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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쟁이 Jul 19. 2021

8. 설계1. 테트리스 한 판 해보실래요?

미션. 세 층을 네 집으로 나눠라!

상담을 받고난 후 열흘쯤 지나 설계 계약서를 작성했다. 기본적인 표준계약서에 몇 가지 합의된 조항들을 확인 체크하고 사인하는 과정은 간단하지만 이 또한 신중하게 살펴봐야 하는 부분이다. 설계비도 어차피 건축가 측에서 제안하고 우리는 거기서 조금 네고를 부탁하거나 그냥 수락하는 정도. 설계비 계산하는 공식도 있었는데(건축사협회 홈피에서 했던 것 같다) 뭔가 좀 복잡했다. 건축 면적, 시공 방법의 난이도(공정방법?) 등도 포함시키는 방식이다. 예상되는 평당 건축비도 계산식에 넣는 것을 보며 다시 그 말이 떠올랐다.

'비싼 건물은 설계비도 비쌀 수밖에 없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조금 이해가 되기도 했다.

설계비는 세 차례에 나눠 지불하게 된다. 계약서 사인 후 10일 이내에 1차, 건축허가 접수 후 2차, 착공시 완성도서 납품 후 3차 마지막이다.


계획설계가 완료되기까지 꼬박 세 달 걸렸다. 지난해 10월 20일 설계 계약을 하고 올 1월 27일에 건축허가를 위한 도면을 시청에 접수했으니. 해를 넘기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봤으나 역부족이었다.

첫 미팅을 하던 날의 어색한 공기와 어수선한 설렘들이 벌써 아련하기만 하다.        

첫 설계미팅을 한 2020년 11월 15일 논현동의 건축소사무소. 8명의 건축주가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파란카디건 뒷모습이 설계를 맡은 황소장님인데 표정이 보일 것만 같다.^^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공간 구성이 가장 기본인데 또 그게 제일 문제다.

1층은 아예 주거공간으로 쓸 수가 없는 거였다. 주변 다른 건물들을 돌아보며 1층은 모두 가게인 것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가장 유리한 방법인가보다 했을 뿐이다. 하나하나 따져 들어가 보니 엄격한 규제들이 장난 아닌 거다.

우리의 80평 토지에는 일단 4개 층을 가진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그 중 주거공간은 3개 층만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1층은 상업공간, 2~4층은 주거공간이 된다. 온전한 5층은 불가능하나 4층 위쪽으로 다락을 만들 수는 있다.

이 결론으로 우린 네 자매의 집을 구성해야 한다. 사실 처음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1층을 조금 작게 하고 2층부터 크게 하면 되지 생각했다. 그러나 건폐율은 그닥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으나 용적률 제한이 150%이기 때문에 마냥 넓은 면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는 거다. 다락은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그만큼 활용도는 떨어졌고 다락 공간 빼고 대략 120평 이내에 그 모든 것을 넣어야 한다.


3개 층에 네 가구를 넣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한 층이 무한대로 넓어질 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한 층에 두 가구가 온전히 들어가기엔 좁은 크기다. 결국 여러 고민 끝에 2층과 3층은 한 가구씩, 4층을 두 가구가 나누어 쓰되 다락까지 나눠서 복층으로 만들어보는 방향으로 잡았다.

남향과 공원뷰를 모두 갖기 위해 세로로 균등하게 분할한 모듈. 길쭉한 형태라 공간활용도가 떨어짐. <보편적인건축 제공>
남향과 공원뷰를 모두 가지면서도 공간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비균등 분할한 모듈 <보편적인건축 제공>
공간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가로로 분할하되 4층과 다락을 엇갈려 구성, 공원뷰와 남향을 나눠가진 모듈 <보편적인건축 제공>


모두 모인 첫 미팅에서 이 세 가지 그림을 만나게 됐다.

아! 우리 만큼이나 건축가도 고민이 많았던 거다. 누구나 공원뷰(공원은 거의 북향에 가깝다)의 거실을 갖고 싶었고, 그렇다고 햇볕 잘 드는 남향도 놓치기 싫었다. 한 개 층을 한 가구가 쓰는 2, 3층은 상관이 없으나 4층과 다락은 쉽게 해결이 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세 번째 대안처럼 4층과 다락 계단을 크로스하는 생각까지 해냈을까. 밤새 고민했을 건축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네 가구의 기본 구성원을 표시하고 요청사항을 담은 초기 구성안. <보편적인건축 제공>


공간을 완전히 균등하게 분할하기 위해서는 ㄱ자든 ㄴ자든 꺾어 네 가구 모두 두 개 층으로 구성하는 것이 낫겠지만, 그렇게 하려면 내부 계단도 너무 많아지고 공간활용도도 지나치게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앞서 고민했던 부분들을 수정 보완, 조정하여 위와 같은 그림이 나왔다.

아이가 둘씩인 동생들에 비해 아이 하나인 우리집이 조금 적은 공간을 쓰는 것으로 합의하니 4층도 대략 답이 나왔다. 그렇게 대략적인 구성을 마무리 지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지만, 그럭저럭 최종안이 나온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그림을 수첩에, 핸드폰 메모에 그려댔는지 나중에 보니 별별 모양의 그림이 다 있었다. 제부 S도 가끔씩 그림을 그려 보내곤 했다.


아주 예~전에 테트리스 게임을 처음 해봤던 때가 떠올랐다. 청소년 시절에도 못 해본 오락을 대학생이 되어서 뒤늦게야 빠져들었는데 어느날 밤에 자려고 누워 눈을 감으니 길쭉하거나 ㄱ자로 이거나 T자 모양을 한 막대기들이 눈앞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거다.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쯤에서 그 모양들을 돌려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고 신경쓰느라 잠들기 어려웠다. 그게 몇 일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다.

공간을 만드는 일이 꼭 그때의 테트리스 게임 같다. 밤에 자려고 누워있으면 갑자기 끼워맞출 그림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럼 얼른 일어나 또 그려보는 거다. 그걸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그 과정 하나하나 내겐 소중한 기억이다.

생각날 때마다 아무렇게나 그려보았던 나의 공간 구성 그림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은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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