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TV, 사라지지 않는 웃음(스리랑카 Ep.10)
레트미 가족 이야기
일주일에 한 번, 레트미 집에 간다.
쿨렁쿨렁 버스를 타고, 타박타박 걸어서,
때로는 날쌘돌이 툭툭이를 타고.
오늘은 며칠 만에 가는 길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거실 한쪽에 자리 잡고 있던 작은 TV와 DVD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옆방으로 옮겼겠거니 생각했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레트미 엄마가 그 이야기를 쏟아낸다.
보이는 게 전부인 거실
남편은 항구에서 컨테이너를 청소하는 일을 한다.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받는 월급은 겨우 13만 원.
세 아이를 키우며 11만 원짜리 집세를 내고, 빠듯한 살림을 그래도 묵묵히 꾸려왔는데, 최근 들어 남편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술을 사기 위해 집에 있는 물건들을 우카스(전당포)에 맡겼다고 한다.
TV, DVD 플레이어, 그리고 또 다른 살림살이들.
겨우 손에 쥔 돈으로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남편 이야기를 끊임없이 할 즈음에
주인공인 남편이
거실을 스치듯 지나간다.
옆 집과 바로 얼굴을 맞이할 수 있는 거실풍경 술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내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방으로 숨어버리는 레트미 아빠.
한 달 13만 원을 받으며 왕복 세 시간 출퇴근.
세 아이.
일해도 일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레트미 엄마의 깊은 한숨과 눈물.
학교조차 가지 못한 두 아이.
무엇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오늘 아침, 레트미 가족의 모습을 보며 세상이 참 무겁게 느껴진다.
작은 거실. 사라진 TV. 그런데도 레트미는 해맑게 웃고 있다.
레트미의 넘치는 웃음그 웃음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오는 날이다.
비록 현실은 팍팍하지만, 레트미의 웃음 속에는 희망이 깃들어 있다.
따뜻한 손길 하나, 작은 관심 하나가 그들에게 새로운 빛이 될 수 있기를.
언젠가 이 집에도 다시 환한 웃음과 따뜻한 온기가 가득 차길 두 손 모아 바라본다.
빈곤 속에서 웃는 웃음일지라도,
그것이 전하는 온기와 희망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