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연애가 어려운 이유는 대응력에 있다. 살다 보면 늘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사고가 나거나, 아프거나, 갑자기 혼자라는 사실이 서글퍼지거나. 반대로 기쁜 일, 감격스러운 일, 나누고 싶은 일도 생긴다. 장거리 연애는 그런 순간들에 바로 대응하기 힘들다. 처음 몇 번은 괜찮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응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남친 혹은 여친은 원래 그런 사람이 되고 만다. 연애의 본질은 감정의 사이클이다. 고점과 저점의 진폭이 커야 오래 유지된다. 기쁜 일과 불행한 일을 오롯이 함께 겪어야 한다. 장거리는 연애 초기 물결치던 두 사람의 감정을 평균으로 수렴하게 만든다. 수많은 장거리 커플이 결국 헤어지는 이유다.
하지만 어디든 예외는 있다. 바로 나다(ㅋㅋㅋㅋ). 연애 시절 아내는 서울에, 나는 대전에 있었다. 1년의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했다. 물론 내게도 위에서 언급한 변수들이 많았다. 어떻게 대응했냐고? 답은 간단하다. 그럴 때마다 여친에게 달려가면 된다(…). 하긴 서울-대전은 KTX로 한 시간 거리이니 할 만하다.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거리보다는 상황이었다. 아내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땅의 모든 대학원생이 그러하듯, 그녀도 자퇴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오 진짜 때려치워 버릴까”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걸 어르고 달래는 게 나의 주 임무였다. 어찌 됐든 논문을 쓰게 만들었다. 지금도 아내가 내게 가장 고마워하는 부분이다. 그때 그만뒀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거라며.
결혼 후에도 장거리는 계속되었다. 결혼식 3주 뒤 아내는 샌디에이고로 6개월간 연수를 떠났다. 돌아와서는 1년 넘게 주말부부를 했다. 평일에 밤새 실험하고 논문 쓰는 생활이 아내에게는 참 버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고진감래라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했다. 아내의 첫 직장은 충북 오창이었다. 대전에서 50㎞ 떨어진 곳이었으나,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싶었다. 연애 때부터 이어진 오랜 장거리 생활을 끝낸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당장 오창에 살 집을 구했다. 100㎞를 매일 출퇴근해야 했지만 힘든 줄 몰랐다...라고 하고 싶지만, 솔직히 2년이 넘어가니 힘들긴 하더라(-_-). 하지만 기적은 한 번 더 남아있었다. 아내가 대전으로 이직에 성공한 것이다. 이직 축하 파티를 하면서 우리는 약속했다. 평생 쓸 운을 이번에 다 쓴 거 같으니, 이제 요행이나 행운은 바라지 말고 살자고.
아내는 배포가 크다. 나 같은 소심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부산 싸나이의 호연지기(마 붓싼 아이가)가 넘친다. 아내가 가끔 생필품이라고 사오는 물건들을 보면 놀랍다. 누가 보면 어디 전쟁이라도 난 줄 알 게다. 뭘 먹고 싶어도 만들어 달라고 하면 안 된다. 일주일 내내 그것만 먹을 각오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너른 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나 같은 유별난 남편을 참 잘 이해해준다. 좁은 집에 신혼살림을 꾸릴 때, 내가 들고 온 수백 권의 책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가 돌연 야구 피규어 수집에 빠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야빠가 아니면 이해 못 할 그 요사시한 물건이 집안 곳곳에 쌓이는데도, 갖다 버리라거나 이런 건 왜 모으냐는 타박 한번 하지 않았다(그게 비싼 건 수십만 원이 넘는다는 걸 몰라서였을 수도 있다;;).
뒤늦게 작가를 해보겠다고 나선 요즘에도 아내는 한결같다. 솔직히 책을 쓰는 게 돈이 되거나 직장인 커리어에 도움 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내는 출간이 확정되었을 때 나보다도 더 기뻐했다. 늦은 나이에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게 얼마나 소중한 기회냐며. 그리고 역시 그녀답게 말보다 행동으로 지지해주었다. 집필에 집중하라며 장시간 독박육아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단언컨대 아내의 희생이 없었다면 나는 책을 완성할 수 없었다. 책은 나의 단독 명의로 나오겠지만, 사실은 아내와 공동으로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9년 전 바로 오늘, 2014년 12월 7일이 아내와 결혼한 날이다. 우리는 지인에게 축가를 부탁하는 대신 서로를 위한 공연(?)을 준비했다. 아내는 친구들과 에이핑크의 <미스터 츄>에 맞춰 춤을 추었다. 객석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나는 당시 즐겨 듣던 김동률의 <내 사람>을 불렀다. 노래방에서 반나절을 꼬박 연습했지만, 결과는 망이었다. 음정은 엉망이고 가사는 까먹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날 이후 트라우마가 생겨서 남들 앞에서 노래를 못할 정도다. 그래도 아내는 그 엉망인 노래를 들으며 감동했단다. 아마 가사가 우리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김동률의 이 명곡을 결혼기념일을 맞아 다시 들어본다. 그리고 10년(연애 1년, 결혼 9년)을 함께 해준 고마운 아내에게 가사를 인용해 말하고 싶다. “세상 사람들 나를 다 몰라줄 때, 넌 늘 내 곁에 있었던 한결같은 내 사람”이라고.
세상 사람들 나를 다 몰라줄 때 한 사람은 내 옆에 있다는 날 너그럽게 만들고 더욱 착해지게 만드는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웃고 싶은 더 안고 싶은 넌 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