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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a Apr 19. 2023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에밀 아자르<자기 앞의 생>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와 함께 한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그것은 프랑스의 것이 아니었다. 하밀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기를,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 노파의 얼굴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말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시간에 관해 내 생각을 굳이 말하자면 이렇다. 시간을 찾으려면 시간을 도둑맞은 쪽이 아니라 도둑질한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자기 앞의 생> p.178




내게 새로 생긴 이름이 있다. 2020년 가을부터였다.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부캐가 생겨난 것이다. 왠지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생각해 보면 그리 대단하게 지킬 이름이 아니었는데도 왜 그 이름으로 조그마한 글을 내미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이름뒤로 숨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본명보다는 닉네임으로 가벼운 방패를 하나 내밀고 있는 느낌이 필요했다. 그렇게 생긴 베카라는 닉네임은 지금껏 여러 단체 톡방에서 불리고 있다. 그럼 그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근처에 살던 엄마 같은 막내이모가 성당을 다니자고 몇 년 동안 얘기했는데 그 낯선 상황이 싫어서 미루다가 어느 날 선뜻 입교자 교리를 신청했다. 계기가 있었다. 장황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갑자기 동생들의 가장이 된 철없는 이십 대가, 흔들거리던 생을 살면서 부딪힌 시간 속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고야 말았기 때문이라고만 적어두겠다. 그다음 날 뚜벅뚜벅 성당으로 들어가 입교자 신청을 하고 교리를 외우고 테스트를 받고 세례를 받았다. 대모를 서주신 이모는 입꼬리를 활짝 올리고 있었지만 그 따뜻한 눈빛 속에선 여전히 조금은 슬프고 가여워하는 흔들림이 있었다. 우리 이모는 웃을 때 눈이 슬프다. 반짝거리는 빛은 눈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례명을 고민할 때 이모가 권해준 이름이 베로니카였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한 예루살렘 여인이 땀을 닦도록 바친 수건에 예수의 얼굴이 찍혔고 그 수건의 주인인 여인의 이름이었다. 마음에 드는 그 이름은 사실 라틴어 베라 이콘(Vera icon, 참된 모습)에서 유래되었다고 나무위키에 나온다. 베라 이콘이라는 라틴어도 마음에 든다. 그렇게 성당을 가서 미사를 드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일요일 미사를 위해 들어선 성당 입구에 책상이 하나 있었다. 두세 명의 청년들이 성가대원 모집을 했다. 잠시 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니 청년부원들이 호객행위를 하듯이 3층 성가대석 쪽으로 오라고 말을 건넸다. 잠깐 눈길을 던진 후  미사를 드리러 본당으로 들어갔다.


미사를 드리는 동안 성가 합창이 유난히 아름답게 들렸다. 뭐에 홀린 듯 미사가 끝난 후 3층으로 발걸음이 움직였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왜 그곳을 가는지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3층의 커다란 문 앞에서 최소한 5분은 머물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나, 갈 수 있나, 그냥 다시 내려가서 집으로 돌아갈까 망설이는 순간 이미 내 손은 문을 힘껏, 하지만 조심스럽게 밀고 있었다. 문을 금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밀자 아까 책상에 앉아있던 지휘자와 눈이 마주쳤다. 큰소리로 환영하는 성가대 단원들에게 인사를 하니 앞으로 나와서 좋아하는 성가를 부르라고 했다. 나의 주책맞은 용기는 그곳에서 혼자 떨리는 음성으로 성가부르고 소프라노 파트가 되었다. 천만다행으로 바로 내 뒤로 한 살 위 언니가 신입부원으로 들어와서 메조소프라노가 되었다. 그리고 언니와는 아주 친한 친구로 지냈다. 성가대가 된 후 얼마 되지 않아 크리스마스 특별 연주회 연습을 했다. 매일 일이 끝나자마자 달려갔다. 성당에서 지낸 시간이 쌓였친해진 선후배 성가대원들이 나를 베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닉네임은 20여 년 전 그렇게 태어났다. 그 이름이 지금은 본명보다도 익숙하게 느껴지곤 한다. '베카'라고 불릴 때의 나는, 그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캘리를 쓰는 베카, 필사를 하는 베카, 책을 읽고 인증하는 베카, 브런치 글을 는 베카. 베카는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이름은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름은 누군가 불러주어야 존재한다. 아무도 부르지 않은 이름은 필요하지 않다. 캐스트 어웨이에서 톰행크스가 배구공에 붙인 '윌슨'이라는 이름은 외로운 척 놀랜드에게 꼭 필요한 한 '존재'였기 때문에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는 불러야 할 이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밀 할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모모는 겨우 열네 살에 이름의 의미를 알고 있다.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려고 부른다.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자꾸만 나도 부르고 싶다.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베카, 베카!"


나의 이름이 불려지며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좋은 관계 속에서 살고 싶다. 그렇게 삶의 끝까지 본명이든 닉네임이든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낙타대상들과 함께 먼 사막을 느릿느릿 걸어오는 시간을 잘 살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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