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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혜정 Sep 17. 2024

1만 팔로워 북스타그래머가 될 줄 알았지 뭐야

휴직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스타그램 계정 만들기였다. 쉬는 동안 좋아하는 일로 돈 버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때 꽂혀 있던 것이 인스타그램 수익화였다. 좋아하는 영역의 콘텐츠를 만들어 협찬, 광고를 받고 더 나아가 책을 쓰거나 강의를 하는 뻔한(?) 루트를 생각한 것이다. 



15년 동안 학교에서 해왔던 수업도 스토리를 가진 콘텐츠이고, 나름 얼리어답터 소리를 듣던 사람이라 카드뉴스든 릴스든 콘텐츠 만드는 건 자신 있었다. 관심받는 것을 매우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인플루언서에 대한 로망도 있었다. 그리고 결과론적 해석일 수도 있지만, 그즈음 우연히 참석하게 된 비거뉴어리 파티도 나를 인스타그램의 세계로 인도하는 큰 역할을 했다. 






비거뉴어리 파티는 퇴직 교사이자 비건 인플루언서인 민주님의 주최로 열렸다. 민주님은 교사이면서 블로거, 인스타그래머로 활발히 활동하던 분이었고, 마침 퇴직 의사를 밝힌 터라 학교 밖의 삶을 궁금해하던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프로그램 중간에 1대 1 타로 상담이 포함되 있어 내 미래를 점처 보고 싶기도 했다.



행사 당일, 맛있고 아름다운 비건 식사와 새로운 사람들과의 대화는 어색하지만 즐거웠다. 멀리 제주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젊은 퇴직교사 A님. 등단 후, 소설 집필에 집중하기 위해 과감히 퇴사하신 (또) 퇴직교사 B님. (이 정도면 나도 퇴직하라는 신호인 건가?!) 에코아티스트이자 환경 운동가인 C님. 직장 생활을 하며 심리상담 전문가로 활동하시는 D님 등. 다양한 영역에서 멋진 삶을 사시는 분들을 만났다. 



그리고 대망의 타로 상담 시간. 명함 크기의 종이에 상담 내용을 적고 타로 카드를 고른 후, 민주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으로 진행됐다. 내가 적은 고민 내용은 "휴직 기간 동안 인스타,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데, 도전해 봐도 괜찮을까요?"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질문이다. '새로운 도전'이라니. 이 무슨 애매모호하고 이상적인 표현인가? 그냥 SNS를 통한 수익화를 꿈꾼다고, 왜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가? 아니다. 당시의 나는 상당히 용기를 내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N잡하는 교사, SNS 수익화 등을 생각한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내 주변에 널린(?) 참교사들을 생각하면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주제였다. 교육의 변화라는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매우 세속적이고 꿈같지도 않은 하찮은 일처럼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밖 삶에 대한 상상은 언제나 머릿속에만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휴직자 신분이 아닌가. 수업 준비도 안 해도 되고, 내가 맡았던 역할들도 다른 이에게 모두 양도했으니 내 맘대로 살아봐도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 혼자만의 고민과 계획을 용기 내 적곤, 담담히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혜정님! 인스타 하셔야겠는데요!"



이어진 민주님의 이야기는 응원의 메시지였다. 내가 고른 카드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내용이라 무조건 인스타그램을 하라는 이야기였고, 책과 운동 중에 책관 관련된 카드가 더 긍정적이라고 했다. (분야까지 콕 집어 주다니! 엄지 척!) 민주님은 이미 SNS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사람이었고, 학교 안팎에서 다양성을 실험한 사람이었기에 더 신뢰가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라면 잘할 거야. 도전해 봐!'라는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어차피 마음은 정해졌는데, 누군가 '할 수 있어. 그냥 해봐!'라고 말해주길 기다렸달까? 사실은 내 안에 답이 있으면서도, 사주나 타로 같은 것을 보는 이유도 이런 것인가 보다.



10분 남짓, 짧은 상담이었지만 그 효과는 컸다. 맛있는 음식도 잔뜩 먹고, 비건 간편식을 가방 가득히 챙겨 줬기에 마음이 더 두둑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만큼은 당장이라도 인플루언서가 된 기분이었다. 


인스타그램의 세계로 인도해준 비거뉴어리 파티






이후 온라인 강의를 2개 듣고, 책 읽고 콘텐츠를 만들면서 열심히 인스타그램 친구를 만들어 갔다. 그리고 한 달 만에 팔로워 0명에서 500명이 됐다. 이 수치대로라면 3월이면 1,000명, 5월엔 2,000명, 7월 4,000, 9월 5,000, 11월이면? 으하하! '1만 팔로워 북스타그래머'가 현실이 된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원래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터라, 열심히 책을 읽고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도 재밌었다. 내가 만든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고 다정한 댓글을 달아주는 인친(인스타그램 친구)들이 있으니 즐거움은 배가 됐다. 나도 그들의 계정에 찾아가 꼼꼼히 게시물을 읽고 정성스러운 댓글을 달아 주었다. 



