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혜정 May 19. 2024

인생 곡이 바뀔 위기에 처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건 나" 
자칭 '나 연구 학자', 본업은 16년 차 윤리 교사입니다. 나다운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글로 씁니다. 
이 글의 끝에는 [오글오글(오늘도 글을 쓰고, 오래오래 글을 씁니다) 질문]이 주어집니다. 
함께 쓰며 '나 공부' 같이 해요.






"어떻게 벌써 12시네~ 보내주기 싫은 걸~"


청하의 '벌써 12시'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인생 곡을 주제로 글을 쓰다가 인생 곡이 아닌 노래가 떠오르다니!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벌써 3시간'째였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벌써 3시간째


엊그제 브런치에 올릴 글 하나를 쓰는데 4시간이 걸렸다. 글감은 있는데 글로 옮기기 힘들었다. 생각나는 대로 쓰다가 고치면 된다 생각하고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모니터만 노려보는 내가 보였다. 계속 앉아있기는 힘든데, 일어나기는 더 어려웠다. 여기서 그만두면 이 글은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채 비공개로 저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공개로 저장된 채 발행되지 않은 글이 얼마나 많은가!


'책 한 권 쓰는 것도 아니고, 매일 글 쓰는 습관 기르자고 쓰는 거다. 가볍게 생각하자.'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시작했으면 끝을 보자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글을 노려봐도 이걸 말하려던 게 아닌 것 같아 다음 문장이 써지지 않았다. 


'내가 뭘 말하려는 거지?' 생각해도 모르겠고, 눈꺼풀은 무거웠다. 아무래도 눈 뜨자마자 글을 쓰는 게 힘든 일인가 보다 생각하며 몸을 조금 움직여 보기로 했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물도 마시고, 핸드폰도 하고 책도 뒤적거렸다. 글쓰기와 상관없는 일을 하다 모니터 앞에 앉았다. 


그러자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던 버릇 때문에, TMI'라는 얘기가 생각났다.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면 되는데 상대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덧붙이는 말이 많다는 것이다. 내 글을 다시 보니 그랬다. 


내가 말하려던 것은 '비 오는 날 시골 국숫집에서 인생 곡을 들었다. 오늘도 감동 한 스푼 섭취했다'인데, 국숫집에 가기 전 등산 간 일, 등산 갔는데 비가 와 하산할 수밖에 없었던 일, 비를 맞아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었던 마음, 잔치국수가 먹고 싶어 검색하는 과정까지 쓰고 있었다. 



이러다 언제 국숫집 도착하지?


오. 마이. 갓!!! 이러다 언제 국숫집 도착하지? 글을 쓰면서도 진이 빠졌다. 그냥 과감하게 엎어 버리기로 했다. 국숫집으로 바로 돌진! 2시간 넘게 써내려 갔던 길고 긴 글을 삭제하고, 다시 시작했다. 그러자 키보드 위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쓰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는 텔레포트 능력이 생겼다. 내 글은 국숫집에 있었는데 어느새 동남아 라이브 클럽에 가있었고, 다시 국숫집으로 돌아왔다. 이동하는 곳마다 공간의 모습이 또렷이 그려지고 냄새와 열기까지 전달됐다. 전달받는 대로 신이 나서 쓰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한 편의 글이 또 발행됐다.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글을 쓰고 있다.

'글감은 많은데 글이 써지지 않네.'

'일단 써보자.'

'쓰긴 썼는데, 내가 뭘 말하려는 거지?'

'오늘도 TMI군. 언제 이렇게 길어졌지?'

'다시 써야 하나?'


결국 청하의 '벌써 12시'가 머릿속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벌써 12시네~~ 보내주기 싫은데~~~' 보내주기 싫지만, 이제 그만 보내주기로 했다. 오늘은 쉼이 필요한 일요일이니까. 한편으로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러다 '벌써 12시'로 인생 곡이 바뀌는 건 아니겠지?!'








[오글오글 질문] 
요즘 가장 시간을 많이 들이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그 일에 얽힌 사연을 글로 써 볼까요?


작가의 이전글 잔치 국숫집에서 호텔 캘리포니아를 들을 확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