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를 소나기라 부르지 못하고
적절한 어휘 사용하기
아스팔트 위에 달걀을 풀면 달걀 프라이가 될 것 같은 날씨가 이어진다. 매미는 짝을 찾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운다. 물총을 쏘며 와글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매미 소리와 포개진다.
여름입니다. 덥고, 습하고, 마땅히 갈 곳도 없어 여섯 살 딸과 부루마블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 3시쯤, 갑자기 비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1km 떨어진 곳은 맑은데 여기에만 비가 내리는 게 신기했다.
딸과 함께 창가에 갔다.
"이현아, 비가 많이 내리네."
"아빠, 이건 비가 아니야."
"응?"
"이건 소나기야. 빗소리가 크게 나잖아."
"!?"
딸에게 한 방 먹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하늘에서 내리는 모든 비를 "비 내린다."라고 불렀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든, 맞아도 될 만한 비든 "비 내린다."라고 뭉뚱그렸다.
비를 피해 집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비를 뜻하는 단어를 찾아봤다. 순 우리말을 포함해서 60개에 달하는 단어가 나왔다. 비의 이름이 참 많았다. '도둑비, 모다깃비, 꿀비, 금비' 등 처음 보는 용어가 대부분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들어본 단어만 나열해본다.
여우비 : 맑고 햇빛이 나 있는 상태에서 잠깐 내리다가 그치는 비
가랑비 : 조금씩 가늘게 내리는 비(이슬비보다는 조금 더 굵음)
보슬비 : 바람이 없는 날에 가늘고 조용히 내리는 비
이슬비 : 아주아주 가늘게 내리는 비
장대비 : 굵직하고 거세게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
비보라 : 세찬 바람과 함께 쏟아지며 휘몰아치는 비
소나기 :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금방 그치는 비
진눈깨비 : 비가 섞여서 내리는 눈
어제 내린 비는 여우비와 소나기가 합쳐진 비였다.
비를 뜻하는 60개의 용어를 "비 내리네."로 대신한 게 살짝 부끄러웠다. 선조의 고민이 담긴 60개의 단어 중에 제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유선경 작가는 《어른의 어휘력》에서 말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적지 않다. 허균의 홍길동처럼 서자라서가 아니다. 마땅한 어휘를 떠올리지 못해서다."
소나기를 보며 소나기를 떠올리지 못하고 비가 많이 내린다고 표현한 걸 반성한다.
글을 쓰고 퇴고하면서 단어와 동사를 다른 것으로 바꾸자고 다짐했다. 사용하는 말을 항상 반복해서 쓰고, 현상을 뭉뚱그리기보다는 명확하게 표현하는 어휘를 찾고 적는 연습을 해야겠다.
다음에 비가 내릴 때는 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현아, 오늘은 보슬비가 내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