처음엔 내돈내산 책으로 콘텐츠를 만들었다면, 서평단 모집에 적극적으로 도전해 협찬받은 책으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굳이 서평단 신청을 하지 않아도, 출판사에서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와 도서 협찬을 조건으로 서평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 흐름대로라면 광고비를 받고 서평 쓰는 날도 멀지 않았구나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현실 자각 타임이 찾아왔다. 인스타그램을 키우는 초창기 전략에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창기 전략이란 '선팔맞팔' 활동이다.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계정에 방문해 좋아요를 누르고 먼저 팔로우를 한 뒤 DM을 보내 맞팔로우를 요청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인스타그램 성장 초기에 필요한 방법이 맞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 특성상 콘텐츠 업로드 직후 반응이 없으면 콘텐츠를 퍼트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초기 반응이 없으면 퍼질 수 없으므로, 콘텐츠를 알리기 위해선 반응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미와 같다.  



나는 인스타그램 시작기에 혼자서 '하루 10명 선팔 프로젝트'를 했다. 하루에 10명을 선팔 후 맞팔 요청을 하면 열에 여덟아홉은 맞팔을 해주니 한 달이면 삼백 명 가까운 팔로워가 생겼다. 그런데 팔로워 500명이 넘어가자, 이 활동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내 콘텐츠가 좋아서 팔로우를 하는 것이 아닌, 숫자를 하나 늘리기 위해 서로 팔로우를 하는 것이니 수천 명의 팔로워가 있어도 내 콘텐츠가 별로라면 수익화는 고사하고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끝에 선팔맞팔 활동을 그만두었다. 팔로워 수가 아닌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옳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수순으로 그 시점부터 팔로워 수는 정체됐다.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나의 콘텐츠 제작 능력에 대한 냉정한 피드백이라 생각하니 속이 쓰라렸다. 



그때부턴 더 치열하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에 대해 고민했다. 잘 나가는 계정을 벤치 마킹해 동기 부여 영상을 편집해 올리기도 하고, 얼굴이 나오는 릴스를 찍기도 했다. 그러자 릴스 하나로 10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단 며칠 만에 100명이 넘는 팔로워가 생겼다. 그런데 기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런 영상을 올리면 되겠구나 생각하면 되건만, 더 큰 고민에 빠져 버렸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팔로워를 끌어들인 콘텐츠는 내가 만든 콘텐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위 바이럴 되는 릴스를 따라 하거나 이미 만들어진 영상을 내 식으로 해석해 편집한 것들이었다. 물론 그것도 감각이고 능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콘텐츠가 내 계정에 도배된다고 생각하니 속이 답답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봐주는 콘텐츠가 아니라도, 나의 생각과 진심을 전하는 크리에이터이고 싶었다. 



물론 이상적인 소리라는 것을 안다. 많은 인스타그램 강사와 인플루언서들이 'SNS를 업으로 삼으려거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해라. 팔로워가 늘고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때 네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다. 그때는 네가 화장실 간 이야기를 적어도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를 거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이야기하는 건 세상물정 모르는 고집불통이나 하는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설레지 않으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나라는 사람이니.



그런 생각에 미치자 근래의 활동과 고민도 다시 돌아보게 됐다. 과도한 서평단 활동으로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읽어야 하는 책을 읽으면서 생긴 독서 권태기. 좋아요와 댓글을 신경 쓰느라 나다운 콘텐츠가 아닌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하던 시간. 인친들과 소통하느라 현실 속 관계를 버리고 핸드폰만 들여다본 일. 온라인상의 인간관계를 위해 어느새 형식적으로 남기는 좋아요와 댓글까지. 



무엇보다 책 계정도, 자기 계발 계정도 아닌 정체성이 모호한 게시물로 지저분하게 도배된 계정을 보고 있자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방법을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만 안은채 시간이 흘러갔다.



마침 교과서 집필 후속 작업, 단행본 개정 작업, 교사 성장 모임에서의 공저 작업 등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늘어나자 북스타그램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점점 더 소홀해졌다. 올해 가장 우선순위로 두었던 일이,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 버린 것이다.






'오늘도 글 쓰고, 오래오래 글 쓰실 분. 프로필 링크에서 신청하세요.' 



변화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숙제처럼 읽던 서평단 도서들 중 보물이 있었다. <하루 10분 마케팅 습관>을 읽고 책 속에 나온 데로 가상의 글쓰기 모임을 홍보하는 카드뉴스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았던 것이다. 정말 글쓰기 모임을 여는 줄 알았다며 신청 링크를 찾아보았다는 댓글들을 보며 흐렸던 눈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하루 10분 마케팅 습관>을 읽고 만들었던 '가상 글쓰기 모임' 홍보 카드뉴스
가상 글쓰기 모임에 반응해 준 분들과 실제로 글쓰기 모임을 하게 될 줄이야!



