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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Feb 05. 2024

추억밥상

순두부

딸이 집에 왔다. 딸도 가족을 이루고 사니 혼자온 건 아니지만 집에 오면 먹고 싶은 음식이 먼저 생각나는 것 같다.  그 음식들이 엄마손으로 만들어진 것 반, 식당에서 먹었던 음식 반이다. 어려서부터 먹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다. 태어나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지방이니 그동안 다녔던 식당이나 음식이 많이 떠 오르는 것 같다. 친구들과 다녔던 소박한 분식집이나 한식, 경양식 집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있는 고향이 이제는 추억의 장소로 변해가는 것 같다.  


떡볶이 순대 돈가스 집에서 벗어나 이번엔 순두부가 먹고 싶다고 한다. 가고싶다는 식당은  아주 오래된 순두부전문점으로 원주에 살았거나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원주민 맛집이다.  예전에는 작고 허술한 건물이었지만  식당에는 손님들이 가득했다. 몇 해전에 예전 건물 바로 옆으로 커다란 새 건물을 지어 옮겼는데 지금도 손님이 가득하다. 식당에 들어가 우리 다섯 식구가 겨우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메뉴판을 보니 역시 예전 그대로 다양한 순두부 종류가 가득하다.  


처음 이 식당을 왔을 때가 기억난다.  그때도 메뉴판에 여러 종류의 순두부가 있었다.  대표음식으로 얇은 두부포에 싸 먹는 보쌈 아래로 순두부 종류가 나열돼 있다. 굴순두부를 비롯하여 순두부찌개에는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굴 알탕 해물 섞어 버섯 곱창 돼지고기 들깨 조개 소고기 만두 햄치즈 김치순두부.... 세상에 순두부찌개 종류가 이렇게 많았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재료에 따라 순두부 종류가 다양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을 미쳐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때는  초보주부였고,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하지 못하고 살던 생활이었고  식당을 자주 드나들지 못했던 때라 그때의 메뉴판은 참 신기했다.  


농촌에서 살았던 오래전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두부를 해 먹었다. 밤새 어처구니를 잡고 물에 불려 삶은 콩을 맷돌을 돌려 갈았다. 어른들의 분주한 손길로 간 콩물을 거르고 간수를 넣고 끓이는 복잡한 과정이 지나가면서 콩물이 엉켜가며 순두부가 나온다. 그걸  먹어보지는 못했다. 두부를 만들기 위해 두부물을 베보자기에 넜고 사각판에서 누르기 전에 몇 국자  떠서 간장과 깨소금 참기름 넣은 뜨끈뜨끈한 순두부 사발은 아버지 몫이었다. 후룩후룩 맛있게 드시던 그 순두부는 남자들이나 먹는 귀한 음식으로 여겼다.  


결혼하고 몇 해 후, 친정어머니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 벌써 30년 전 이야기다.  그 당시에는 지방에서 치료가 안되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은 공포의 한마디였다. 엄마를 간호해야 했다. 어린아이들을 시댁에 맡기고 엄마와 함께 서울에서 병원생활을 하는데 먹는 게 몹시 부실했다. 어느 날, 사촌오빠가 면회를 왔다. 어른들 일이라 속사정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고향을 떠났던  집안의 장손인 오빠에게 집안어른들은 할 말을 많이 참고 살던 때였다.


"얘하고 밥이라도 먹고 와."


빈손으로 온 조카에게  병원에서 지내는 딸이 안쓰러웠던 엄마는 나를 데리고 나가 저녁을 사 주라고 했다.  

병원 구내식당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구내식당에는 어떤 음식이 있었을까? 모르겠다. 그때 먹은 게 순두부였다. 아버지가 두부 만들 때 드시던  귀한 음식인  뽀얀 순두부가 아니라 빨간 순두부였다. 1인 뚝배기에 하얀 밥 한 공기와 두세 가지 반찬이었다. 맛있었다. 김치 쫑쫑 썰어 넣고 끓인  순두부 뚝배기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경비를 아끼려 절약하며 지내는 병원생활에서 먹을거리가 부실했던 차에 먹은  김치순두부는 진짜 맛있었다. 또한 순두부에 김치를 넣어 끓인다는 것도 배웠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김치를 썰어놓고 볶다가 순두부찌개를 끓인다. 그만큼 그날의 김치순두부찌개는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지만, 그날 엄마는 외부 식당에 나가지 않고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는 걸 몹시 섭섭해하셨다.  


딸이 집에서 먹은 순두부는 김치순두부찌개다. 딸과 함께 식당에 앉아 순두부를 먹으며 생각했다. 집에서  김치순두부만  먹다가 전문식당에서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찌개는 딸의 입에 신세계 맛이었을까?  오랜만에 집에 와서 식당 순두부를 찾으니 말이다.  아니 그냥, 엄마 힘드니까 식당에서 별식이 먹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지만 맛있게 밥을 먹는 딸을 보며 30년 전 기억을 떠올린다.   


이제는 나도 옛 기억에서 벗어나야겠다. 순두부는 김치만 어울리는 게 아니다.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맛에 도전해 보아야겠다. 주부생활 40년인데 내 입맛만 생각하고 살았던 건 아닌가? 30년 전 병원 식당에서 먹은 꿀맛 같던 순두부 찌개가 내 추억을 지배하는 것처럼, 집에서 먹던  것과 다른 순두부 맛을 본 이 식당의 음식이  딸의 추억을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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