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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상 Apr 13. 2021

03 인사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첫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상대를 판단할 수 있는 건 단지 겉모습뿐이다. 대화를 나누기 직전까지 우리는 상대의 외모를 보며 모든 것들을 가늠한다. 목소리는 어떨지, 직업은 무엇일지, 어떤 걸 좋아할지, 기분은 어떤지 등등. 어릴 때부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항상 바뀌는 손님들을 마주하면서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나누는 대화는 메뉴와 가격 이야기밖에 없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많은 것들이 파악되었다. 연기를 공부하면서 사람에 대한 관찰은 꼭 필요한 과정이었는데 정작 나란 사람에 대한 관찰은 부족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녹음된 내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목소리가 좋다는데 내가 듣는 내 목소리는 늘 이상했다. 묵직한 중저음도 아니고 카랑카랑한 하이톤도 아니었다. 애매했다.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연기를 하면서 고민이 되었던 부분이기도 한데 소름 끼치게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렇다고 개성이 넘쳐서 캐릭터가 있는 얼굴도 아니었다. 닮은 사람이 많은 흔한 얼굴, 쌍꺼풀이 없고 눈이 찢어진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 그런 얼굴. 그게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어디에든 어울릴 수 있는 얼굴과 목소리. 기억에 남는 스타일은 결코 아니었다. 


아나운서는 철저하게 이미지 싸움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한 마디로 절반 이상 판가름이 난다 할 정도로 첫인상과 첫인사는 중요했다. 어쩌면 배우는 캐릭터에 자신을 맞춰 내가 가진 단점들의 보완이 가능했다면 아나운서는 나라는 사람 자체가 가진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내야 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인사라면 신입생 때 질릴 정도로 해서 자신 있다 생각했는데 “안녕하십니까”의 관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하게 될 “안녕하십니까”는 아나운서를 준비하면서 거의 다 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한 번 ‘안녕하십니까’를 따라 해 보자. 어떤가. 자연스러운가? 소리만 들어서는 그렇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거울 앞에서 해보자. ‘안녕하십니까 OOO입니다.’ 이게 정말 쉬워 보이지만 어렵다. 이 짧은 문장에 나를 보여줘야 한다. 한편으론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12글자 밖에 안 되는 문장에 나의 매력을 담아야 하다니. 그런데 여기에서 매력을 담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의 높낮이를 신경 쓰면 문장 전체가 어색해졌다. 보통 우리가 인사를 할 때 보면 첫음절과 두 번째 음절인 ‘안녕’까지는 힘을 주지만 나머지 네 음절은 그대로 흘려버린다. 공기 중에 날아가버린 ‘하십니까’를 되찾는 것이 첫 번째 미션이었다. 사실 툭 까놓고 말하자면 평소에 인사를 할 일이 얼마나 있는가. 나야 신입생 시절에 선배들을 비롯해 예술대학 건물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렁차게 하는 게 그나마 익숙했을 뿐이다. 그때도 인사를 하는 행위가 중요했던 거지 인사는 하나도 안 중요했다. 안 하고 욕먹느니 하고 나서 창피한 게 더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제는 나를 소개하는 첫 문장으로 ‘안녕하십니까’를 대해야 한다. 입을 너무 빨리 벌려서도 안되고 눈을 깜빡이는 시간도 계산해야 한다. 호흡은 끝까지 충분해야 했으며 턱을 내렸다 드는 불필요한 동작들도 생략해야 했다. 그럼에도 여섯 글자는 또렷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은은한 미소도 담아내면 더 좋겠지. ‘안녕하십니까’를 반복하면 할수록 더 이상하게 들린다. 조금 더 밝게, 조금 더 어미를 내려서, 눈에 힘주고, 소리를 멀리 뱉듯이, 입 더 자연스럽게 벌리며, 자세 똑바로라는 피드백을 하나씩 반영하며 ‘안녕하십니까’을 하다 보면 결국에는 듣도 보도 못한 톤의 인사가 나와버린다. 중간중간 귀하게 등장하는 좋았어! 의 안녕하십니까를 기억하고 또 기억해 결전의 순간에 잘하길 기대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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