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히햐
아이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되면 저는 이야기꾼이 되고는 합니다. 전등불을 끄고 나지막한 소리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잠자리 의식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 이야기 소재가 떨어질 때면 아이들은 엄마 어릴 적 이야기를 해 달라며 졸라 대곤 하죠. ‘음 나의 어린 시절이라…’ 마음속으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옛날 살던 골목집이 떠오릅니다. 나에게 집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들의 독촉으로 어린 시절 기억의 문을 슬쩍 열어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하면 해질 때까지 집 안 구석, 앞마당, 야외 공터까지 구석을 누비며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집은 어른이 된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공간들이 놀이터로 변신하곤 했죠. 특히 좁은 공간에서 하는 숨바꼭질의 짜릿한 맛. 지금 생각하면 그 좁은 집에 어디 숨을 곳이 있겠나 싶지만 작은 키의 아이가 보는 시선에는 은밀한 장소가 제법 많았던 것 같습니다. 책상 밑, 식탁 밑, 옷장 속, 옷장 뒤편의 작은 공간, 가구 위 등 작은 몸이 들어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 그곳은 나만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그림 속에서는 작가의 어린 자녀들이 가장무도회를 하며 놀고 있는데요. 제목은 ‘기념일’입니다. 결혼식 장면이기도 한 것 같고 생일 파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저의 어린아이들도 집에서 한여름에 방탄복이라며 겨울 점퍼를 꺼내 입고 장난감 총을 쏘며 전쟁놀이를 할 때면 집은 전쟁터가 되기도 하고, 동물 인형을 가지며 놀 때면 집은 초원이나 바다가 되기도 하며, 홑이불을 목에 감고 영웅 놀이를 하면 집은 영화의 배경이 되듯이 집은 가장 재미난 놀이터가 됩니다.
이렇듯 집은 즐거운 곳이기도 하지만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밖에서 싸우고 들어와서 엄마에게 달려가 이르고 나면 마음이 조금 후련해지기도 했었죠. 또 언젠가는 밖에서 장난을 심하게 치고는 혼쭐날 줄 알고 차마 집에 가지 못하고 집 주변을 뱅뱅 맴돌다가 해 질 녘에 되어서야 잔뜩 긴장을 하고 집에 돌아간 적이 있었는데 의외로 엄마가 별말씀 없이 ‘어서 와라!’ ‘밥 먹자!’하면 아무 말도 안 하고 반겨주셔서 놀랐던 기억도 있습니다. 집에만 오면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그것은 아마도 집에 엄마가 계셨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조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마음이 놓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집은 엄마 품같이 편안한 안전 기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림 속 집도 참 포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의 집의 실내 인테리어에 많은 정성을 들였다고 합니다. 노란빛 도는 조명으로 밝혀진 실내는 눈에 보기에도 세련되고 멋있게 보이네요. 하지만 이 그림 속에서 무엇보다 빛나는 것은 그 공간에 함께 있는 가족들의 표정인 것 같습니다. 가구나 벽지만 가꾼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 흐르는 말들과 눈빛도 정성스럽게 가꾸고 다듬으며 정성을 들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작품은 스웨덴의 국민 화가라고 불릴 정도로 스웨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칼 라르손(1853~1919)이라는 작가의 그림입니다. 자신의 가족과 아이들의 행복한 일상의 모습을 많이 그렸는데요. 스웨덴의 사람들이 닮고 싶은 가정의 모습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화가의 어린 시절은 그림처럼 아름답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작가는 가난한 동네에서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좋은 돌봄을 받지 못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달리 결혼 후 자신의 가족을 지극히 사랑했던 것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화가에게 집는 새로운 인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삶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어른이 되고 난 후의 삶은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나갔던 것이지요. 그동안 원하던 이상의 삶을 현실로 만들면서 살아간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집은 힘들 땐 쉴 수 있고,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며 낄낄거리는 곳, 그리고 힘들 때는 같이 견디고 슬플 때는 같이 울어 주는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어떤 조건이나 자격 없이 사랑해 주는 환대의 공간이기도 하죠.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도 따뜻한 온기로 늘 가득 차면 좋겠습니다. 가족 모두에게 집은 그런 공간이 되길 바라며 계속 집을 가꾸어 나가야겠습니다. 화분에 물을 주며 잘 자라기를 바라는 그림 속 소녀의 마음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