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글오글 멤버들과 공저를 쓰기로 했다. 그동안 서로의 글을 봐 왔기 때문에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 저서 출판 경험이 있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공저는 그와 다르다. 본인이 원하는 주제가 아닌, 공통의 주제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출판사가 제안하는 기획출판만 경험한 나로서는 자체 기획을 통해 초고를 완성하고 투고를 하는 과정이 두렵기도 했다. 함께라는 에너지로 의기투합하긴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때 도움이 된 것이 자경노 공저 작업이다.
3월부터 자경노 리더인 김진수 선생님의 주도 아래 <퓨처 티처> 공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과정을 함께 하며 공저 원고 작성, 퇴고, 투고, 계약을 지켜보았기에 이를 따라 해 보기로 했다. 역시 앞서 걸어가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힘이 된다.
지금부터는 블로그, 브런치 등의 글을 모아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예비 저자, 한 권의 책이 나오는 과정이 궁금한 예비 저자, 출간을 위해 강의를 듣거나 글쓰기 모임을 찾는 사람들, 책과 글쓰기로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들고 싶은 이들을 위해 오글오글이 걸어간 길을 설명문 형식으로 적어 보겠다.
전체 회의는 현재까지 오프라인 1회, 온라인 4회 진행했으며, 전국에 흩어져있는 저자들을 고려해 온라인 줌을 주로 활용했다. 먼저 본격적인 공저 작업에 앞서 구글 드라이브에 공유 폴더를 만들고 원고 양식과 원고 업로드 폴더를 만들었다. 그리고 5월 21일 기획회의에서 원고 기획, 일정 조율, 원고 검토 방법, 홍보 방법 등을 논의했다.
기획 회의에서 제목(가제), 집필 방향, 타겟 설정을 확정했다.
제목(가제) : 나는 교사 작가입니다. (추후 수정됨)
집필 방향 :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교사들의 오늘도 쓰고 오래오래 쓰려는 노력의 모음집
타겟 : 글쓰기와 글쓰기 모임에 관심 있는 사람, 글쓰기를 좋아하는 교사
그동안 책 쓰기보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던 관계로, 글쓰기 책을 주로 읽었다. 그런데 1인 출판사 창업을 꿈꾸면서 책 쓰기와 출판 기획과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하니 기획 단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내용물이 좋아도 어떻게 포장하느냐가 소비자의 선택에 큰 역할을 하듯, 잘 쓴 글도 콘셉트가 명확하지 않으면 눈에 띄기 어렵다.
지금 와서 보면 조금 더 콘셉트가 명확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많은 저자들이 지나간 글을 다시 보면 부족한 점만 보인다고 하니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다음으로 원고 양식과 분량, 소주제(장)를 정했다. 원고 양식은 자경노 리더 김진수 선생님이 공유해 주신 것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원고 양식은 한글 문서, 바탕체 10포인트, 자간 160%로 설정되 있다. 장은 원고 분량을 고려해 3장으로 결정했다. 이는 출간될 책의 판형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단행본의 사이즈는 신국판(152X225mm)이며, 에세이류는 그보다 작은 사이즈인 사륙판(128X188mm)이다. 참고로 신국판은 가장 널리 쓰이는 단행본 사이즈다. 신국판으로 출간할 경우 바탕체 10포인트, 자간 160%, A4 용지 100장이면 약 250쪽의 책이 완성된다.
그렇다면 책 한 권을 완성하고 싶다면, 한 꼭지 분량은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단행본은 30~40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계산하기 좋게 40 꼭지로 구성한다고 할 경우, 한 꼭지 당 2~2.5쪽을 쓰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의 경우 분야를 에세이로 정했고, 에세이는 신국판보다 작은 사이즈인 사륙판이 많기 때문에 40 꼭지까지 쓰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또한 11명의 저자가 함께 하므로 한 사람당 3 꼭지의 글을 써서 총 33 꼭지의 글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장은 3장으로 구성해 학교 안 이야기, 학교 밖 이야기, 책과 글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원고 형식 : 한글, 바탕체 10포인트, 자간 160%, A4 2~2.5 매 작성
장 주제 : 1장 학교 안 이야기, 2장 학교 밖 이야기, 3장 책과 글 이야기
각자 써야 할 원고: 각 장 별로 1개씩 총 3 꼭지
마지막으로 일정과 원고 검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의욕이 넘쳐 2주에 1 꼭지의 글을 완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첫 번째 원고를 작성하고, 중간 점검 회의를 하면서 전체 일정을 수정했다. 저자들이 일과 공저 작업을 병행하다 보니, 원고 작성과 검토 일정이 빠듯하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중간 점검 회의 후부터는 약 한 달의 기간을 두고 1 꼭지 글을 완성하고 팀 검토를 하기로 했다. 이렇게 짜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4월 20일(토) : 기획 회의(1)
5월 21일(화) : 기획 회의(2)
6월 6일(목) : 원고 1 제출
6월 7일(금)~6월 10일(월) : 원고 1 검토
6월 11일(화) : 중간 점검 회의
6월 24일(월) : 원고 2 제출
6월 25(화)~6월 27(목) : 원고 2 검토
7월 28일(일) : 원고 3 제출
7월 29일(월) ~ 7월 30일(화) : 원고 3 검토
7월 31일(수) : 초고 회의
원고 검토는 팀으로 진행했다. 3~4인 1조가 되어 팀원들의 원고를 모두 검토하고 메모 기능을 활용해 피드백을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원고에 2~3인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맞춤법과 오탈자 확인, 작가의 의도를 헤치지 않으면서 글이 풍성해질 수 있는 정도의 피드백을 하기로 했다. (검토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 글에서 다룰 예정이므로 생략하겠다.)
