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쟁이 Mar 03. 2021

6. 우리 꿈을 실현시켜 줄 건축가는 어디에?

- 일주일에 두 번 설계 상담을 받다

설계 상담을 딱 두 군데만 받아야겠다고 마음 먹고, 고민 끝에 결정하고 약속을 잡았다. 빨리빨리 진행하고픈 마음에 토지 잔금 납부도 하기 전이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계약과 대출 완료했으니 큰일 날 일은 없지 않을까.

네 자매 모두 일주일에 평일 두 번 시간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지라 한번씩만 꼭 참여하는 걸로 했다. 10월 둘째주 화요일에는 내 고등학교 선배와, 목요일에는 신랑 거래처에서 소개해 준 곳과 만나기로 했다. 나와 셋째는 시간이 되어 둘다 참석하고 넷째와 막내는 한 군데씩만 참석하기로 했다. 넷째 남편인 S가 두 번째 미팅에 참석을 원해 상의 끝에 그러기로 했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는 인원을 맞추는 것이 더 좋겠지만 두 미팅에 전원 참석하는 것도 아니라서 너무 야박하게 굴 필요는 없으니까.

궁금한 사항들을 직접 듣고 싶다는 제부들에겐 기꺼이 참석 기회를 줘야 한다. 되도록 네 자매가 진행하려는 이유는 혹시 생길 잡음을 우려해서니까, 상관 없는 경우는 웬만하면 허용하자. S는 동생을 통해 "업체 결정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겠다"고까지 전해왔다. 우리가 너무 까다롭게 굴었나. 어차피 남편들도 모두 동의해 줘서 가능한 일인 것을!

가족으로는 오래 지내왔지만 함께 업무를 해본 적은 없어서인지 그동안 잘 몰랐던 의외의 모습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집 짓는 일에 시큰둥할 거라 예상했던 S가 초반부터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다양한 정보들을 찾아보고 집에 대한 구상도 여러 방면으로 해보고, 집의 모양이나 구성을 그림으로 그려도 보고... 가끔 내게 전화를 걸어 궁금한 걸 묻기도 했다. 흠, 참의로 의외야 의외!


요즘 건축은 용적률 싸움이야!

첫 설계미팅을 잡은 화요일 아침, 다들 부지런을 떨어 신용산역 근처에서 만났다. 한때 그 근처로 출근했었는데 그때가 벌써 20년도 더 지난 옛날이라니. 몰라 보게 달라져 있는 주변을 보며 놀라워하다가 만나기로 한 커피숍을 못 찾고 헤매느라 10분이나 늦었다. 이럴 수가! 하도 돌아다녀 서울 애들보다 서울 지리를 잘 알던 내가!

언제부턴가 너무 큰 건물 실내로 들어가면 미로 같은 공간에서 헤매기 일쑤다. 결국 빌딩 인포에 물어 옆 건물이라는 안내를 받고서야 커피숍을 찾아냈는데,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한다는 얘기에 슬쩍 위안을 얻는다. 이런 서울에서 어찌 10년을 살았나 싶다.

때가 때인지라, 커피숍에 들어가자마자 QR코드 체크인부터 했다. Covid-19가 참 힘들게도 한다 싶지만, 또 우리들의 집을 짓게도 해주는구나 싶어 마냥 투덜거릴 수가 없다.

먼저 도착해 노트북을 켜놓고 기다리던 선배가 반갑게 맞아준다. 커피숍의 넓지 않은 테이블에 바짝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 세 자매가 좀 부담스러웠으려나. 기본적인 부지 상황이나 우리들이 짓고자 하는 집의 정보는 미리 전화와 이메일로 얘기해둔 상태다.

H1대 건축공학과를 나온 P선배는 국내 건축사사무실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와 취업을 했었다. 미국으로 가기 전 한동안 종종 모여 술 마시던 멤버 중 한 사람이다. 나중에 집을 짓게 되면 선배랑 작업을 해봐도 좋겠다고 예전부터 생각해 왔었다. 십 년 전쯤 미국에서 돌아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몇 년 전 고등학교 친구가 선배에게 의뢰해 집을 지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래서 집 짓기를 구상하며 궁금한 게 생기면 선배한테 연락해서 묻고는 했다. 귀찮을텐데 기꺼이 답해주고, 설계를 부탁하면 해주겠노라 대답도 들은 터다. 그런데 막상 동생들이랑 같이 하는 일이다 보니 나랑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이 연관되는 게 살짝 부담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P선배와의 설계 미팅은 사실상 건축의 기초적인 것들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80평 대지에 얼마나 큰 집을 지을 수 있나부터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구조 변경이 어렵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것까지. 한 달 내내 우리끼리 백번도 넘게 넣어다 뺐다 한 시설들이 현실 속에서 와장창 깨져나가는 절망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제부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스크린골프장도 "쉽지 않다"고 말하는 바람에 실망도 이만저만 아니다. '어떡하지, 그걸로 꼬셨는데~' 아마 동생들 중에서는 그런 생각이 가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의 허무맹랑한 바람에 현실적인 감각을 불어넣어준 좋은 계기가 됐다. 책에서 보긴 했지만, 지자체마다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규제가 다 다르고 특히 신도시의 경우는 좀 더 까다로운 편인 것도 알았다. 처음엔 마냥 넓고 높게 지을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우리 네 가족이 살려면 구획을 나누기 쉽지 않겠다. 우리가 택한 토지는 주택으로는 3층만 사용할 수 있는 곳이다. 다락방은 온전하게 한 층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한 층씩 쓸 수가 없는 거다. 한 층에 한 집 들어가기엔 좀 넓지만 그렇다고 한 층에 두 집 들어가기는 좁은 애매한 크기의 땅. 이걸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설계의 전부일 수 있겠다.

