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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Jan 10. 2024

가족여행

즐겁다, 다음에  또 가자

나의 형제자매는 일남오녀다.  대부분의 여자형제가 많은 집은 자매들끼리 잘 뭉치는 것 같다. 우리 집도 친정 식구들이 잘 모인다. 그러나 그 모임은 여자들의 주도이기보다는 엄마의 사위들이 주도하는 모임이 대부분이다. 다섯 사위가 자기들끼리 노는 걸 무척 즐긴다.  너무 잘 논다. '너무'라는 부사는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는 부정의 의미였으나  2015년부터는 '한계를 넘어선 상태'로 뜻이 수정되면서 긍정의 의미도 함께 가지는 단어다.  아무튼, 그들은 부정과 긍정의 시간을 오락가락하며  만나면 '너무' 좋아하고 '너무' 재미있게 잘 논다.  


"친정 식구 모이는데  왜 그래?"


그렇다. 친정식구 모이는데 잔소리하는 은 별로 없을 거다. 그러나 이 집 사위들은 자기들끼리 너무나 잘 놀아서 오히려 딸들이 지쳐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한다. 집주인인 누군가는 그들을 시중드느라 바쁘다.  오랜 기간 그렇게 사위들이 즐기는 친정가족 나들이를 하면서 여자들은 보조자처럼 그들을 지켜보면서도 우리들끼리 뭉쳐 놀아보자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 야, 우리도 우리끼리 뭉쳐보자. 해외 한번 나가볼까?"


어느 날 드디어 이런 말이 나왔고,  우리들은 갑자기 일정을 조율했다. 요즈음 안 바쁜 사람이 어디 있겠나? 손자 손녀 돌보는 언니와  직장 다니는 동생들이라서 이제 겨우 손녀 돌봄에서 벗어난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연휴에 더해서  휴가를 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여행하자는 의견 일치에  일정이 조정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일정은  휴일을 포함해서 갑자기 잡은 일정이라 코 앞에 있는 연휴에 맞추어 여행사를 뒤적여보니 우리가 원하는 장소는 이미  마감이 된 후였다. 원하는 날짜에 맞추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여행사는 없었다.  


모처럼 일정을 맞춘 휴가인데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  그럴 수는 없으니, 그럼 제주도 가는 비행기라도 타자. 우왕좌왕하면서 며칠을 보내고 나서 연휴 직전에 검색하니 제주도 가기도 쉽지 않다. 그럼 어떡하지? 모처럼 일정을 맞추어 놓고도 결론이 안 난다. 그리하여, 비행기는 다음에 타는 걸로 하고 기차를 타기로 했다.


 6남매가 되고 보니 차 한 대로 움직이기는 어렵고, 어디를 가서 택시를 타더라도 우왕좌왕할 것 같다. 기차와 연계된  패키지여행이 있을 거란 생각은  맞아 들었고, 우리들은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타는 걸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후다닥 패키지 기차여행을 예약했다.  


그러나 말이지, 여자들만 뭉쳐서 떠나는 여행을 여섯 집 남자들은 반대를 안 하지만 대신 발목을 잡는 존재가 있었다. 목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감기란다. 온 사방에 감기 환자가 많은지라 약 받아 오면서 별걱정 하지 않았는데 약을 먹고 한숨 자고 나니 거뜬하게 나을 줄 알았던 몸이 더 무겁고 정신이 혼미하다. 약이 센가?  또 잤다. 하룻밤 지나고 나니 증상이 호전될 줄 알았지만 온몸이 아픈 근육통이 생겼다. 누군가가 내 목을 후벼 판다.  동네 다른 병원에 갔더니 검사를 하자면 코를 후비더니, 의사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단다.


"주변에 코로나 환자 없는데 제가 왜 걸렸어요?"


워낙에 감기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그중에 코로나 환자가 있었을 거란다.  


"언니야. 어떻게? 나 코로나 걸렸어."


