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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Jan 23. 2024

작가가 되기를 잘했다

책이 나온 지 2주가 되어 간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먼저 브런치의 동료 작가님들을 비롯해서 많은 지인이 책을 구매해주었다. 오래 소식이 끊겼다가, 갑자기 자기도 책 샀다고 연락을 준 후배도 있었다. 반가우면서도 놀라웠다. 내 주위는 물론이고, 아내, 부모님, 장인‧장모님의 지인도 많이들 산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책에 사인해달라는 분들도 꽤 있다. 문제는, 내가 사인이 없다는 것… 아버지는 이참에 하나 만들지 그러냐고 하시지만, 유명인도 아닌데 사인이 있는 건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인 요청하는 분들께는 원래 하던 대로 이름을 써서 드리고 있다. 워낙 악필이라, 언뜻 사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주경 작가님, @슈퍼피포 작가님, @서 필 작가님이 멋진 리뷰를 써주셨다. 책을 내고 나서 가장 감격한 순간이었다. 물론 극찬해주신 것에 비해 책 내용이 부끄러운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앞으로 잘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브런치는 참 좋은 곳이다. 내가 또 어디 가서 이렇게 칭찬을 받아 보겠나.

    

출판사에서도 다방면으로 책을 알리고 있다. 사실 발간 전에는 에디터 선생님이 강조한 마케팅이란 말이 별로 와닿지 않았다. 다른 상품도 아니고, 책을 마케팅할 게 뭐 얼마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시 내가 책알못이었다. 유튜브 책 광고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팔자에 없던 언론 인터뷰도 하게 됐다. 모두 출판사에서 기획한 것들이다.   


이렇게 감사한 분들 덕분에 책은 잘 팔리고 있다. 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에서 모두 과학 분야 베스트에 올랐다. 굳이 순위를 따지면 자연과학 top 10에 들어간 예스24가 가장 높고, 알라딘이 제일 낮다. 예스24에서는 심지어 ‘오늘의 책’으로도 선정되었다. 몇 년 전 나는 예스24에서 알라딘으로 주거래 서점(?)을 갈아탔는데, 아무래도 다시 돌아가야겠다(…). 인터넷서점은 역시 예스24가 킹갓이다. 괜히 업계 1위가 아니다.


반면 안 좋은 일도 있었다. 아, 이건 책 말고 회사 이야기다. 뭐 여기에 미주알고주알 쓸 만한 일은 아니다. 회사는 본래 불합리가 디폴트인 곳이니 새삼스럽지도 않다. 다만 육아휴직을 1년 하고 돌아와서, 오랜만에 당하는 몰상식에 아직 적응이 안 될 뿐이다.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1930년대 독일을 ‘비동시성의 동시성’ 개념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 개념이 2024년의 우리 회사에 더 잘 맞는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런 일을 겪으니 더욱 “작가가 되기를 잘했다” 싶다는 것이다. 작가라는 새로운 업이 생기니, 오히려 회사에서 뭔 일이 일어나든 하찮게 느껴진다. 뜻밖의 효과다. 만약 내가 회사에만 올인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 겪는 일로 인해 삶이 허무했을 것이다. 실제로 30대 초중반에는 인생에서 회사가 전부였다. 퇴근 표준시는 10시였고, 연차 휴가는 매년 며칠씩 남아서 반납했다. 무엇보다 일이 없어도 회사에 있는 게 몸에 배어 있었다. 독서나 공부도 회사에서 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회사에서 조금만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일상생활에 큰 타격이 되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아마 작가를 안 했다면 여전히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게다.

     

그래서 요즘 지인들에게 강조한다. 회사에만 매여 있지 말고, 다른 일을 찾으라고. 다른 일이란 뭐 별 게 아니다. 내가 즐겁고 잘할 수 있는 일이면 된다. 돈까지 되면 좋겠지만 안 돼도 상관없다. 다만 그 일이 단순 소비로 끝나지 않고, 지속과 축적의 업이 되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특히 회사에 대한 책임과 연계가 강해진다. 그럴수록 더욱 회사를 삶에서 분리해내야 한다. 그 공백에 더 가치 있는 뭔가를 채워야 한다. 조직이 아닌 개인의 이름으로.

     

그리하여 나는 앞으로도 작가이고 싶다. 회사를 계속 다닌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불혹이 넘은 이제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 같다. 생각해보면 여기까지 참 먼 길을 돌아서 왔다. 그렇게 어렵게 도달한 목적지인 만큼, 작가라는 이 새로운 업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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