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세무사란 어떤 세무사일까?
조사국에서 몇 년 째 세무조사를 하다보니 다양한 세무대리인을 만나게 된다. 아무래도 단골손님(?)이 외국계 회사다보니 대형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 소속 회계사와 세무사, 변호사를 만날 일이 많았고, 더러 중소기업이나 개인도 조사하는 경우가 있어서 작은 세무법인 소속이거나 개인 사무소를 운영하는 세무사를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조사관 입장에서 볼 때 세무대리인이 소속된 회사의 규모와 세무대리인의 실력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대형회계법인 소속 세무사인데 영 신통치 않은 경우도 있었고, 개인 사무소를 하는 세무사였지만 야무지게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좋은 세무사를 고르는 방법”을 검색해보니 많은 포스팅이 있었지만 주로 세무대리인의 입장이거나 의뢰인의 입장에서 쓴 글이었다. 세무대리인은 과세관청과 납세자 사이에서 가교, 즉 “다리” 역할을 하면서 납세자의 입장을 과세관청에 대변하고, 과세관청이 납세자에 대해 궁금해하는 점을 파악하여 의혹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의사와 환자는 1:1 관계로 끝나지만 세무사와 의뢰인은 단순히 1:1 관계가 아니라 국세청-세무사-납세자의 삼각관계이므로 국세청 입장에서 생각하는 ‘좋은 세무사’를 파악한다면 앞으로 세무사를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시장에서 활동 중인 세무사는 크게 세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세무사 시험 합격 + 국세청 경력 없음
세무사 시험 합격 + 국세청 경력 있음
세무사 자격 자동취득 + 국세청 경력 있음
국세조사관 입장에선 2>1>3 순으로 좋았다.
세무서에 처음 발령받아 소득세과에서 일을 시작하던 날의 충격을 지금도 기억한다. 나름 세무사 자격증을 가진 직원이었지만, 자격증 공부를 하며 익힌 지식과 세무 행정은 별개였다.
처음 발령받은 때가 4월이었으니 종합소득세 신고를 앞두고 한참 수입금액 합산표 자료를 처리하고 있었는데, 세무사 자격증 공부를 할 때 이런 자료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수첩을 들고 선배님 옆에서 처리방법을 메모해가며 배워서 하나씩 처리했지만, 왜 이런 자료가 나왔고 나중에 어떻게 활용되는지는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일련의 국세 행정이 어떻게 흘러가며, 그 과정에서 어떤 자료가 생성되고 처리되는지, 과세자료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소명해야 명쾌하게 의혹이 해소되는지는 국세 행정을 직접 겪어본 사람이 안 겪어본 사람보다 낫지 않을까.
조사업무도 마찬가지어서 실제로 조사를 해본 사람이 조사대응도 잘 할 수 있다고 하겠다. 조사팀이 어떤 자료를 보고서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어떤 자료를 보여주어야 설득이 되는지는 해본 사람이 안 해 본 사람보다 낫다.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후 세무사 사무소에서 수습기간을 거쳐 근무세무사로 일하다가 세무법인으로 이직하거나 개인 사무소를 운영하는 세무사들은 비록 국세청 경력은 없지만 세무 업무 경력이 쌓일수록 노련하게 일을 잘 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국세청 경력 없이 업계에서 생존하려면 일찍부터 맨땅에 헤딩하듯 노력해서 기반을 닦아왔을터. 빅펌 재직자가 아닌 회계사도 종종 세무대리인으로 들어오는 편인데 특정 분야(ex. 캐피탈, 의약업, 중국계 회사 등등)에 특화되어 실력을 발휘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국세청 경력 없는 합격세무사보다 국세청 경력 있는 자동 세무사가 덜 선호되는가?
