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LG 트윈스 통합우승 축하곡
LG 트윈스가 2년 만에 다시 우승했다. 이번에도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잇는 갓벽한 통합우승이었다. 2년 전, 29년 만에 우승했을 때 브런치에 자축 글을 썼었다. 야근하면서 한국시리즈 5차전을 보다가, 고우석이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는 순간에 엉엉 울어버린 기억이 떠오른다. 29년 만의 우승이 감격적이면서도 그 오랜 세월의 무게가 야속했던 탓이다.
이번에는 그때처럼 오열하지는 않았다. 이미 2년 전에 묵은 한을 풀어버린 덕분이다. 달리 말해 강팀을 응원하는 여유와 너그러움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도 안 쓰려고 했다. 우승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브런치에 글까지 쓰나… 싶었지만, 그래도 난 아직 강팀의 팬이 못되나 보다. 결국 또 이렇게 덕후 냄새 풀풀 풍기는 글을 쓰고야 만다. 요즘 글쓰기 코칭 책을 쓰면서 강조하는 철학이 있다. “좋아하는 것을 쓰면 된다.”, “흥미야말로 글을 쓰게 하는 가장 확실한 원동력이다.” 이 또한 이 명제들에 매우 충실한 글일 듯하다.
직설적인 제목의 정직한 곡이다. LG도 "2년 만에" 챔피언으로 돌아왔다. 사실 나는 2024년에도 우승할 줄 알았다. 2023년 확립한 팀의 전술적 방향성이 워낙 좋았고, 그걸 뒷받침하는 전력도 탄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개막하자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전력 이탈이 잦았다. 결정적으로 리그 최고 수준이던 불펜이 붕괴하면서 2연패가 무산됐다. 흔히 말하는 우승 후유증이었던 셈이다. 올해도 전력 보강이 착실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2년 만에 정상을 되찾았다. 하긴 원래 창업보다 수성이 어려운 법이기는 하다.
김동률 2집 <희망>에 실린 이 곡은 제목처럼 솔직하고 담백하다. 그가 버클리 음대에서 영화음악을 공부하던 시절에 만들어서인지 시네마틱한 구성미가 돋보인다. 피아노 선율과 현악 편곡이 서정적으로 맞물리며 한 편의 서사를 따라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전주부터 마무리까지 정교하게 설계된 다이내믹은 김동률의 대표 브랜드가 된 ‘클래시컬한 품격’의 출발점이 된다.
하지만 이 곡은 그의 화려한 명곡 라인업에 좀처럼 끼지 못한다.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정도다. 실제로 들어보면 녹음 퀄리티가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동률 본인도 공연에서 이 곡을 안 부른다.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산책> 공연에서도 안 부르는지 확인하러 가고 싶었지만, 6년 만에 참전한 티켓팅에 실패한 건 안 자랑이다.
이 곡도 제목에서부터 와닿는다. <Back in the Game>, 말 그대로 다시 돌아온 자의 노래다. 2024년의 실패를 딛고 우승 트로피를 되찾은 LG 트윈스의 서사가 그대로 덧입혀진다. 가사도 절묘하게 팬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Now I'm back in the game
이제 난 이 게임에 돌아왔고
Brought back my smile, it's been a while
넌 내 미소를 돌려줬어
이 곡은 요즘 핫한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 페더 엘리아스의 시그니처를 그대로 품고 있다. 그의 음악은 북유럽 특유의 투명한 감성과 청량한 편곡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곡이 딱 그렇다. 우선 기타와 드럼이 리듬을 타며 흥겨운 분위기를 만든다. 여기에 신시사이저 음들이 밝게 교차하며 곡의 공간감을 넓힌다. 페더 엘리아스의 미성은 과유불급의 철학을 실천하듯 미묘한 호흡으로 낙관의 정서를 끌어올린다.
곡 구조도 흥미롭다. 1절에서 담담히 시작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브리지에서 텐션을 조금 낮춘 뒤, 다시 후렴에서 에너지가 폭발한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이동진…?) 이 구조는 한 시즌 내내 고비를 넘어야 하는 팀의 리듬과 닮았다. 초반의 긴장, 중반의 침체, 그리고 후반의 역전. 결국 <Back in the Game>은 단순한 복귀 선언이 아니라, 무너진 뒤 다시 일어서는 낙관의 의지다. 그 메시지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직한 사운드를 통해 느껴진다. 2025년의 LG 트윈스도 그렇게 불필요한 장식 없이 자기 리듬으로 돌아왔다.
LG의 우승 여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개막 직후에는 압도적 전력으로 선두를 달렸지만, 6월 들어 경기력이 떨어지며 순위도 내려앉았다. 그러나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 전열을 재정비한 뒤 다시 상승세를 타며 1위를 탈환했다. 이 흐름이 그대로 한국시리즈까지 이어졌다.