이번 글은 공저 작업의 기획 과정을 다루었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내용이 들어갔는지 의문스럽다. 의문은 계약을 앞둔 지금도 여전하다. 작업 내내 이게 맞나 생각했다. 남들은 어떻게 책을 기획하는지, 특히 공저 작업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참고할만한 글이 없어서 주변 사람을 보면서 따라 했다. 하지만 따라 하면서도 막막했다. 그래서 우리 책이 출간되는 과정을 글로 쓰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력이 부족해 글로 표현하지 못한 많은 부분이 있다. 그러니 쓰인 내용 중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을 달아주시길 부탁드린다. 답글이나 새로운 글로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앞으로 어떤 내용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댓글도 좋습니다. 소통하며 쓰고 싶습니다.)
첫 원고 작업도 매우 힘들었다.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기에 사색의 시간이 길었고, 쓰면서도 많이 울었다. 퇴고할 때마다 울었다. (첫 원고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 글을 참고하세요) 두 번째, 세 번째 원고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때그때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정해진 주제에 맞는 글감을 찾고 글로 써나가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써낼 수 있었던 건, 함께의 힘이 컸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 우리의 작품이기에 글을 쓸 때도, 마감이 다가올 때도 책임감의 무게가 남달랐다. 만약 혼자였다면 33개의 글을 오롯이 써내야 하는데,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함께하는 이들 덕에 내가 감당할 몫이 1/11로 줄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혹자는 공저 책을 낮게 평가하기도 한다. 나도 공저 작업이 한창일 때 스레드에서 '공저를 쓴 사람은 작가가 아니다'라는 글을 보고 심란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글쓰기 분야에서 유명한 분이 논리적이고 감성적인 글로 반박해 주어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나 또한 개인 저서가 없다. 모두 공저다. 그래서 한 때 위축되기도 했다. 그런데 공저냐 개인 저서냐가 글의 질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공저로 썼던 나의 글이 국어 교과서에 실린 사례를 보아도 그렇다. 짧은 글이라도 좋은 글은 독자가 알아본다. 반면 깊이 없는 개인 저서도 많다.
결국 개인 저서든 공저든 일단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경험자로서 말씀드리자면 여럿이 모이면 파이팅도 넘치고, 내 몫의 부담도 줄어들어 좋다. 더구나 한 달에 1 꼭지를 정성껏 쓰면 될 일이니, 준비가 되었다면 지금 당장 마음 맞는 사람을 물색해 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어젯밤 11시 59분. 마감 1분을 앞두고 글을 발행했습니다. 역시 마감이 글을 쓰게 하는군요! 오늘 할 일을 끝냈다는 뿌듯함을 안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더군요. 고통 뒤의 쾌락이 더 크다더니, 힘들게 쓴 글을 발행하고 나니 도파민이 샘솟았나 봅니다. 간간이 울리는 핸드폰 진동음에 '이 늦은 시간에도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구나' 흥분도 되고요.
그러다 '유랑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좋아요를 눌러주신 분들의 브런치에 방문하곤 하는데요. 교사 아니랄까봐 '선생'이라는 말에 이끌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 엄청난 분이셨어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에 12권의 저서. 그 저서 중에는 제가 교과서와 단행본을 집필할 때 도움을 받았던 책도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화려한 이력을 증명하듯 유려한 글솜씨에 홀린 듯이 글을 읽어 나갔습니다. 제가 찾던 '책 쓰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얼마나 상세하고 친절하게 쓰여 있는지, 방금 발행했던 글을 서랍 속에 숨겨두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제 글을 관심 있게 보시는 분이라면, 글쓰기나 책 쓰기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미 아실 수 있겠지만) 일독을 권합니다. 좋은 글은 함께 읽으면 좋잖아요. :)
유랑선생 브런치북 <책 쓰는 마음> https://brunch.co.kr/brunchbook/eurang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