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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Oct 31. 2024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작아지고 부서지는 인생

불합리하다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어찌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인지를 두고 몇 날 며칠 울분을 토했고요.

나라면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사람은 그래선 안되는 거라고 수없이 되뇌이는 깊고 깊은 어두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변하는 건 하나도 없었어요.

가슴을 치고 화를 토해내는 건 나의 일상만 어지럽게 했고, 내뱉은 분노의 말들은 우리 집 벽을 팅팅 치고 돌아와 나의 귓가에만 더욱 쟁쟁거릴 뿐이었습니다.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가 얼마나 옳은지, 당신이 무시하는 우리가 얼마나 잘났는지를 말이에요. 증명해서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싶더라고요.


그러나 엉망이 되었습니다.

차근히 준비한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갔고

이를 갈며 밤을 새웠던 시간이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갔어요.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내가 할 수 있다고 여긴 그마저도 완전한 실패로 돌아간 거예요.


그제야 보였어요.

굳게 믿었던 나의 재능들이 부서지고, 단단히 의지했던 사람들이 증발하고, 예측 가능한 상황도 결국 내 편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그때서야 말이에요. 요셉이 갇혔던 감옥 안에 우리 둘이 나란히 놓여있던 거예요. 구석구석 손 더듬고 발을 내밀어 찾아봐도 이곳을 빠져나갈 구멍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절망적이 던지요. 내가 나를 빼낼 수도, 내가 우리를 건져낼 수도, 우리가 서로를 구원할 수도 없는 그 지경이 되어서야 보이기 시작했어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요.

당신도 사실 아무런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요.

우리에겐 아무런 능력과 어떠한 옳음도 있지 않다는 것이 서서히 깨달아졌어요. 우리가 손가락질하던 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낫게 여기던 당신과 나의 자아가, 사실은 먼지 한 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후 하고 불면 흔적도 없이 흩뿌려질 재와도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가슴팍에 새기게 되더라고요.


서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어요.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그렇게 대하는 게 뭐 어떻겠어요. 나를 쥐고 흔들려는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마구마구 흔들려도 사실 흔들릴 것도 없는 존재니까요. 텅 빈 나를 바라보니 모욕적인 대우를 받는다 한들 타격받을 게 없는 거예요. 애초에 나는 아무것도 없는 존재니까요. 내세울 만한 것도, 목숨 걸고 지켜내야 하는 것도 제 안에는 없으니까요. 한 줌 먼지가 부서지면 얼마나 더 부서지고, 멍이 들면 까짓 거 얼마나 더 시퍼레지겠어요.


그러니 감사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무런 쓸모없는 우리를 이 자리에 세워주신 것 자체가 은혜이고 기적인 거예요. 불합리하고 비효율이 가득하던 모든 상황을 다시 보니 우리는 억울함이 아닌 자비로운 하나님의 긍휼 하심 가운데 놓여있음이 새롭게 느껴졌어요. 나를 괴롭히던 원수 같은 그 사람 덕분에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요. 나를 이용해 자신의 존재감을 채우려던 그 미운 사람에게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자는 너그러운 마음을 품게 되었어요. 그렇게 보니 제 삶이 있는 그대로 참 온전한 거예요.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서 말이에요. 너덜너덜 다 찢겨 망가진 것 같은 삶을 하나님께서는 여기저기 꿰매 주시고 새로운 천을 덧대주셔서 멋지게도 만들어주셨어요. 정말 근사한 새 옷으로요.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먹여주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히고 재워주시며. 저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지켜주시고 꼭 붙들어주심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어요.


있는 재능으로 이웃을 돕게 하심에 감사.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버스가 있음에 감사. 눈부시고 따뜻한 오후의 날씨에 감사. 열정을 쏟아낼 대상이 있음에 감사. 불러서 사용케 됨을 감사. 간단히 한 끼로 먹을 수 있는 우유와 서리태 콩가루에 감사.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어 경청할 수 있음에 감사. 갈 수 있는 교회가 있음에 감사. 인사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편한 동역자들이 있음에 감사.


아직은 부서지는 중입니다.

다 부서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더 잘게 부서지는 중인 것 같아요. 그래서 마냥 행복하지는 않아요. 사실 많이 아프기도 하고요. 이제는 꽤 많이 지쳤는지 힘이 정말 많이 빠져버렸어요. 하나님 먼지가 되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면 좋겠어요, 하고 엉엉 울며 기도하기도 했고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왜 그리도 숨었는지 조금은 알겠어요. 나의 벌거벗은 모습을 바라보는 건 정말 너무나도 힘든 일이에요. 하나님이 가죽옷을 괜히 입혀주신 게 아닌가 봐요.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네.

그럼에도 그냥 이 찬양 흥얼거리면서 가는 거예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찬양 틀어놓고요. 바른 길로 잘 가고 있다고 믿어요. 피투성이가 되어도 살아있으라는 말씀만 기억하면서요. 고난을 주셔도 마땅히 견딜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요. 하나님이 나와 우리를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심을 확신하면서 갑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서지고 또 부서져도

더욱 부서져야만 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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