특히 7월 22일 KIA 타이거즈전은 시즌의 전환점이었다. LG는 9회 초까지 3점 차로 뒤지고 있었다. 그때 박해민이 상대 마무리투수 엘나쌩 정해영에게 터뜨린 동점 쓰리런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후 LG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되었다. 그 경기를 기점으로 6할대 승률을 기록하며, 한화와의 5.5게임 차를 뒤집고 마침내 정상을 되찾았다.
이런 ‘역전의 서사’에는 베이비페이스의 <Drama, Love & ’Lationships>만큼 어울리는 곡이 없다. 이 곡에는 1990년대를 풍미했던 R&B 프로듀서 베이비페이스의 정수가 담겨 있다. 미디엄템포의 컨템퍼러리 R&B 구조 위에, 따뜻한 신스 패드와 절제된 드럼 루프가 세련되게 얹혔다. 전반부는 부드럽고 내성적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화성이 풍부해지며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 섬세한 감정선은 시즌 내내 부침을 겪다가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린 LG의 행보를 닮았다. 가사 또한 인상적이다.
It's about drama and love and 'lationships
이건 드라마, 사랑, 관계에 대한 거야.
And when the going gets tough, you deal with it
어려운 때가 와도 네가 해결해야 해.
And you don't ever, you never walk away from it
그리고 넌 절대 도망가면 안 돼.
You hold on, be strong
끈기를 가지면 강해질 거야.
러브송답지 않게 인내와 복원의 미학을 말하고 있다. 위기가 찾아오면 도망치지 말고 감당하라는 메시지 - 그것이야말로 올해 LG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일지 모른다. 팀은 흔들렸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미묘한 리듬과 감정의 여백이 핵심이다. 그러나 그 절제된 감정이 후반부에 폭발하면서 리스너는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9회 초 박해민의 쓰리런 홈런이 만들어낸 카타르시스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한 시즌을 건너온 팬들의 감정이 베이비페이스의 잔잔한 리듬 속에서 천천히 풀려나가는 듯하다.
축하의 피날레로는 역시 강렬한 록 사운드가 제격이다. 1990년부터 LG 팬질을 해온 내가 보기에 올해가 역대 최강 전력이었다. 물론 많은 팬이 1994년을 LG 최고의 해로 꼽고, 2023년 29년 만의 우승도 임팩트가 강했다. 하지만 올해의 LG야말로 타격, 투수, 수비 모든 면에서 완벽한 균형을 이뤘다. 10승 투수 4명을 배출한 선발진, S급은 없지만 A급이 가득 포진한 타선, 10개 구단 최강의 센터라인(feat. 박해민, 신민재), 주전/비주전 경계가 없다시피 한 선수층(feat. 구본혁, 문성주)까지, 뭐 하나 빠질 게 없었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흔한 아재팬으로서 2000~2010년대의 암흑기 동안 팀과 선수들을 엄청나게 욕했었다(이제는 반성한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오히려 “와, 이걸 역전한다고?”라며 감탄할 날이 더 많았다.
이 팀에게 어울리는 곡이 바로 보스턴의 <Higher Power>다. 제목 그대로 ‘더 높은 힘’, 그러니까 한계를 넘어서는 인간의 집중력과 완성도를 의미한다. 올해 LG는 정확히 그 경지에 있었다.
보스턴은 1970~80년대를 상징하는 록밴드다. 그런데 이 팀을 고전이라고 부르기에는 기술적으로 상당히 앞서 있었다. 리더 톰 숄츠는 MIT 공학 석사 출신으로, 음향공학자로서 모든 사운드를 직접 설계했다. 그의 완벽주의는 편집증적이었다. 수백 번의 리테이크와 믹싱을 거쳐야 한 곡이 완성됐다. 그래서 보스턴의 앨범은 거의 8년 주기로 나오곤 했다. <Higher Power> 역시 1997년 발매된 <Greatest Hits> 앨범을 위해 새로 녹음된 곡으로, 숄츠의 장인 정신이 잘 표현되어 있다.
사운드의 핵심은 밀도다. 정교하게 쌓인 기타 트랙만 수십여 개에 달한다. 곡을 재생하는 순간 겹겹이 포개진 기타 사운드가 파도처럼 밀려든다. 그리고 드럼과 베이스는 그걸 전력을 다해 떠받친다. 코러스의 멜로디는 단순한 편이지만, 다층적인 하모니가 폭넓은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곡이 후반으로 갈수록 음압이 높아지며 리듬 섹션이 폭발한다. 마치 잠실구장의 전광판이 역전으로 바뀌는 순간처럼 심장이 요동친다.
그래서 <Higher Power>는 그저 ‘힘의 노래’가 아니다. 이는 기술과 집념, 그리고 완벽을 향한 강박이 만들어낸 예술이다. LG 트윈스의 2025년 시즌이 그랬다. 냉정한 분석과 뜨거운 집중이 공존했고, 그 집요한 조율 끝에 완벽한 팀이 완성됐다.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이라는 화려한 마무리에 이 강렬한 록 트랙을 BGM으로 깔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