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E Jul 23. 2022

아홉 살, 밤길에 길을 잃었다.

미아가 돼버렸다.


내 나이 아홉 살 때쯤,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였다.
난 내가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어린 시절도 꽤나 얌전하지만은 않았다.
겁이 많고 조심성이 많아서 안전한 길로만 다니고 아는 길로만 다녔는데, 어릴 때 딱 한번,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었다.


옆동네, 느릿느릿한 버스로도 10분이면 가는 가까운 동네의 친구 집을 갔었다.
자주 가던 집, 자주 다니던 길.
친구 집에서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고, 나는 무슨 용기였는지, 걸어가도 될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았다.


아홉 살 어린 여자아이가 산길 구불구불, 나무도 많은 시골 동네를 혼자서 갈 생각을 하다니.
다 아는 길이었기에 용기가 생겼다. 온 길로만 다시 가면 된다.
하지만 걷다 보니 석양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길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길은 어둑어둑, 옆에 보이는 산은 새까만 어둠에 휩싸인 암울한 분위기.
무서웠다.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길.
친구들과 다니던 신나는 그 길은 없었다.
돌아가기엔 늦었고, 계속 가자니 앞의 길은 너무 무서웠다.
공포에 사로잡혀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길에서 펑펑 울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고 애기야, 왜 혼자 울고 있어? 엄마는?"
나는 엉엉 울면서 그 할머니께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할머니는 어린 나를 당신의 집에 들여보내 주셨다.
길 아래에 사시는 할머니셨다.
그곳은 노부부가 단둘이 사시는 집이었는데, 우리 집보단 조금 작은, 슬레이트 지붕이 쳐진 집이었다.
노부부는 울고 있는 나를 달래며, 주스를 따라주셨다.
그리고 우리 집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셨다.
울면서 겨우겨우 집전화번호를 말씀드렸고, 한참을 통화하셨다.
그 댁에 계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 할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나를 달래주셨고,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얼마 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셨다!
반가운 얼굴을 보자 서러움에 더욱 눈물이 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두 분께 거듭 감사하다며 인사를 드렸고, 나는 할아버지 차를 타고 무사히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에 노부부가 어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진정되었을 때쯤 가고 싶었지만, 나는 너무 어렸고, 혼자서는 가지 못할 길이었다.
부디 건강하시길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가 남자 친구가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