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입원하신 지 열흘이 되었다. 그냥 감기였는데. 영양제 맞는다고 입원하셨다고 했는데. 폐에 염증이 있어서 입원하셨다고 한다. 흔히들 말하는 폐렴이지.
지난 주말에 갔을 때, 할머니는 간호간병 통합 병동에 계셨다. 각 방마다 요양보호사님이 상주하시면서 간병을 해주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간호를 해주시는 병동인데, 면회가 금지되어 있었다. 멀리 복도에서만 보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주무시고 계셔서 나를 보지는 못하셨고, 나만 할머니를 보았다. 다행이다. 할머니가 나를 보았으면 우셨을 거야. 집에 가고 싶으시다며, 같이 가자고. 집에서도 내가 자취방으로 갈 때마다 서운해하시고 항상 우셨는데, 병원에서는 오죽하랴. 다행히 그땐 염증 수치가 낮아지고 있다고 했다. 곧 퇴원하실 거란 기대를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주말이 되니 이제 곧 오시겠구나, 하며 입원기간 중 지나버린 할머니의 생신파티를 하기 위해 주문 제작한 할머니의 사진이 들어간 현수막이 올 때쯤, 할머니의 퇴원 여부를 물었다. 아직 이란다. 언제 퇴원하실지도 모른단다. 일주일이면 퇴원하실 줄 알았는데 염증 수치가 떨어질 때까지 퇴원은 안된단다.
노인들의 폐렴은 얼마나 입원해야 할까.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노인 폐렴, 노인 폐렴 입원, 노인 입원, 폐렴 입원기간 등등 여러 검색어로 검색을 했지만, 안 좋은 말뿐이다. 나이 드실수록 생의 마지막에는 폐렴으로 마감하신단다. 내가 알고 싶었던 건 입원기간이었을 뿐인데. 마지막의 예고 따윈 보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 창을 닫았다. 이런 부정적인 말들 따위 보고 싶지 않았는데. 채비를 하고 할머니 병원에 가자. 병원에 가는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다. 혼란스럽다.
정말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닌가, 정말 마지막을 생각해야 하는 건가. 택시에서 내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불안함에서 오는 눈물. 거의 도착해서야 얼굴을 단장했다. 울지 않아야 한다. 오는 길에 보니 빨갛게 단풍이 물이 올랐다. 할머니는 낙엽이나 단풍, 솔방울 같은 것들을 좋아하신다. 작년 가을엔 둘이 휠체어 끌고 나가서 집 근처의 단풍도 보고, 솔방울도 줍고 했는데.. 그때의 추억이 생각나 병원 뒤의 공원을 가본다. 빨간 단풍을 보고 싶었는데, 온통 갈색의 낙엽뿐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빨갛게 피어난 단풍나무가 한그루 보인다. 바닥에 떨어진 단풍잎 중, 깨끗하고 색이 예쁜 것을 골라, 할머니 빨리 낫게 해 주세요 기도하며, 가장 예쁜 잎을 다섯 장을 골랐다. 이걸 보시면 할머니도 조금은 기분이 좋아지실까, 할머니에게도 희망이 생기기를.
도착하니 할머니의 점심시간이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할머니의 비품이 떨어졌단다. 기저귀, 휴지, 물티슈 등등등.. 병원 아래 편의점에서 잔뜩 바리바리 사들고 다시 병실로 올라간다. 여전히 병실은 들어갈 수 없고, 할머니와는 멀리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오매 우리 아기! 우리애기 왔어!" "웅 할무니, 나왔어!" "들어와, 왜 안 들어와 얼른 들어와!" "안된대, 들어가면 안 된대"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니 울컥했지만 꾹 참는다. 간호사 선생님께 듣기로는, 지난주에 혈압이 낮아져 수혈을 했고, 가래검사에서 MRSA균이 검출되었다고 했다.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면서 생기는 거라고 한다. 할머니는 산소마스크를 끼고 계셨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거, 목숨이 위험한 사람들이나 의식이 없는 환자들이 끼던 그거. 진짜 마지막일까 봐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간호사 선생님께 할머니가 언제쯤 퇴원이 가능하실지 여쭈었더니, "요양병원으로 모실 건가요?" "아뇨, 집으로요" "집으로 가신다고요??"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망설임과 의아함이 섞인 채 대답을 한다. "요양병원으로 가셔야 될 텐데.. 정말 집으로 모신다고요?" "네. 언제 퇴원하실 수 있을까요?" "우선 월요일에 원장 선생님한테 말씀드려볼게요"
또다시 병원이라니, 할머니는 유독 병원을 싫어하신다. 요양원에 버려질까 봐, 가족들이 안 올까 봐. 나이 들었다고 버려지는 건 아닐까 항상 두려워하신다. 지난번 어깨 수술하셨을 때도 내가 가니 요양원인 줄 알았다며 엄청나게 우셨었다.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마지막이 가까워 온 것 같아서 한스러웠다. 고모가 퇴근했는지 들어오더니,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고모도 같이 운다. 5년만 더 살았으면 쓰겄는데, 엄마를 부르며 환갑 다돼가는 어른이 아이처럼 운다.
아직은 안된다. 조금만 더, 하루라도 더. 욕심을 버린다. 건강하지 않더라도 좋으니, 예전처럼 일어서지 않아도 좋으니, 하루라도 오래 살아주세요.
아직 같이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아요 마음이 떠나보낼 준비를 마칠 때까지, 계속 곁에 있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