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는 울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글에 상상 더하기
지난주 화요일 밤 8시 10분, 퇴근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평소와 똑같이 인도 위를 걸어가다가 발을 멈췄다. 1미터 앞, 엄지손가락 한 마디 만한 벌레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벌레에 약하다. 겁먹은 나머지 벌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게걸음으로 재빨리 피했다. 나중에 포털사이트에서 찾아보니 매미 유충이었다. 매미 유충을 본 건 처음이었다.
매미는 3~7년 동안 땅속에서 지내고 지상으로 올라와 한 달 동안 활동하고 세상을 떠난다. 내 눈에 띈 매미 유충도 3년 넘게 땅속에 있다가 하늘을 향해 머리를 내밀었을 것이다. 매미 유충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땅 위에 올라왔다고 마냥 좋진 않았을 것 같다. 천적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가야 하니까. 아마 나무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글을 쓰려면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알고 있는 것, 체험한 것이 글쓰기의 기반이 된다. 하지만 지식과 경험만이 글쓰기의 재료는 아니다. 상상력을 동원하면 모르는 것, 경험하지 못한 것도 쓸 수 있다. 우리는 무생물을 생물처럼 바라볼 수 있고 매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을 생각하라. 정반대에 있는 대상의 기분을 상상하라. 생물도 좋고 무생물도 좋다. 내 발에 밟히는 보도블록이 뭐라고 말할지, 내 땀을 흡수하는 티셔츠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아침마다 내 얼굴을 보는 거울은 어떤 생각을 할지 상상해보자.
학창 시절 우리는 이것을 의인법이라고 배웠다.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이 행동하듯 표현하는 기법이다. 구름이 웃는다거나 파도가 말을 건다는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의인법을 활용하긴 어렵다. 두 볼이 발개질 정도로 민망하니까. "야, 소주잔이 너를 보고 마셔달라고 하는데", "노래방 마이크가 당신한테는 잡지 말라고 하네"라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게 분명하다.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중요한 바쁜 현실을 투영하듯 우리는 기계처럼 말한다. 객관적인 사실을 짧게 말하고 얼핏 듣는다. 뭔가를 의인화하는 건 옆구리에 닭살이 돋는 일이다.
달리던 차의 속도를 줄이게 하는 과속방지턱은 오늘도 무수한 차의 무게에 짓눌리면서 나에게 경고장을 날린다. 속도를 줄이라고! 유영만,《책 쓰기는 애쓰기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해서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이문재, <농담>
매울 줄 알고 먹는다. (중략) 사람들이 고추를 오이처럼 무표정하게 먹는다면 고추는 많이 슬플 것이다. 정철, 《사람사전》
상상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늘 똑같은 눈빛으로 대상을 바라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은 눈을 동그랗게, 어쩌다가는 실눈을 뜨고 대상을 바라보자. 대상이 어떤 생각을 할지 상상해보자.
상상에는 한계가 없다. 우주가 팽창하듯 상상도 무한대로 팽창시킬 수 있습니다. '에이, 이게 말이 되겠어?', '이 정도면 충분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한계다. 한계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매미가 운다. 기를 쓰고 웁니다. 매미에게 남은 시간은 한 달이다. 한 달 안에 짝을 찾고 후손을 남겨야 한다. 시한부 삶이다. 지상으로 올라온 순간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매미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기 위해 나무를 탄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허투루 보낼 수 없기에 온몸으로 운다.
무심코 지나친 매미 유충의 입장이 되어본다.
매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땅 위에 올라온 매미의 한 달을 제 남은 인생에 견준다. 하루를 함부로 보내지 않았는지 되짚어본다. 매미의 하루를 닮은 글을 쓰고 싶다.
상상력을 동원하자.
글쓰기는 물론 살아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