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얻는 것이다. -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동해를 여행했다. 경주에서 포항, 울진을 거쳐 속초까지 눈에 담았다. 오감이 반짝이는 순간을 만끽했다. 보고, 맛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는 모든 게 새로웠다.
여행은 새로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같은 은행나무여도 출퇴근할 때 보는 나뭇잎과 여행지에서 보는 나뭇잎이 다르고, 같은 음식이어도 집에서 느끼는 맛과 여행지에서 느끼는 맛이 다르다. 여행을 하며 새로움으로 몸속을 가득 채웠으니 몸 밖으로 무언가를 내뿜고 싶었다.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고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나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
평소보다 걸음 속도를 늦추면서, 1,000km 넘게 운전하면서, 문득문득 ‘이 여행은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 중에 스쳐 지나간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를 바꾸기에 더없이 충분한 시간이었다.
일주일 전에 오랜만에 새벽 글쓰기를 했다. 의도치 않게 일찍 잠들고 일찍 깨어나 할 게 없어서 글을 썼는데, 글을 다 쓰고 밝아진 창밖을 바라보니 마음속에 충만한 기운이 차올랐다. 여행하면서 그때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새벽 글쓰기에 도전하기로 다짐했다.
여행 중에 알람 시각을 4시 30분으로 바꾸었다. 다음 날, 4시가 되기 전에 눈이 떠졌다. 조용히 일어나서 스마트폰으로 글을 썼다. 앞으로 책 쓰기든, 블로그 포스팅이든, 일기 쓰기든 매일 4시 30분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여행 첫날, 수원에서 경주에 갈 때는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날씨는 화창했고 도로는 한산했다. 여행지에 들르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여행 마지막 날, 속초에서 수원에 돌아올 때는 짙은 한숨이 나왔다. 비가 쏟아졌고 도로는 꽉 막혔다. 회사에 가서 밀린 업무를 처리할 생각을 하니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여행의 시작은 숙소를 예약하고 짐을 싸는 순간부터다. 여행의 끝은 집에 돌아와서 짐을 풀고 뒷정리를 하기까지다. 나는 여행의 시작을 반겼지만 여행의 마지막을 끌어안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여행의 마지막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점이 아쉽다.
여행의 마지막은 일상의 시작과 맞물린다. 여행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 사색하기 좋은 귀한 시간이다. 다음에는 여행의 마지막 순간도 처음처럼 대하고 싶다.
새로운 것을 계속 가슴에 쌓고 싶다. 여행지의 풍경, 몰랐던 아내의 습관, 훌쩍 커버린 딸의 모습, 홧김에 튀어나오는 내 속마음까지. 여행이 아니라면 체험하지 못할 일을 겪고, 여행하지 않았다면 보지 못할 나의 내면을 자주 만나고 싶다.
여행지는 집에서 멀수록 좋겠지만 거리보다는 새로움을 받아들일 마음이 더 중요할 것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제주도라고 생각하면 제주도의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틈나는 대로 여행을 떠나서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얻고 싶다.
이번 동해 여행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여행을 돌아보면서 글을 쓰고 기록까지 했으니까. 지금의 마음을 잊어버렸을 때에는 다시 글을 읽어보면 되니까.
겨울에는 어디에 갈까.
벌써 새하얀 눈밭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