모처럼 잡은 일정이니 나만 빠지는 걸로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내가 가족 통장을 가지고 있고 여행 계약자이니 주체 측이란다. 주체 측이 빠지면 어떡하냐고?  가족여행 가기 참 힘들구나. 일단 안정 취하자. 출발까지는 아직 여유시간이 있으니  증상이야 나아지겠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나는 후유증이 두려웠다.  출발 하루 전 나만 살짝 해약하지 뭐. 다행히 약을 바꾸고 증상이 줄어들더라. 방문 닫고 며칠을 누워 지냈다.  


2022년,  코로나 19에 걸렸을 때 한 달을 약을 먹었다. 후유증으로 피로와 심한 기침 때문에 영양수액까지 맞았다. 마침  다른 이유로  예약된 시티촬영이 있었다.  의사에게 코로나 이후 감기 증상과 몸살이 오락가락하며 심한 기침으로 한 달을 고생했다는 말도 했으나 폐에서의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때, 코로나 걸렸을 때 후유증으로 몸이 힘들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난 정말 코로나가 무섭다. 그 후에도 감기가 걸리면  한 달이나 고생했었다. 그렇게 한 번 감기에 걸리면 긴 시간 고생을 하는데 이번에는 여행의 즐거움이 몸에서 긍정의 힘을 가져왔는지 며칠 누워서 쉬니 여행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일주일이나 지났고 이제 그 증상마저도 사라졌지만 마스크를 쓰고  밥도 혼자 먹으며  밤에는 독방을 쓰며 저만치 혼자 걸어 다니는 여행을 하고 왔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계절적으로 겨울이라 날씨는 춥고, 자연의 모습이 아름다울 때가 아니라 마른 들판을 바라보는 여행을 염려했었는데 가족들이 모두 즐거워했다. 물론 우리 가족 여자들만의 첫 여행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고, 언니의 생일을 축하를 해주는 시간도 있어서 우리들 마음은 즐거웠다. 자연의 모습이 초록만 예쁜 건 아니다. 꽃이 피고 지는 모습도 아름답고 초록이 지나 단풍 든 모습도 아름답지만 맨 몸을 그대로 들어낸 나무와 절벽들의 모습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겨울의 갈대숲을 걸어보는 시간이나 겨울 철새들이 무리 지어 나르는 모습도 잊히지 않는 멋진 풍경이었다.  


순천의 갈대밭을 걸으며 철새들을 보았고, 여수밤바다를 내려다보며 해상케이블카를 탔고, 산 꼭대기 사찰에서 남해바다를 내려다보는 시간도 속 시원했다. 농촌 출신이라  45도 경사의 비탈진 계단식 다랭이마을 길을 걸으며  어렴풋이 고향을 떠 올려보기도 했다. 예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웃음소리가 흘러 다녔다.  하루 세끼 차리던 밥상의 구속에서 벗어나 매 끼니  해산물이 가득한 그야말로 진수성찬 밥상을 받는 호사스러움을 맛보는 며칠이었다.  


돌아오는 길, 처음으로 해본 우리 가족 여자들만의 여행이 모두 만족스럽다고 해서 또 기분이 좋았다. 바람 들었네.  또 가잖다. 여행을 하는 이유야 많고 많지만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행 중에 마주쳐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익명의 그들과  나눈 대화에서도 웃음을 나누었고, 함께 여행하는 가족들과 집에서 여행 중인 나를 기다려주는 가족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소갈머리 없이 작고 좁았던 마음이 잠시 너그러워지는 건 여행이 내게 준 선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시 나는 코로나에는 약하다. 두 해전 코로나로 한 달을 앓았던 일이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코로나 후유증이 오래가는 것 같다.  코로나를 앓고 난 직후  떠났던 여행 중에는 아픈데 없이 괜찮았는데 다녀와서 몸살이 났다. 코로나 후휴증이었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코로나 회복기에 나선 여행이 피곤했었나 보다. 그래도 좋다.  모두 즐거워했고, 가족 모두가 함께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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