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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근 Nov 27. 2021

구겨진 운동화

토요일 아침, 오랜만에 프렌치토스트가 먹고 싶었다. 식빵을 사러 가기 위해 외투를 걸치고 지갑을 챙겼다. 운동화에 발을 반쯤 넣고 까치발을 한 채 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바닥에 앞꿈치를 툭툭 치고 뒤꿈치를 운동화에 욱여넣었다.


작년 이맘때쯤 지금 신고 있는 운동화를 샀다. 아내와 함께 백화점을 30분 넘게 돌아다녔다. 여러 매장에 들러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신고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아내는 생일 선물이라고 10만 원이 넘는 운동화를 사주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애지중지하며 운동화를 신었다. 검지 손가락을 발뒤꿈치와 운동화 사이에 밀어 넣고 신발을 신었다.  행동은 3일을 넘기지 못했다. 곧 두 다리를 엉거주춤하며 운동화를 신었다. 까치발을 하면서 운동화를 신다 보니 운동화의 뒤꿈치 부분이 금방 헤졌다. 처음에는 운동화를 구겨 신지 않았는데 지금은 대충 신고 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운동화를 신었는데 왜 지금은 막 신고 있는 걸까? 문득 내 행동이 궁금해졌다.


운동화에 익숙해져서?

신발신는 순간부터 새것이 아니게 되니까?

헌 신발은 아무렇게나 신어도 되는 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빵집에 걸어가며 내 행동의 근원이 뭔지 생각했다.

운동화뿐일까. 티셔츠, 바지, 패딩, 모자부터 친구, 연인, 동료, 배우자까지 물건과 사람을 가리지 않고 처음과 나중의 내 행동이 달라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건성건성, 무성의해진다.


익숙해진 물건, 편해진 사람을 대하는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닐까.


첫 번째 만남과 열 번째 만남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익숙해지면 편해지고, 마음이 느슨해진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실수를 범한다. 처음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그때처럼 행동하고 싶다. 특히 사람을 대할 때는 익숙한 운동화처럼 대충 구겨 신고 싶지 않다. 만남의 횟수와 상관없이 정성을 들이고 싶다. 눈을 바라보고 말하며 귀를 가까이 기울이고 싶다.


나와 함께 일상을 함께했던 소중한 물건, 사람이 고맙다.

한때 내 몸의 일부였던 물건, 사람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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