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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관계, 인문학의 새로운 삼각형

김진용(2025),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

by 배대웅

오랜만에 갓 세상에 나온 신간을 읽었다. 이 책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는 브런치에서 활동하시는 무당벌레 작가님이 쓴 것이기도 하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읽어보았다.


이 책의 키워드는 육아, 관계, 인문학으로 요약된다. 이 개념들은 각각 한 권의 책으로 나와도 될 만한 주제다. 육아는 인간 생존의 문제고, 관계는 삶의 기술이며, 인문학은 사유의 방식이다. 실제로도 대부분 별개의 영역으로 다뤄진다. 다만 그럴 경우 서로가 채워줘야 할 부분이 비어 버린다는 문제도 있다. 육아 책에는 철학과 사유가 빠지기 쉽다. 관계 심리학 책에는 일상의 구체성이 드러나기 어렵다. 그리고 인문학 책은 현실의 생생함에서 곧잘 벗어나곤 한다.


그런데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는 이 세 가지를 한데 묶어 새로운 삼각형을 만든다. 현실의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관계의 본질을 파고들며, 고전과 영화라는 인문학적 렌즈를 통해 성찰한다. 이렇게 맞물리는 구조가 참 독특하다.


보통 육아 책은 어린 자녀가 중심이 된다. 하지만 이 책은 사춘기 이후 성인이 되어가는 아들과의 갈등이라는 드문 지점을 다룬다. 아이가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충돌들. 게다가 그 아들은 많은 부모의 로망인 서울대생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를 그렇게 쉽게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명문대생의 아빠도 자식과의 관계는 힘들다는 사실을 솔직히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교육의 성공이 삶의 만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현실과 직면한다. 육아는 성적이나 결과가 아닌, ‘관계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 책의 미덕은 갈등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부모, 아니 인간은 자신의 약한 면을 감추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저자는 “아빠의 좋은 점은 하나도 없어”라는 아들의 선언으로 화끈하게(?) 책의 서막을 열어젖힌다. 충격적인 문장이지만 그래서 이 책의 진정성이 증명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저자는 자신을 미화할 의도가 없어 보인다. 화를 내고, 실수하고, 상처 주고, 상처받는 불완전한 부모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관계의 여지를 만든다. 서로 틈이 있으니 다시 마주 앉을 수 있다. 완벽한 부모는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존재한다 해도 대화는 싹트기 어렵다.


그렇다고 감정의 토로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이야기를 사유로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 갈등 장면을 그냥 싸운 이야기로 남기지 않고, 고전 문학이나 영화 속 장면과 연결한다. 『모비 딕』의 에이해브 선장과 항해사의 대립에서 자존심과 책임의 문제를 읽어낸다. 영화 〈결혼 이야기〉의 부부 싸움에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의 구조를 분석한다. 『어린 왕자』를 통해서는 “스스로 시간을 들여 경험한 것만이 진짜 의미가 된다”라는 사실을 부모-자식 관계에 투영한다. 현실의 갈등을 인문학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여기서 이 책이 가진 구조의 힘이 드러난다. 육아는 구체적인 사건과 감정의 현장이다. 관계는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힘의 구조와 상호작용이다. 인문학은 그 관계를 해석하고 새로운 시야로 안내하는 렌즈다. 이 셋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현실 → 성찰 → 변화라는 삼각형의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인문학이 이렇게 일상에 밀착될 수 있구나”를 체감하게 된다. 인사이트가 어렵지 않게 스며든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지점은 육아의 질문 자체를 바꾼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를 어떻게 키울까?”라고 묻곤 한다. 이 말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통제의 시선이 들어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질문을 “자녀와 어떻게 만날까?”로 바꾼다. 만난다는 건 수평을 전제한다.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마주 서고, 대화하고, 때로는 충돌하면서도 끈을 놓지 않는 태도다. 이러한 관계는 공식처럼 풀리기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은 완벽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함께 버티는 법, 이해하려는 태도, 불편함을 피하지 않는 용기를 말한다. 여기서 이 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메시지가 드러난다. 성장해야 하는 건 자녀만이 아니라 부모도 마찬가지라는 것. 자녀가 성인이 되어갈수록 부모는 가르치는 사람에서 함께 고민하는 동료가 된다. 이 변화는 쉽지 않다. 권위를 내려놓아야 하고, 자신의 틀을 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과정을 통과해야만 관계는 단단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기록한 것이 단지 육아가 아니라, “부모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들”이라고 느꼈다.


책을 읽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의 상황과도 겹친다. 내게도 다섯 살짜리 딸이 있어서다. 아직은 귀엽고 평화롭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이 책 속의 장면들을 겪게 될 것이다. 이미 짐작은 했지만, 생생한 경험담을 읽어 보니 암담하다. 대화를 시도해도 거절당할 것이고, 저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고, 결국 꼰대라고 무시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적어도 도망치지 않을 준비는 해야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런 희망도 생긴다. “그래도 난 아들이 아니라 딸이니 조금 낫지 않을까…?”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는 육아를 넘어 모든 관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부모와 자녀뿐 아니라, 부부, 친구, 동료, 세대, 집단 간 갈등까지 연결된다. 불편한 감정을 피하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가 사유하고, 끝내 이해와 용서로 나아가는 여정. 이것은 어떤 화해의 미담만은 아니다. 상처를 입고도 다시 마주 앉는 인간의 용기에 대한 성찰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어른을 위한 인문학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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