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여주를 갔다. 예정에 있었던 건 아니고 어딘가 가자는 말에 갑자기 선택한 외출이었다. 여주 수목원은 집에서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늘 하던 것처럼 차를 타고 출발하며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기로 했다. 아니, 그냥 그렇게 한다. 말은 없어도. 평소에는 사소한 것까지 늘 내게 시키고 목소리가 큰데 커피 사는 건 자기가 스스로 잘한다.
"나는, 따뜻한 카페라떼 부탁해."
커피를 사러 가는 남편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그가 들고 온 건 아이스딸기라떼였다.
" 잘못 눌렀어."
당당하다. 자신의 실수를 그렇게 잠재운다. 아, 싫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따뜻한 라떼 사 오라고 부탁을 했건만. 당당하게 나의 의견을 무시한다. 다시 생각하니, 확인하진 않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키오스크가 말을 잘 듣지 않았을 수도 있고, 뒤에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았던 이유일 수도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다 한 마디 했다.
"잘했어. 고마워.
내가 말하고도 조금 낯설다. 사실 인색하게도 그동안 '고맙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며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이해하고 다독이며 사랑한다는 말을 쓰지 않고 살았던, 무언가 피해의식을 숨기며 늘 참고 억누르고 살았던 삶이다. 속에 화가 많다. 화가 많으니 긍정의 표현을 하지 못하고 살았던, 살고 있는 오늘이다.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잘 되지 않고 자꾸만 화가 나고 따지게 된다. 나이는 들었어도 내 마음속에 긴장한 어린아이가 숨어 감정을 참고 억누르며 그걸 또 억울해 하는 것 같다. 아직도. '잘했어, 고마워'라는 말이 나온 건 최근에 읽은 책을 덮으며 사랑스런 말투를 시용해 보자는 마음을 가진 결과였다.
며칠 전 책을 한 권 읽었다. 도서관의 신간 코너를 서성이다 발견한 책은 다음 브런치에서 몇 번 읽은 제목이었다. 시공사에서 발행한 골디락스의,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인 <<우리 가족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를 꺼내 빌려 왔다. 인터넷에서 몇 번 읽으며 가족관계의 어두운 이야길 스스럼없이 세상에 이야기하는 건 용기일까? 자신을 위하는 마음으로 가족에게 상처가 되면 어쩌려고?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작가는 부모에게 받은 상처로 정신과까지 가고, 가족에게서 탈출하려는 생각을 담고 성장하고 성인이 되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비로소 마음의 결핍을 이겨나간다. 부모세대의 지금과 다른 삶을 이해하며 자신의 미음 속에 엉킨 실타래를 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먹고살기 힘든 세월을 살았던 부모세대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사랑의 표현을 받아보지 못했으니, 다정한 표현을 배우지 못했으니 따뜻한 마음을 전할 줄도 모르고 살았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 사랑의 감정은 있으되 표현하지 못하는, 그들의 방식만으로 사랑을 주며 살아던 거라는 걸 작가는 깨닫게 된다. 무덤덤하고 부정의 언어가 가득하고 부드러운 표현은 없지만 마음속에는 사랑이 가득하다는 걸 비로소 알아가기 시작한다. 작가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내 아이도 내게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사랑의 표현이 부족한, 작가의 부모와 같은 세대의 사람이니까.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뿐 아니라 부부 사이에도 크고 작은, 아주 소소한 갈등이 많다. 그걸 이해한다면 이제라도 변해야 한다. 남편의 거칠고 이기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만 그 마음속에는 여린 사랑이 숨어 빼꼼히 밖을 내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따뜻한 카페라떼를 사 오라 했지만 그가 들고 온 건 어름덩어리가 잠겨 있는 딸기라테였다. 날씨도 차가운데 위장이 나쁜 사람에게 차가운 우유를 내미는, 적절하지 못한 차 한잔이다. 그러나 그건 맛있어 보이는 음료였다. 순간적으로 그의 마음은 맛있어 보이는 빨강과 흰 우유가 어우러지는 예쁜 음료를 나에게 사 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카페라떼를 주문하려다 순간적으로 앞의 메뉴판에 보이는 빨강과 흰색이 어우러지지는 딸기라떼로 손가락이 움직였을 수도 있다. 이름은 달라도 라떼는 라떼니까.
"맛있어? "
하고 묻는 걸 보면. 그러니 그냥 '잘했다고 고맙다'고 했으면 그걸로 끝냈어야 했다. 그러나 내 버릇이 어디 갔겠는가? 다시 한 마디하고 말았다.
"속도 안 좋은 사람한테 차가운 우유를 가져다주면 어떡해.'
"......"
사람이 갑자기 변하지는 않는다. 그런 말은 하지 말걸.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못하는 내 대화법이 나오고 말았다. 딸기라떼를 건네줄 때 '잘했어. 고마워.'라고 말했던 것으로 끝내야 했던데 차가운 우유를 마시다 보니 본색이 드러난 거다.
커피가 너무나 먹고 싶다. 남편의 커피 잔에서 내 잔으로 커피를 조금 옮겼다.
"왜 너무 진해?"
평소 커피를 약하게 먹는 나를 향해 묻는다.
"아니, 커피가 먹고 싶어서."
"커피가 먹고 싶다고?"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딸기라떼잖아. 커피가 없는."
"커피가 없다고?"
그는 모르는 거 같다. 카페를 자주 가고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외출 중에는 포장을 해서 커피를 들고 다니며 마셨으면서도 그는 그가 가진 생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카페의 모든 음료에는 커피가 있는 줄로 아는 것 같다. 딸리라떼에도 커피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나?
차에서 커피를 마시며 생각한다. 평소에 목소리가 크고 표현이 강한 그에게 말을 막 한다고 심통 부릴게 아니라 나의 말솜씨를 바꿔서 그의 말도 바꾸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오는 말이 곱지 않다고 가는 말도 말도 무뚝뚝하게 하지 말고, 가는 말을 곱게 해서 오는 말을 곱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 숙제이긴 하다. 생각은 그러해도 막상 부딪치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고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게 습관이다. 감정은 늘 살아서 움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