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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Oct 16. 2024

사랑

꽃보다 예쁜

지난 주말 서울에 갔다.

서울에서 지내는 이박 삼일 동안 하루를 여섯 살 손녀와 함께 보냈다.

맞벌이하는 딸 부부를 위해 5년을 키워주며 정이 들어서 아이는 가끔 우리 부부를 찾는다.

"할머니, 언제 올 거야?"

전화 속의 맑고 낭랑한 목소리에 매료되어서 우리 부부는 서울로 올라가는 짐을 싸곤 한다.



이번에는 남편 지인의 자녀 결혼식이 있다고 해서, 겸사겸사 서울에 가겠다고 했다.

"이제부터 예전처럼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살면 안 돼? 엄마랑 아빠랑은 주말에 놀면 되잖아."

할아버지 할머니가 온다는 말에 아침 이브자리에서 이렇게 제 엄마에게 이야기하더란다.



일요일 하루는 아이랑 우리 부부가 온전하게 하루를 보냈다.

셋이서 구리시에서 열리는 코스모스 축제에 갔다.

코스모스 꽃단지에 활짝  핀 코스모스가 예뻐서 우리 부부는 좋았는데, 아이는 벌 나온다고 꽃밭 가까이 가려하지 않는다.

꽃밭에는 벌이 있다며 무섭다고 얼굴을 찡그리며 겨우 사진 몇 장 찍고 멀리서 꽃밭을 바라보기만 했다.

할머니랑 아이가 꽃을 대하는 마음이 너무 달라 당황했다.


집에서 출발해 차를 타고 가면서 묻는다. 

"할머니는 코스모스가 좋아? 강아지풀이 좋아?"

강아지풀은 또 어찌 알고 그런 질문을 하는지?

내가 말했다.

"코스모스가 예쁘지. "

"그렇지만 강아지풀은 자연스러우니까 좋지."

아이의 말에 또 당황했다.

"그럼, 강아지풀은 자연스러워서 좋고, 코스모스는 예뻐서 좋아."

아이가 어느 것이 좋으냐고 물었으니 다 좋다는 뜻으로 대답을 수정하며, 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건  또 어찌 알았는지 놀랐다.

아이가 말이 빨랐던 세 살 때 겨울.

아파트에 놀이터에 내린 눈을 보고

"눈이 소복소복 쌓였네."

하던 말이 생각난다.

네 살 때는, 나뭇잎에 돋아 나는 나무를 보면서 말했다.

"나무가 이불을 덮었어."

말이 빠르니 표현력이 좋았던 아이다.

어려서는 말이 빨라 표현력이 좋았지만, 이제는 친구들이 모두 말을 배웠으니  또래의 아이와 우리 아이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안다.



이다음에 크면 무슨 일을 하는 아이가 될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아이가 사회생활 하는 모습을 볼 수는 있으려나?

"이다음에 돈 벌면 할머니 맛있는 거 사 줘."

"그때는 할머니가 하늘나라에 있을 거잖아."

"할머니가 오래 네 옆에 있으려고 병원 가서 아픈데 다 고쳤어."

아이가 느닷없이 큰 소리로 말한다.

"그럼, 얼굴에 점도 다 빼야지."

건강이 안 좋으니 얼굴에 기미와 주근깨가 많다. 아주 많다.

"할머니는 얼굴에 점이 많아."

라는 말을 자주 하던 아이가 이제는 병원 가서 얼굴에 점을 다  빼라며 걱정을 한다.

아이 곁에 오래 머물려면 얼굴에 기미와 주근깨도 정리를 해야 하나 보다.

아니, 더 열심히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


코스모스 축제와 함께 구리 평생학습축제도 있어서 각종 체험과 만들기를 하며 하루를 즐겼다.

"오늘 재미있었어?"

"네, 재미있었어요. 이제부터 금, 토, 일요일마다 매번 와야 해!"

이제 함께 살지 않는다는 걸 아는 아이가 주말마다 오라고 성화다.

그 말이 고맙다.

아직은 할머니와 세대차이를 느끼기보다는 함께라서 즐거워하는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꽃보다 예쁜 아이와 함께한 행복한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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