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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E Jul 13. 2022

할머니가 남자 친구가 생겼다.

할머니의 연애 썰


지난 주말, 할머니 댁에 갔을 때의 일이다.
집에는 나와 할머니, 강아지 두 마리밖에 없었는데, 할머니가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오시자마자 갑자기 충격적인 고백을 하셨다.


"나 애인 하나 생겼다."


 네? 모라구여?
이게 무슨 일인가...
속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물었다.


"누군디?"
"말하믄 니가 아냐"


네 그럼요, 모르죠. 모르는데!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생각지도 못한 일에 머리가 고장 나있는데, 할머니는 내 속도 모르고 신나게 말씀하신다.


"착하고, 어찌나 잘해주는지, 사람이 좋아"


그래서 누군데요..


"센터에서 만난 할아부지여?"
"이잉 그라제"
"저번에 그 구청장 할아부지?"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구청장을 하셨다던 할아버지가 계신다.

할머니는 그분 얘기를 종종 하셨었다.


"몰러"
"구청장 할아부지 아니여? 그러믄 누구여?"
"너는 몰러"


모르는 건 맞는데 그래도 궁금하다.
할아버지 작고하신지 어언 20년,
할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은 할아부지는 누구인가!
우리 할아부지보다 잘생기셨는가!
용서 못한다.
어디 우리 할미를!


"우리 할아부지보다 잘생겼어?"
"그라제, 사람이 얼마나 좋은지 아냐, 착하고 사람이 좋아야"

다시금 그 할아버지의 칭찬을 하신다.
유치원생 딸아이가 남자 친구 생겼을 때의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할무니, 그 할아부지랑 손도 잡지 마, 절대 손 못 대게 해야 돼!"
"아니 왜야, 뭣한디 그래야"


아니 이 할머니가.
역시 연륜에서 오는 사랑은 수위에 거리낌이 없는 것인가.


"어디 여자 몸에 함부로 손을대! 절대 안 돼!"


그러자 할머니는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다.


"할무니 그 할아부지한테 시집 갈끄여?"
"그라믄, 가야제. 넌 평생 혼자 살래"


젠장.


"난 평생 시집 안 가고 혼자 살 거야!"


다 큰 손녀가 시집 안 간다고 떼를 쓰니, 할머니도 시집가지 말란 소리인가 보다, 생각하신 듯하다.
말이 없으셔...


"사람이 어떻게 혼자서만 산다냐"
"할무니랑 감자랑 진주랑 살지!"
"우리 애기 와서 좋다"


갑자기 말을 또 바꾸신다.
집에선 나한테 성질내고 욕도 하시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선 여린 소녀 같으신 분이다.
신나서 행복해하시는 할머니의 표정이 생경하기도 하고, 기분은 좋지만.
그 할아부지 용서못해.


나는 그날 하루 종일 할무니의 연애 썰을 들어야 했다..
주무시기 전에도 자랑 하시드라.
할무니 행복한 건 좋은데 남의 집 할배한테 시집가는 건 안됩니다.
난 반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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