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일기를 읽으며
올해의 김장이 끝났다.
11월 첫째 주 여행을 다녀온 후 지난해보다 김장이 늦은 것 같아 서둘러 배추 주문을 하고 나니. 이웃들이 아직 김장 전이다. 날씨가 따뜻해서 다른 해보다 김장이 늦어진다는 걸 생각지 못했던 거다. 그러나, 집에 김치가 없으니 며칠 전 서둘러 20KG의 김장을 담갔다. 젊은 날 생각하면 양이 엄청 줄어들었고, 이제 그 정도는 아무스럽지 않게 김치 하듯이 김장을 담근다.
다음 날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텃밭 농사를 짓는 동생이 친정엄마처럼 친정가족을 살핀다. 배추를 절여 놓았으니 가져가란다. 그래서 또 20KG의 김장을 더한다. 두 식구 사는데 많은 것 같지만, '아들도 주고 딸도 줘야지' 하는 마음에 김치 담그듯이 김장을 담갔다.
"벌써 끝난 거야?"
거실 소파에서 텔레비전 영화에 꽂혀있던 남편이 영화가 끝나니 옆에 와서 한 마디 한다.
"그럼, 다 했지."
'언제?"
"점심 먹고 했어."
침대에 누워 쉬면서 스마트 폰에서 지난날들의 일기를 본다.
예년의 이맘때. 김장이야기가 여러 편 있다.
읽으며 혼자 ㅋㅋㅋㅋ~ 웃다가 그날을 생각하며 여기 옮겨 본다.
집안일에 무심한 울 짝꿍님이 그래도 내 건강을 생각해서 도와준 날들이 있었다는 걸 다시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도 든다.
비록, 올해는 무심히 지나갔지만. ㅋㅋㅋ~
2019년 김장하던 날의 일기
저 여자 / 김상배
저 여자
오늘 김장을 도와준 동네 아주머니들과
슈퍼에서 사 온 맥주 한 잔 하고
약국 지하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랠 불렀겠지
베개도 없이 쓰러져 자는 저 여자
글쎄 저 나이가 되면 여자들은 다 그렇다네
그래도 동사무소에서 인감증명 뗄 때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곁에 서 있기만 해도 내 마음이 든든한
저 여자
동생 집에서 김장을 했다.
"힘든데 종갓집에서 들어다 먹으면 되지."
그런 남편의 말은 흘려들으면서 동생집으로 향한다.
친정엄마처럼 계절 따라 먹을거리 참견하면서 보따리 싸 주는 동생.
ㅋ~
어째 뭔가 잘못된 거 같다.
언니가 챙겨주어야 하거늘
난 동생이 챙겨주는 걸 들고 온다.
여름에 땀 흘리면서 배추모종 심어
속이 꽉 찬 배추로 길러
다듬고 소금물에 절여 씻어 놓고 오라고 부른 동생.
올 김장도 남편과 동생의 손을 빌었다.
나이 들어가고 마누라 건강이 안 좋으니 집안살림 몰라라 하던 남편이 변한 건지,
예전과 다른 세상의 분위기에 따라 마누라를 돕는 건지,
남자는 엄마 잔소리 듣던 버릇이 남아 잔소리들을 일만 만든다는 지청구에 고분고분 해진 건지,
빨갛게 버무린 배추를 차곡차곡 넣는 남편의 손이 바쁘다.
나를 도와 고무장갑을 낀 사람
빨간 배추김치에 푹 삶은 돼지고기 편육을 싸 소주 몇 잔 마시는 걸 보다가
조금만 마시라는 잔소리가 또 올라온다.
김장하는 아내 / 이생진
아내는 내가 하지 말라는 김장을 감행한다
두 식구 사는데 김장이 부산하다
아내가 소매를 걷고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 무섭다
무관심하다가 부부싸움 날 것 같다
김장 때문에 이혼하기 싫고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그게 평화를 가져오니까
파 다듬는 일은 겨우 통과됐지만
무를 채칼에 미는 일에서 실격당했다
그 바람에 책상 앞으로 쫓겨나 다시 시를 읽는다
나는 이런 실격에서 얻은 자투리로 산다
아내가 고맙다
*******
부드러운 표현력이 부족한 나이 든 남편님들
마음이 그렇군요.
이생진 <김장하는 아내>
김상배 <저 여자> 읽으면서 생각한다.
나오는 말과는 다르게 마음속으론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남자들이구나~~^^
말이 없던 남편은 김장통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동생 덕에 김치냉장고가 꽉 찼다.
예전에 울 엄마는 이맘때면 김장하고 쌀가마 들이고 창고에 연탄 쌓으면 겨울날 준비를 다 한 거라 했다.
병원에 누워 있는 엄마는
몸이 부실한 딸내미 걱정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김장하는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낸다.
엄마, 내 걱정하지 마. 나, 월동준비 잘하고 있으니까~~^^ (2019. 11.18)
그 사이 먼길 떠나신 엄마.
지나간 날의 일기를 읽으며 김장통 앞에서 엄마생각 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