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기록 - ‘나는 용서했다’ 첫 문장으로 이야기 만들기.
항암 치료를 하시던 아버지는 힘든 치료 가운데서도 제주도 바다에서 남들이 버린 공병을 수거하러
다니셨다. 성당 한 켠에 창고도 직접 마련해서 신자들에게 공병수집 봉사 협조를 요청하셨다.
바다도 깨끗하게 청소하고, 공병 수익금으로 성당 인근 독거노인 집을 찾아서 용돈도 드리고,
동네에서 소문난 맥가이버 손으로 어르신 집을 고쳐드리고 오셨다.
바닷가 드라이브 가자고 나갔던 날, 그날도 아버지는 지나가던 방파제에서 낚시꾼들이 버린 술병을
줍고, 독거노인 할머니 집으로 갔다. 얼떨결에 따라간 할머니 집. 혼자 사시는 분이니 사람이
얼마나 반갑겠는가. 멀뚱멀뚱 있었던 나. 아버지와 할머니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신다.
할머니는 앞이 안보이시니 아버지의 깊은 병색도, 따라온 딸이 임산부라는 것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빛과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 새로운 생명과 죽음의 길목에 서 있는 사람. 예상치 못한 만남과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던 날이다.
아버지는 그러셨다. 쉽게 하는 기부보다 내 몸과 마음의 정성을 쏟고 나눠야 그게 진짜 봉사라고.
아버지는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나눔을 통해 치유받고 싶으셨던 거다. 우리 아이가 백일 때도
백일잔치를 하지 않고, 떡과 사탕 같은 것을 잔뜩 사들고 근처 보육원에 가서 나눔을 하고 오셨다.
세상 제일 딱딱하던 우리 아버지도 아이를 등에 업고, 어릴 적에 가난해서 죽었다는 동생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죽은 동생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 아이를 업어주면서
어릴 적 업어줬던 동생이 생각났던 아버지. 그래서 보육원 아이들에게 사탕을 사주고 싶으셨다고
한다. 어린 동생에게 사탕 하나 못 쥐어준 것이 세월이 그렇게 많이 지났는데도
한으로 남은 것 같았다.
아버지는 가을에 태어난 아들의 돌잔치를 지켜보시고, 그다음 해 봄에 돌아가셨다.
그 사이 아버지는 한평생 살아오신 독일 병정(별명) 같은 모습과는 반대로
가끔은 부드러운 말씀들을 하셨다.
“너희들한테 미안하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줘라.”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식대로 세상과 화해를 하며 마지막 시간을 보내셨던 것이리라.
정작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의 표현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가
그때의 나를 어리석게 생각하고 아쉬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 이야기는 서두의 용서에 관한 대화 부분만 빼면 모두가 실제 상황이다.
하지만,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마치 모두가 실제상황인 것처럼 아버지가 해주시는 말씀처럼
내게 다가온다. 그렇겠지. 내가 마음에 품은 미안함이 있다고 해도 아버지는 다 용서해 주실 텐데.
왜 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인지.
용서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네이버에서 용서의 이야기를 검색해보기도 했다. 억울한 옥살이를 원망하지 않고 용서한 이야기,
암살미수범을 용서한 교황님 이야기. 모두 대단하다 싶었지만 역시나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았다. 또 키워드가 어떤 생각을 떠올리게 하지 않을까?
하늘, 바다... 아버지... 그리고 딸. 그날의 기억들. 아버지의 음성.
결국 이야기는 내 경험 속에 존재하는구나.
흘러간 기억 속에 내가 듣고 싶었던 마음의 소리가 결부되었다.
아! 또 과거로 흘러가버렸구나. 그렇지만 과거를 풀어내지 않고는 앞으로 나갈 수도 없다.
우러나오는 글을 당당히 받아들이기로 했으므로, 아버지와 함께 제주 바다를 달렸던
그날의 기억을 툭 내려놓는다.
부끄러움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