게 한 녀석이.


나는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더는 요구받고 싶지 않다는 거다. 가면을 쓰고 나를 짓밟고 있는 저 사람을, 내 인생의 25번째쯤 되는 저 오점 같은 인간을 그저 지우개로 빡빡 지워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무반응이라는 회피를 선택하여 그를 내 눈앞에서 없는 셈 치련다. 현재로서는 그게 가장 내게 쉬운 일이니까.


남편은 자기가 괜한 말을 했다며 나를 워워 시켰다. 바른말을 올곧게 선비처럼 했다가도 아내가 힘들다 빽빽거리면 남편이 잘못했네, 태세전환이 빠른 편이다.


그래 남편 때문이야! 이제 좀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

그리고는 차분히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 남편이 준비 중인 다음 주 금요 예배 설교의 핵심을 듣게 되었다.


손양원 목사님이 평생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어도,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사랑하여 용서하지 않으면 그게 하나님 앞에 옳지 않다는 거야. 나머지를 다 지켰어도 말이야.


아.

저격당해버렸다 또.

탕탕.


두 손 두 발 다 들고 주께로 간다.


아무리 내가 13명의 직원을 사랑하고 보듬었어도, 원수 같은 저 직원 1명을 용서하고 품지 못한다면. 그게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못하겠구나. 내가 보란 듯이 다했다는 그 최선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합당할 수 없겠구나. 결국 나의 선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한정이었으니까.


깨닫는 순간 자유했다. 말씀은, 진리는 나를 참 자유케 한다. 듣기 싫다고 발버둥 치며 삐져있을 때 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귓가에 은은하게 들려올 때 나는 참으로 귀한 평안을 누린다.


그래. 오빠 말이 맞아. 어려워도 하기 싫어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릴 수는 없어. 그렇지만 정말 하기 싫으다. 하지만 다시 기도해 봐야겠어.


조금은 정돈된 마음으로 시편을 읽어나갔다. 이 세상에서 다윗보다 더 오랜 시간 원수에게 괴롭힘 당한 사람이 또 있을까? 25편을 보니 온통 원수에게 시달림

당한 괴로움이 여기저기 묻어난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시편‬ ‭25‬:‭15‬)


내 원수를 보소서 저희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함이니이다 (시편‬ ‭25‬:‭19‬)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 (시편‬ ‭25‬:‭20‬)


원수를 어떻게 한다기보다, 그저 그는 하나님 앞에 피해있을 뿐이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을 통해 원수로부터 매여있는 사슬을 끊고, 영혼을 지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어 안전하게 지내는 일에 그는 온전히 집중했다.


오늘, 그리고 당장 내게 필요한 은혜다.

심판관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온유함으로 잠잠히 기다리며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시편‬ ‭25‬:‭9‬)


말씀 묵상이 끝나고 브런치에 글을 적으며 마음을 정리하다가 불현듯 그 사람이 오늘 내게 왜 그러한 불화살을 쏘았는지 어렴풋이 짐작 가는 이유가 생각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저러는지 몰랐는데, 아마 내가 전체를 바라보고 했던 행동에 개인적인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그러니 뭐 조금은 이해되는 것 같다.


그렇게 내게 약간의 여유 공간이 생겨났다. 그를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틈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참 무서운 사람이다 싶지만.


내 곁에 목회를 하는 남편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성도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모는 아직 아니지만, 남편 목사님으로부터 아주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건 확실하다. 가장 큰 베네핏을 누리고 있달까.


여보, 나 한 사람을 어떻게든 살리려는 노력이 곧 성도 여러 명을 살리는 지름길인 거야! 알게찌?

기운이 났는지 또 대놓고 훈계질이다.


완벽할 수 없지만 포기할 수도 없는 기쁨과 감사의 성화의 여정.


오점 같은 저 사람을 싹 지우려 하기 전에

가장 옳으신 하나님에게 먼저 물어보기를.


틀린 글자는 지우개로.
틀린 사람은 하나님에게로!


















사진출처_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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