마침 읽고 있던 서평단 도서들을 살펴봤는데, 내가 가야 할 길이 명확히 보였다. <이어령과의 대화>, <오나이쓰>, <쓰는 게 어려워>... 나도 모르게 서평단 활동을 하고 있던 책들의 공통점은 '글쓰기'였다. 최근 인스타그램 콘텐츠에 소홀해지긴 했지만, 블로그에서는 조회 수 상관없이 1일 1 글쓰기를 하며 행복해하고 있었음도 깨달았다. 



교사 성장 모임 선생님들과 글쓰기를 하면서 느낀 치유와 해방감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어 했다는 것도 생각났다. 오글오글 글쓰기 모임이 가상이 아닌 현실이 된다면?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결국 이 모든 경험은 나를 글쓰기의 세계로 이끈 것인가?



갑자기 큰 깨달음이 왔다. 하지만 깨달았다고 바로 삶이 변하던가. 불교에도 돈오점수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단박에 깨달음을 얻어도(돈오) 점진적으로 수행(점수) 하지 않으면 해탈에 이를 수 없는 법. 마찬가지로 한 방에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이어지는 노력이 없으면 스쳐 지나는 영감에 그칠 수밖에 없다. 



말이 길었다. 글쓰기 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들끓었으나, 실제 글쓰기 모임을 열기까지 5주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둘러 말한 것이다. 팔로워 1,000명 남짓, 관련 경력도 없는 나에게 손 내밀어줄 사람이 있을까 하는 걱정을 누르고 용기를 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결과는? 현재 오글오글(오늘도 글 쓰고 오래오래 글 씁니다의 줄임말) 글쓰기 모임 1, 2기가 순항 중이다. 3기 개설을 요청하는 사람 수만으로 3기를 개설해도 될 만큼 문의도 제법 있다. SNS를 통한 수익화 성공! 뭐 이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글쓰기 모임으로 생긴 꿈과 희망, 좋은 사람들과 함께 그려가는 미래에 대해 말하자면 밤을 새워야 할 정도다. 그 정도로 북스타그래머에서 글쓰기 모임 운영자로의 변화는 운명적인 일이었다. 



평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버려지는 경험은 없다. 그러니 일단 해보자.', '나는 돈보다 설레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고, 눈앞의 성과가 아닌 먼 미래를 그리며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버려지는 경험은 없다. 모든 경험이 현재로선 실패 또는 성공으로 보일지라도, 인생 전체로 보면 성공으로 가는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온 우주는 나의 성공을 바라며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있기에, 내 마음이 설레는 곳으로 움직이다 보면 근사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지난 몇 개월의 여정이 그렇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할 때 목표는 도서 인플루언서였지만, 가다 보니 길을 잃었다. 매일 아침 팔로우 수를 보며 좌절하기도 하고, 휴직 기간에 쉬지도 못하고 무슨 시간 낭비인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즐거워하던 서평 쓰기가 숙제가 됐고, 콘텐츠는 우왕좌왕하며 내 능력을 시험했다.



하지만 시작을 했으면 1년은 해보자라는 생각은 나에게 끈기를 심어 주었고, 의무감에 올린 서평은 글쓰기 모임 운영자로의 길을 열어 주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쌓아둔 인간관계가 글쓰기 모임에도 연결되 글로 삶을 나누는 글 친구를 만들어 주었다. 글 친구들의 찐한 글을 읽으며 1인 출판사 대표라는 꿈을 갖게 됐고, 콘텐츠 고민을 하느라 훑어보던 북스타그램 계정, 출판사 계정, 글쓰기 계정들은 꿈을 위한 자료집이 되었다.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일까? 잘 모르겠다. 그저 나의 모든 경험이 소중하다는 것은 정확히 알겠다. 



그래서 여전히 인스타그램을 한다. 오늘은 어떤 콘텐츠를 올릴까 매일 고민한다. 하지만 무게감이 달라졌다. 오늘 쌓은 콘텐츠가 어떤 재밌는 곳으로 안내할까, 오늘 쌓은 작은 벽돌 하나가 얼마나 멋진 인생의 성을 만들어낼까 기대하며 즐거이 임할 뿐이다. 



무엇이든 나를 믿고 시작하길 잘했다. 멈출까 나아갈까의 기로에서 멈추지 않길 잘했고, 나아가는 중에 만난 여러 갈래 길에서 되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가보길 잘했다. 이렇게 계속 가다 보면 얼마나 멋진 내가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설렌다. 역시, 가슴이 뛰는 일을 해야 한다.







그나저나 

'오늘 팔로워 수 1,114명?! 어제까지 1,115명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1,114명이라니! 팔로우 끊은 1명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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