"요즘 건축은 용적률 싸움이야. 연면적 제한이 있기 때문에 연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서비스 면적을 얼마나 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지."

P선배의 그 말은 두고두고 새겨야 할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OOO 대표님 소개로 연락드린 ***입니다.

네 자매와 가족들(4가구 15명/40대 어른 8명, 5~15세 아이 7명)이 함께 살기 위해 상가주택 부지 약 80평 정도를 매입했습니다. 1층은 상가(또는 가족공용공간), 2~4층(옥탑까지)에 4가구가 살 집을 지을 계획입니다.

용적률 제한이 있어 충분한 공간이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아 고민입니다. 세 가구는 4인, 한 가구는 3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함께 할 공간이 마련된 집을 꿈꾸고 있습니다.

토지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는 파일로 첨부합니다. 현장 사진에서 건물 사이 빈 자리가 부지입니다. 다음주에 찾아뵙겠습니다.  - 9월 28일 건축가에게 보낸 이메일.


이틀 후 두 번째 미팅을 가졌다. 미팅에 앞서 기본적인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놓은 터라 신사역 근처 건축사사무실에 들어서니 회의 자료가 잘 세팅되어 있었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다양한 건축 모형들이 놓인 입구를 지나 큰 모니터에 우리집 부지 사진이 전체화면으로 띄워져 있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진짜 저 곳에 우리가 집을 짓기는 짓는구나!'

보내준 자료들을 토대로 첫 번째 미팅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인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중요하다. B건축사사무소에서 최근 해온 작업들 중 우리가 지을 집과 개념이 비슷하거나 형태를 참고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함께 보여주었다. 두 번째 미팅엔 나와 셋째, 넷째 부부가 참여했다.

첫 번째 미팅으로 건축의 아주 기본적인 내용을 습득했다면 두 번째 미팅에서는 피상적인 그 개념들을 구체적인 형태로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나마 나는 20년 전 건축잡지에서 2년 남짓 취재기자로 일하며 기웃거린 분야라 어설픈 지식이라도 있었지만 동생들은 집 짓는 일에 1도 관심이 없었으니 백지 상태다. 사실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막상 진행하다 보니 매번 '그 다음엔 뭘 해야 하지?'가 되었다.


"자매 4명이 함께 건물을 짓는다!?"

지난 번 전화통화에서도 느꼈지만 건축가는 이 말 한 마디로도 아마 굉장히 맡기 꺼려지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다양한 요구와 의견이 있을 것이며, 의견취합은 얼마나 어려울까. 만나기도 전에 웬만하면 맡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처음 통화에서도 미팅 초반에도 살짝 그런 느낌을 받았다. 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팅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 H건축가가 말했다.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요."

내가 기다리고, 기대하던 말이었다.  나는 그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은 것이었으니까.

꽤 유쾌하게 질문하고 답하고 예를 들어 보여주며 미팅을 끝내고 나오며, 여기와 함께하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 동생들과의 작업이라 더더욱.


두 군데의 미팅을 끝낸 후 우린 짧고 굵게 의견을 나눴다. 분명히 장단점이 있었다. 특히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고민이 필요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각 대학별 건축학과 출신들의 성향에 따른 특징적인 차이도 명확한 편이었다. 살짝 선입견과 편견이 포함되긴 하지만 H1대와 H2대의 대표적인 차이랄까. 내 개인적인 느낌은 그랬다.

두 번째 미팅을 한 건축사무소를 최종 결정했다. 비슷한 류의 작업을 해온 경험이 많았고 제시하는 스타일이 우리가 생각했던 부분과 잘 맞아떨어졌다. 한 가족이 아니라 네 가족의 집을 구성하는 것이다 보니 아기자기한 건축을 많이 해온 두 번째 건축가에게 마음이 좀 더 기울었다.

초반에 도움을 많이 준 P선배에겐 좀 죄송했지만 최종 결정을 했다. P선배에게 연락을 드리고 H건축가에게 계약하자고 연락을 했다.

 


작가의 이전글 5. 우리 VIP 된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