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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토 Nov 27. 2020

그녀의 웨딩드레스

one and  only :: 오뜨 꾸뛰르_ 단 한벌의 드레스


큰일이었다. 

고작 2주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의 옆에서 무표정으로 가봉을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


뭔가 정신이 좀 나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으며 또 매우 분주해 보였다.








그녀의 결혼식과 회사에서 준비하는 큰 컬렉션이 묘하게 맞물려 있던 그 해의 5월은, 사실 디자인실에서는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 중 하나였다. 


쇼의 스케줄 일정이 변경되면서 결국 꼬여버렸고, 마지막으로 최종 픽스된 컬렉션 일정은 너무나도 아이러니하게 그녀의 결혼식과 딱 겹치게 되었던 것이다.

일개 디자이너의 결혼이 회사의 중요한 이벤트와 무슨 큰 상관이 있나 싶겠지만, 그녀는 쇼를 준비해야 하는 컬렉션 팀의 '헤드 디자이너'였고, 모든 쇼 피스의 가봉은 그녀의 손에서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 그런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의 대표이자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컬렉션 준비를 몇 년째 늘 그녀와 함께 호흡을 맞춰왔다. 

브랜드의 중대한 쇼를 준비하면서 팀원, 그것도 쇼팀의 헤드 디자이너인 그녀를 두고 갑자기 다른 디자이너로 바꿀 수도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쇼도 하고 결혼도 동시에 해야 하는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결국 결혼식만 제 날짜에 하고 신혼여행은 쇼가 끝난 후에 떠나겠다는 힘든 결정을 스스로 하고야 말았다. 

그녀는 그렇게 빅 컬렉션의 부담감과 일생일대 가장 중요한 이벤트인 자신의 웨딩을 양끝 칼날 위에 동시에 위태롭게 세워두고 있었다. 피곤과 극한의 스트레스에 흔들거리는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녀의 웨딩드레스.


그래도 그것만큼은 여유 있게 준비했어야 헸는데, 그 모든 스케줄을 관리하던 나의 잘못이 컸다.


디자인 디렉터가 직접 그려서 디자인한, 단 하나뿐인 특별한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서 그녀에게 선물하겠다는 그 의미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너무 특별하고 멋진 아름다운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단 하나, 그때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컬렉션 준비로 매일매일 비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가봉 산더미에 묻혀서 그녀의 드레스를 자꾸만 뒤로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미안한 일이다.



결국 결혼식을 고작 2주 정도 남겨두고는 브랜드의 모든 디자이너들이 총출동을 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웨딩 D-Day 14일 전.


디렉터는 아름다운 웨딩드레스의 디자인을 마침내 끝냈고, 그 작업 지시서는 나에게로 뚝 떨어졌다. 


패턴실에서는 그녀의 사이즈를 재고 있었고, 패턴 실장님은 멋진 손놀림으로 단 30분 만에 드레스 패턴을 완성하셨다. 

샘플실에서는 급하게 만들고 있던 컬렉션의 거대한 드레스를 뒤로하고, 웨딩드레스의 가봉 감을 달라며 전화를 해댔고, 소재 실장은 새틴 공단 한 움큼을 샘플실에 전달했다.

소재실에서는 그녀의 메인 드레스의 원단을 결정하자고, 빨리 해야 다음 주에 비행기를 타고 올 수 있다며 나를 재촉했고, 디자인 디렉터의 모든 컴펌을 끝으로 결국 우리는, 제일 예쁘고 제일 기품 있어 보이는 톡톡하고 부드러운 이태리 실크 새틴으로 그녀의 웨딩드레스 원단을 결정했다.




"목선을 깊게 파고, 드레스는 뒤로 풍성하게 퍼지게... "

디렉터의 오더가 나에게 떨어졌고, 드디어 가봉 웨딩드레스가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컬렉션 준비로 정신없는 그녀를 불러 세워 드레스를 입히고, 그렇게 우리는 드레스 가봉을 시작했다. 심플한 라인에 바디를 돋보이게 하는 새하얀 드레스를 주인에게 입혀서 그렇게 그녀의 드레스 피팅을 보았다.

나는 드레스의 뒷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도록 그리고 충분히 풍성하게 끌려 드라마틱해 보일 수 있도록 드레스를 손 보았고, 네크라인도 더 예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말도 못 하고 맘 졸이며 기다려온 드레스를 입는 순간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녀도 눈에도 나의 눈에도 눈물이 찔끔... 눈물 많은 두 사람이 드레스를 사이에 두고 말없이 그러고 있었다.


드레스를 풍성하게 해 줄 속장인 '샤 스커트'와 머리에 쓸 '베일'까지 만들며 우리는 그렇게 대대적인 그녀의 드레스 가봉을 끝내고 있었다.



며칠 후, 이태리에서 공수한 패브릭이 도착했고, 우리는 회사에서 가장 오래 일하신 화려한 경력의 실력 좋은 금손 샘플 선생님께 그녀의 드레스를 맡겼다.

드레스가 완성되는 동안 액세서리를 담당하는 디자이너는 그녀의 웨딩 슈즈를 오더 했고, 디자이너들은 쇼 피스를 뒤로 한채 그녀의 옷에 달 진주 비딩을 준비했다.




드디어 결혼식 전날, 최종 드레스 피팅 시간이 다가왔고 그녀의 웨딩드레스는 그렇게 아름답게 완성되었다.


피팅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그녀를 일찍 귀가시켰다. 

너무나도 바쁜 일정 속 준비해온 결혼식 전날에 그 모든 것들이 실감이 잘 안 난다는 그녀의 표정이 보였다. 


디자이너들은 그 날 저녁 내내 그녀의 드레스에 긴 시간 동안 비딩 자수를 놓았고, 그녀의 웨딩 슈즈도 한편에 예쁘게 도착되어 있었다. 






결혼식 날, 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보니 마음이 너무 이상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결혼식과 그녀, 그리고 그녀의 웨딩드레스.

결혼식은 그렇게 잊힐 수 없게 끝나가고 있었다.




결혼식 이후, 하루의 짧은 휴가를 받고 그녀는 다시 컬렉션 준비를 하기 위해 출근했다.


"실감이 안 난다. 하긴 한 거지?"


끊임없는 우리의 컬렉션 가봉 속 대화였다.





그녀는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 드레스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드레스를 예쁘게 다시 손봐서 언젠가 그녀의 예쁜 딸이 그 드레스를 만약 다시 입게 되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아주 오랜만에 추억 속에 있던 그녀의 웨딩드레스를 기억하며 드라마틱한 생각 한 스푼, 살짝 해보는 햇살 좋은 아침이다.



_magazine

나를 닮은 디자이너.  //  D.EDITTO.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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