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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혜정 Sep 11. 2024

잘 나가던 15년 차 교사가 돌연 휴직을 선언한 이유

내 글이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바비, 우는 거야? 이거 찍어야겠다."



술을 마시다 꺼이꺼이 울었다. 술기운이 올라오긴 했지만, 취한 건 아니었다.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으허허엉 소리를 내고 있는데, 입은 크게 웃고 있었다.



"나, 나도 으으으허어엉,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으허어어엉."



한 손에 올려진 <공통 국어> 교과서를 손으로 쓰다듬고, 매끄러운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처음이었다. 교과서를 쓰고, 단행본을 두 권 내고, 선생님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하고, 처음 보는 선생님이 아는 체 하며 나를 알고 있다고 말해도 기쁜 적이 없었다. 잘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부족한 점만 생각나 내가 했던 모든 일은 다시 생각하지도 않았다.



출판사로부터 내 글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게 됐다는 연락이 왔을 때도 덤덤했다. 내 글이 국어 교과서에 실린다고? 왜?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려고 그러나? 부족한 글 보완하기 뭐 그런 단원인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혹여 부족한 나의 글이 전국의 고등학생들을 혼돈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닐까? 뭐 이런 수준 낮은 글을 교과서에 실었냐며 고매한 학부모님으로부터 민원을 받지는 않을까? 등등 망상에 빠졌었다. 그래도 언제나 그랬듯 해보지 뭐 정신과 피에로 정신으로 "감사합니닷, 영광입니닷!" 말하며, 매우 기쁜 것처럼 수락했다.



그 후 잊을만하면 집필자 선생님과 통화하고, 진짜인가 싶으면 출판사 편집자님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사기는 아니었구나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다 지난 금요일에 교과서 실물이 집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핸드폰에 택배 도착 알림음이 울렸지만, 심지어 집에 있었지만 나가 보지 않았다. '원래 국어 교과서는 여러 작품의 모음집이니까, 그중 하나겠지.'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무덤덤하게 보냈다. 신랑이 퇴근길에 문 앞에 놓인 택배를 들고 와 포장을 뜯을 때도 "아. 왔네."하고 말았다.



그러다 술을 한 잔 마시고 "바비, 그래도 같이 한 번 보자. 나는 너무 좋아."라고 꼬시는 바람에 거실 구석에 던져뒀던 교과서를 가지고 와서 펼쳐봤다. 홀로그램이 들어간 건지 움직임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는 오묘한 표지, 방금 쓴 글씨가 쉽게 번질 것 같은 미끄러운 내지가 맘에 들었다.   



"<방문객> 정현종. <수라> 백석. <파수꾼> 이강백. <진달래꽃> 김소월. 김중혁, 김금희... <영화 UP 비평문> 이동진?!"



이름만 봐도 헉 소리가 나는 인물들과 나란히 적힌 내 이름을 보며,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처음 보는 건 내 이름뿐이야. 수많은 글들 중에 어쩌다 내 글이 발견됐지? 왜 하필 내 글이 발견됐을까? 우연인일까, 필연일까? 아니야, 이건 인연이야. 감사하다. 너무 감사하다."라고 말하며 웃음과 함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 글... 괜찮은 거였구나. 누군가 보고 있긴 했구나. 아니,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겠구나. 으허허엉."



잊고 지냈던 감정이었다. 십여 년을 앞만 보고 내달리며 "혜정아, 잘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준 적이 없었다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를 하염없이 부족한 존재로만 바라봤던 과거가 생각나, 나에게 미안해졌다. 그동안 왜 그렇게 나에게 채찍질만 하고 살았을까?






2009년에 교직에 발을 들이고, 곧장 교사 연구 모임에 찾아갔다. 신규 교사가 갖는 통통 튀는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주목받았다. 연구 모임에서 배운 것들을 적용하면서 성장하는 내 모습이 좋았다. 방과 후는 수업 연구, 주말은 연구 모임으로 가득 채운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당연하게 생각됐다. 주위를 둘러보면 전문성과 열정이 뛰어난 선생님들이 가득하니까.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학교-집-모임을 오가는 삶이 반복됐고 모임 개수도 늘었다. 찾는 곳이 많아졌고, 어느새 모임을 이끄는 입장이 됐다. 모임 덕에 버킷리스트에 적었던 '교과서 집필, 책 집필, 교사를 가르치는 교사' 같은 목표도 이뤘다. 그래서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외로워."



