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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Aug 01. 2024

들꽃이 예쁘다

영상통화를 하며

건강을 위해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운동이다. 시간이 나면 밖으로 나가 마을을 걷는 게 일상인듯하면서도 그 마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냥 쉬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가 원인이다. 게으름이 날로 날로 늘어가는 시간들이지만 무거운 몸을 털고  밖으로 나가면 걷게 되고,  걷는 일이 즐거운 일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마을을 걸으며 바라보면 거리의 풍경이 매일 다른 것 같다. 마른 가지와 풀이 앙상하던 길의 옆으로 봄이면 연둣빛 싹이 올라오고 며칠이 지나면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인다. 날마다 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스마트 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일이 나 스스로 생각하는 좋은 취미가 되었다. 사진기가 없어도 언제 어느 때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에 내가 살고 있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내 손안에 사진기가 있다니 말이다.  


잡초로만 생각했던 토기풀밭에 앉았다. 초록의 이파리 위에 하얀 토끼풀이 피었다. 스마트 폰을 꺼내 풀밭에 앉아 요리조리 각도를 살펴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꽃잎 가까이 다가가 위에서 아래로 향해 조심스레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보니 작고 하얀 꽃잎이 겹겹이 쌓여 동그란 하나의 꽃을 만들고 있었다. 새샘스러웠다. 사실 들풀인 토끼풀 꽃을 이렇게 가까이서 찍어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는 그저 흔한 들풀이었으니까. 어느 시인의 시처럼 "자세히 보니 더 예쁜"게 토끼풀꽃이다. 들꽃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소한 하나의 존재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평범한 진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매일 인 것 같다.   


맑고 고운, 하양과 옅은 연두가 어우러지는 토기풀 꽃에 취해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에 있는 다섯 살 손녀가 영상 통화를 하자고 한다.

"할머니, 뭐 하세요?"

맑고 높은 소프라노가 튀어나온다.
들판에 널려 있는 토끼풀 가까이에 전화기를 대고 꽃을 보여 준다. 꽃이 예쁘다며 까르르 웃은 손녀가 꽃보다 예쁘다.

들판에 앉아 한동안 웃음소리가 오간다.

"할머니, 사랑해요."

전화를 마치며 들려오는 인사말이 가슴을 흔든다.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 행복하다.  


풀밭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며 생간 한다. 내가 손녀만 할 때 우리나라는 어땠나? 겨울에는 화롯가에서, 여름에는 멍석을 깐 마당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스님이 지팡이를 꽂았더니 나무가 되었다는, 심청이가 바다에 빠졌는데 용왕의 부인이 되었다는, 그런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황당하지만 황당하다는 생각조차 못하며 재미에 빠져 들었다. 조금 자라 학교에 가 글을 배우고 나니 어른들이 편지를 들고 와 읽어달라거나, 문장력 없는 어린아이에게 편지를 써 달라고 하던 시대를 살았다.  


예전에는 편지도 며칠이 지나야 도착했다. 지금 생각하면 답답한 생활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렇게 살았다. 다시 스마트 폰을 바라본다. 지방에 살면서 서울 있는 손녀와 실시간으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세상을 내가 살고 있다. 나 어린 시절에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이야기 아닌가.


공중전화나 빨간 우체통도 거의 사라진 시대를 살면서, 한 순간도 놓지 못하는 손 안의 컴퓨터인 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지난 시간 나의 세월을 생각했다. 지금의 세상이 내가 상상도 못 하던 세상이라면. 할머니의 지난 시간은 내 손녀가 그런 세상이 있었어? 하면서 어리둥절할 것 같다. 아이가 조금 더 커서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할머니가 살던 세상에는 이런 일이 있었어." 하면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어린 시절 나의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지팡이를 땅에 꽂으면 나무가 되고,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황당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그렇듯이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느리고 답답할 것 같은 지난 시간의 이야기가 아이에게 재미와 호기심을 주기는 할까? 어른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내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면 꼰대할머니의 "라테" 이야기가 되려나?  이런 생각을 하며 걷는 시간도 즐겁다.  


옆에 있어도 자세히 본 적 없어 아름다움을 몰랐던 들꽃의 아름다움을 스마트폰으로 보았다. 내 손안에 들려있는 만능 컴퓨터인 스마트폰이  있기까지 적응하며 살아왔던 지난 시간을 생각을 하며 걷는다. 사람이 배달해 주는  편지를 며칠 만에 받던 시대가 지나가 이제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세계의 어디에서건 손 안의 스마트 폰으로 이야기와 영상을 주고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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