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글오글 멤버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화면에 보이는 얼굴에서 빛이 났다. 반가운 빛이다.
“요즘 학교 일정이 너무 바빠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겠어요.” 굵게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말랑거리는 볼을 지닌 A 작가님이 근황을 전했다. 머리를 손질했냐는 질문에 수줍게 미소 짓는 그의 모습에 다른 이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오랜만에 얼굴을 비춘 B 작가님은 “번아웃이 왔었어요. 소속된 단체 톡방을 세어 보니 60개나 되더라고요.”라고 말하며 힘들었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조금씩 매일 꾸준히 하루 1%의 기적>과 오글오글 공저 작업까지 해내다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가족과 자신을 돌보기 위해 모임을 정리하고 있다는 말에 응원의 말을 건넸다.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는지 묻지 마세요. 그냥 행복합니다.” 얼마 전 <조금씩 매일 꾸준히 하루 1%의 기적> 공저를 출간하고, 독자들의 반응에 감동적인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C 작가님. 얼굴은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생기 있는 표정을 보며 어디에서 에너지가 나오는 걸까 생각했다.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와 경상도 억양이 매력적인 D 작가님은 “일이 폭풍우처럼 몰아치고 난 뒤 고요해지면 왠지 모를 우울함이 찾아오잖아요. 그 우울한 시간을 즐기고 있어요.”라며 우울함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해주었다. 7월 마지막 날 개인 저서 <1학년 선생님을 위한 모든 것>을 출간하고, 강연 준비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낸 D 작가님. D 작가님의 말은 아름답고 시적이다.
“며칠 전에 이사 갈 집을 덜컥 계약해 버렸는데, 후회돼요. 하하!” 우울한 이야기도 초승달 눈을 만들며 이야기하는 E 작가님. E 작가님의 직설적이며 유쾌한 화법은 언제나 웃음의 잔물결을 만들어 낸다. 본인을 대충 사는 사람으로 이야기하지만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그녀는, 주말이면 어작교(어린이책작가교실) 수업을 들으며 동화 작가를 꿈꾸고 있다.
언제나 다정한 표정으로 대화를 경청하는 L 작가님은 “저는 작가님들처럼 대단하고 바쁜 일상은 없어요. 소소한 하루하루죠.”라며 크고 맑은 눈을 가로로 길게 만들며 웃었다. L 작가님은 자녀와 함께 했던 ‘집 공부’를 주제로 새 글을 쓴다는 계획을 전했다. 사부작사부작 티 나지 않게 계획한 일을 모두 해내는 그녀이기에, 조만간 멋진 책이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저마다의 삶을 조금씩 나눠 가지고 나니 시간이 훌쩍 흘러 있었다. 본디 목적은 (아주 중요한!) 계약할 출판사를 논의하는 것이었는데, 반가움에 방향을 잃었다. 그만큼 사람이 주는 힘은 크다.
원고를 쓰고, 검토하며 투고하기까지 ‘혼자였다면 이렇게 빨리, 멀리 올 수 있었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그만큼 공동 집필은 장점이 많다. 같은 주제라도 서로 다른 경험이 더해져 다채로운 이야기가 생산된다. 또한 '책 한 권'이라는 무거운 짐을 나눠지니, 글쓰기 부담이 현저히 줄어든다. 뿐만 아니라 검토 과정에서 낯선 시각과 객관적인 입장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에서 1인 출판사 <도요샤>의 도요타 쓰요시 대표는 이런 말을 한다. “전에 우리 출판사에 왔던 기획이 다른 출판사에서 30만 부가 넘는 히트작이 되었다고 해요. 그 주제에 제가 관심이 없어서 낼 수 없다고 거절한 원고였는데, 만일 혼자가 아니라 다른 직원이 있었다면 함께 검토했을지도 몰라요. 그런 면에서 폭이 좁다는 걸 느낍니다. 혼자 하면 일하는 기쁨이 작습니다. 언젠가 조건이 되면 다른 이와 함께 일할 생각도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 ‘유쾌’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함께하면 더 유쾌할 수 있다는 말에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 그 유쾌함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 공저자들과의 원고 검토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유쾌함의 사전적 의미는 즐겁고 상쾌한 기분이다. 그렇다면 원고 검토 과정은 즐겁고 상쾌한가? 그렇다.
내 글을 섬세하게 읽어 내린 후 다정하게 건네는 피드백은 마음을 즐겁게 한다. 첫 독자가 보내는 다정다감한 리뷰를 보는 기분이다. 어서 빨리 다음 원고를 쓰고, 또다시 내 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면 하는 생각에 손이 근질 거린다.
한편으로 한 문단, 한 문장, 단어 하나, 조사까지 꼼꼼히 살피고 보완할 점을 적어 준 피드백은 글을 쓰면서 느꼈던 찜찜함을 해소해 준다. 상쾌함이 든다. 왜 이렇게 쓸 생각을 못했지? 막혔던 길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시원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 혼자라면 못 느꼈을 즐거움과 상쾌함이 공동 집필 과정엔 있다. 게다가 편집자의 빨간 펜으로 나의 원고에 핏물이 들기 전에 보호해 주는 방패막이라고 생각하면 유쾌함을 넘어 든든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오글오글 멤버들은 어떻게 서로에게 유쾌한 방패막이 되었는지, 원고 검토 과정을 간략히 소개해 본다.
총 11명의 저자를 3팀으로 나누었다.
3~4명이 한 팀이 되어 팀원들의 원고를 모두 읽고 ‘메모 추가’ 기능을 이용해 피드백을 기록했다.
원고 1개당 2~3개의 피드백을 받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후 중간 점검 회의에서 피드백이 유용하며 중요하므로 피드백 인원을 늘리자는 의견이 나왔다.
따라서 두 번째 원고부터는 2팀으로 나누어, 5~6명이 한 팀이 되어 피드백을 했다.
검토 팀은 매번 바뀌었다.
팀원의 원고를 모두 읽고 메모 기능으로 피드백 작성 후 집필자에게 개별 톡을 통해 전달했다. 전문 서적이 아닌 에세이기에 내용 오류에 대한 논의나 합의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글의 배경과 의도는 작가가 가장 잘 알기에, 팀원들의 피드백을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작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교정 : 오탈자, 맞춤법, 띄어쓰기, 붙여쓰기, 문장부호 등을 검토했고,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를 이용했다. (https://nara-speller.co.kr/speller)
교열 : 처음엔 작가의 문체와 메시지를 유지하면서 글이 풍성해질 수 있는 정도의 피드백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첫 원고 검토 이후 보다 적극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다는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래서 다음의 항목에 유념하면서 피드백을 하기로 했다.
단문으로 간결하게 쓰여있는가? 중복된 단어가 있는가? 시제는 일치하는가? 주어와 술어가 알맞게 호응하는가? 문장의 앞뒤 문맥이 맞는가? 생각과 주장만이 아니라 저자의 경험을 담고 있는가? 문단이 적절하게 나누어져 있는가? 독자의 입장에서 궁금한 점은 무엇인가?
초고 완성본이 출판사에 넘어가 있는 지금, 우리의 검토 과정이 유효했는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전문 편집자의 손에 들어갔으니 피(?)를 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함께 검토한 과정이 있으니 출혈이 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설마 출혈 과다로 목숨을 잃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