어느 날 신랑이 말했다. 눈물이 없어 놀림을 받는 그인데, 얼굴이 젖을 정도로 울며 말했다. 집에 오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 뒷모습만 보느라, 주말이면 연구 모임에 데려다주고 차에서 한없이 기다리느라 지친다고 했다. 집에 오면 따뜻한 얼굴로 맞아주는 사람, 주말이면 오롯이 자신의 눈만 바라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고 했다.



나 스스로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노는 사람이라 평가했는데 아니었다. 빡빡한 일정 속에 겨우 한 틈 밀어 넣어 흉내만 내곤, '자, 같이 놀아줬지? 나 이제 바쁘니까 기다려'라고 온몸으로 말해왔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은 나도 버거웠음을 인정했다. 많은 역할과 기대, 그로 인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고, 나도 나를 돌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언제나 나보다 학생, 가족보다 남, 가정보다 일을 우선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학교 가는 발걸음도, 모임을 운영하는 모습도, 심지어 사람을 만나는 것에도 소극적으로 변해 갔음을 이해했다.






이후 몇 년에 걸쳐 시간, 공간, 모임을 정리해 갔다. 해야 하는 일로 둘러싸인 삶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더 이상 남이 아닌 나, 그리고 사랑하는 존재를 보살피는데 시간을 쓰고 싶었다.



고민 끝에 올해 자율연수휴직*을 했다.

(*자율연수휴직: 공무원연금법 제25조에 따라 재직기간 10년 이상인 교원이 자기개발을 위해 학습 연구 등을 하게 된 경우, 1년 이내로 쓸 수 있는 무급 휴직. 전체 재직 기간 중 1회만 사용할 수 있음)



휴직 후 일상? 말.모.말.모다.(말해 모해의 줄임말) 차안대를 벗어던진 경주마 같달까? 더 이상 앞만 보지 않는다. 큰 코를 벌름 거리며 꽃냄새를 맡고, 풀밭에도 들어가며 여기저기 뛰놀고 있다. 매서운 채찍질 때문에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이리저리 폴짝거리며 뛰어다닌다. 말이 웃는 모습을 보았는가? 푸히히히힝~! 큰 앞니와 분홍빛 잇몸을 드러 내며 활짝 웃는 말상. 그것이 요즘 내 얼굴이다.



물론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금방 울상이 되곤 한다. 휴직 기간에 쓰려고 모아둔 생활비의 잔고를 확인할 때면 심장이 오그라 붙는 것 같다. 그만큼 지금의 여유와 평온함이 좋다. 어떻게 하면 이 안온한 삶을 연장할 수 있을지 머리가 복잡하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좋아서 하는 일들을 어떻게 직업으로 연결하고, 지속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고 공부한다.



사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15년 교직 생활을 돌아봤을 때 미련이 없어서다. 학교와 학교 밖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고, 학생, 수업, 교육 전체의 변화를 위해 이 한 몸 불사(?) 질렀다. 누구에게 말해도 부끄럽지 않은 15년을 보내고 나니 남은 건? 정말 많다. 하하! 교육과 관련된 성과나 결과물도 있고, 사랑하는 제자들과 동료들까지. 감사하게도 많은 것을 얻었다. 그래서 손에서 놓아주기 아깝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의 나는 교직에 첫 발을 디딜 때의 내가 아니다. 설레는 마음에 복도로 들이치던 햇살 조각의 수까지 기억하던 빛나는 내가 아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대체로 힘들고 틈틈이 괜찮은 날들이 될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나는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와 같은 결을 지닌 사람들과 교류하는 조용한 행복을 좋아하는 사람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선택은 어떠해야 할까? 당연히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쥐고 있던 것을 손에서 놓아야 한다. 두 손으로 커다란 풍선을 잡고 있었는데, 이제 곰인형과 놀고 싶다면 풍선을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풍선이 훨훨 날아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원하는 것이 지금과 같은 생활이라면, 15년 세월은 놓아주어야 마땅하다. 물론 미련 없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질척거리는 성격이라 많이 그리워할 것이고, 자주 후회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었고, 설레는 일은 잘하는 일로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조금 불안해도 많이 행복한 요즘을 살아 보기로 했다.



영롱한 표지
제 글은 3-1. 단원이에요~꺄아~
어마어마한 분들과 함께 실리니 영광입니닷!! 진심입니닷!
제 글이에욧~! <도덕적 시민으로 눈으로 세상 읽기>의 한 꼭지입니다~
너무 좋아하는 빨간테 이동진 평론가
결국은 사람...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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