2001년 이전에 국세공무원으로 임용된 사람 중 행정사무관으로 5년 이상 근무하면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제도가 있었다. 2001년 이전에 7,8,9급으로 입사한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사무관이 되어 5년을 채워 세무사 자격증을 받았다. 지금까지 서장님으로 퇴직하시는 분들은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증을 받았기 때문에 마지막 근무지 근처에 세무사 사무실을 차리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자동으로 세무사가 되신 분들이야 국세청에서 20~30년을 몸담았으니 경험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국세청 경력과 세무사로서의 실력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7급, 9급으로 입사해서 사무관으로 승진하려면 본•지방청에서 상당 기간 뼈를 갈아넣어야 하는데 본•지방청에는 인사팀, 감사팀처럼 세무 본연의 업무과 다소 거리가 있는 부서도 많다. 그리고 사무관부터는 관리자이기 때문에 업무를 직접 처리하기보다는 결재만 하는 편이어서 실무자에 비해 실무에 대한 감각이 떨어진다고 하겠다.
아울러 세무서장으로 퇴직하신 분들 중에는 퇴직한 이후에도 여전히 본인이 세무서장인줄 아시는 분들이 있다. ‘내가 아무개 서장이었는데...’라며 으스대는 세무대리인은 정말 최악이다.
그러니, 국세청 경력이 있는 세무사를 찾을 땐 주의하시기 바란다. 실무하는 입장에서는 서장님 출신 세무사보다는 과장님 출신이 낫고, 자동 자격자인 과장님보다는 합격 세무사가 낫다.
아무래도 업계에 있다보니 세무사를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는다. 일단 ‘국세공무원행동강령’ 제16조(이권 개입 등의 금지) 제 2항에 “공무원은 직무관련자에게 특정 세무대리인 및 사무소를 추천하거나 소개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정해져 있어서 조심스럽긴 하나, 직무관련자가 아니라면 세무사는 추천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동안 같이 일했던 분들 중에는 개업하신 분도 계시고 회계법인, 세무법인에 근무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이 중에서 특정인을 추천하기가 참 어렵다. 왜냐하면 세무사를 필요로 하는 이유나 고객이 처한 상황에 따라 ‘좋은 세무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단 '세무사를 찾는 이유'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세무사가 필요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사업과 관련하여 장부기장과 세무조정, 신고를 하거나 세무조사를 받게 되는 경우
- 부동산, 주식 등 거래와 관련되거나 상속, 증여 등 재산과 관련한 일시적 이슈인 경우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 장부기장을 믿고 맡길만한 세무사를 찾게 된다. 이런 경우 세무서에서 법인세과, 소득세과, 부가가치세과 업무를 경험해본 세무사를 고르면 좋다. 세무행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과세자료 해명 등 이슈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서기관이나 사무관이 아닌 일반 직원 출신의 세무사가 실무는 더 잘할 수 있다.
아울러 창업 초기에는 세무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별로 없지만, 향후에 사업 규모가 커져서 세무조사 대상이 될 수도 있으므로 조사국이나 세무서 조사과 경력이 있는지도 체크해보자.
부동산을 사고 팔기 전에 세무사에게 상담을 받고 세무 리스크를 확인한 다음 거래를 하는 편이 좋다. 거래가 끝나고 나서 세무사를 찾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
국세청 경력 중 '재산세과' 경력이 있는 세무사를 추천하고 싶다. 세무서 재산세과는 양도소득세, 상속세, 증여세를 담당하는데 나도 재산세과 경력이 없어서 양도소득세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양도소득세나 상속,증여세는 책으로 공부해서는 한계가 있다. 어떤 자료가 발생해서 납세자의 신고내용과 검증하고, 어떤 점을 소명해야 의혹이 해소되는지에 대한 디테일은 근무해본 사람이 잘 안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세무사의 경력을 확인해서 재산세과 경력이 있는 세무사와 상담을 받아보고 신고나 조사대응을 맡기도록 하자.
세무서 근처 건물에 세무사 사무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 예전엔 그런 곳에서 몇 군데 들어가보고 상담받으시라고 얘기했었는데, 요즘은 세O통, 크O 같은 사이트에서 세무사를 찾아볼 수 있다.
(세무사법이 개정되어서 세무대리인 알선은 위법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이트들은 영향이 없는지 모르겠다.)
세무사 소개 사이트에서 국세청 경력이 있는 세무사 중 후기가 좋은 세무사 몇 명을 골라 상담을 받아보면 좋을 것 같다. 저렴한 기장료를 장점으로 내세우는 세무사도 많지만, 한 달에 몇 만원 아끼려다 나중에 큰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기장료보다는 경력 위주로 선택하시고, 이왕이면 젊은 세무사를 선택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