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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혜정 Sep 18. 2024

무기력한 사람이 왜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을까?

올해 가장 잘한 일은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데려간 일이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 나는 올해 휴직을 하고 쉼과 함께 여러 도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크게 두 가지였는데 도서 분야 인플루언서가 되어 수익화를 실현해 보는 것, 두 번째는 나를 탐구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중 첫 번째, 도서 분야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선 꾸준히 책을 읽고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끈기가 부족할뿐더러, 휴직 초반이라 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언제나 그렇듯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로 했다. 콘텐츠 제작 모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물론 인스타그램 내에 콘텐츠 제작 모임이 여럿 있다. 심지어 몇 만 팔로워를 지닌, 소위 인스타그램 전문가들이 하는 콘텐츠 제작 모임이 많다. 그중에서 엄선해서 참여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매우 안타깝게도 내 안에서 시작되지 않은,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을 싫어한다. 즉, 자기 주도성을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그런 특성이 반영되서인지 교사라는 직업이 안성맞춤이긴 했다. 나의 학급, 나의 수업은 나만의 고유 영역이기에, 마음껏 창의적이고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모임에 가더라도 결국 운영자의 자리에 가게 되는 것도, 나의 노력으로 나와 공동체가 성장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불어 미루기 대장에 끈기 부족인 나의 특성상, 어떤 일을 제 때, 끝까지 수행하기 위해서는 내가 주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안다. 내가 이끄는 입장이면 부끄러워서라도 미루지 않고 해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콘텐츠 제작 모임을 만들고 싶어 고민하던 찰나, 소속 모임인 자경노에서 좋은 기회가 생겼다. 자경노는 '자기 경영 노트 성장 연구소'의 줄임말로 배움과 성장에 진심인 교사들의 모임이다.



자경노에는 크게 세 가지 활동이 있다. 하나는 '성장 모임'으로 한 달에 한 번, 내부 자원을 이용해 다양한 강연을 열어 교사들의 성장을 돕는 활동이다. 다음은 '독서 모임'으로 매 달 한 권의 책을 읽고 책에 대한 토의를 하는 활동이다. 마지막으로 '동아리 활동'이 있는데, 원하는 주제로 동아리를 개설하고 동아리원을 모집하면 활동비를 지원받고 한 학기 동안 활동을 할 수 있다.



자경노에서 생긴 좋은 기회란, 동아리 운영자 모집 공고였다. 북스타그래머들과 콘텐츠 제작 모임을 하면 좋겠지만, 인맥도 자본도 부족하던 참이라 자경노에서 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든 것이다. 거기다 자경노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글쓰기를 좋아하고, 모든 콘텐츠의 바탕이 글쓰기이므로 '글쓰기 모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끈기는 부족해도 추진력은 좋기에, 생각 즉시 실행에 들어갔다. 꾸준히 함께 콘텐츠를 만들자는 의미로, 오글오글(오늘도 글 쓰고, 오래오래 글 씁니다의 줄임말)이라는 동아리명을 만들고 활동 내용을 구상했다. 주 3회 글 쓰고 단체 톡방에 인증하기, 주 1회 나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질문에 답하기. 그리고 월 1회 정모에서 삶 나눔을 하고 함께 글쓰기 등이었다.



무엇을 창조할 땐, 그 사람의 가치관과 관심사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나도 오글오글을 만들면서 나의 관심사가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앞서 기술했듯 올해 나의 목표는 도서 분야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주 3회 콘텐츠를 발행하고 싶었고, 나를 탐구하는 교육 프로그램 또는 과정을 개발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질문에 답하기를 기본 활동으로 정했다.



이 활동들은 나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좋아하고 퍼스널 브랜딩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활동 내용을 담아 홍보 자료를 만들었지만, 사실 자신이 없었다. 한 명도 신청하지 않으면 어쩌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히 14명의 선생님들이 신청해 주었고 그렇게 오글오글이 시작되었다.






'어라, 내 생각과 다르네?'



오글오글 활동 첫 주.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나는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오글오글을 시작한 것인데, 선생님들이 쓰는 글을 보니 본격적인 글쓰기였던 것이다. 대부분 블로그로 인증 글을 쓰셨는데, 심지어 글은 왜 그리 다들 잘 쓰시는지! 책을 소개하는 카드뉴스나 짧은 글을 인증하자니, 선생님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타쌍피를 넘어 원소스멀티유즈를 지향하는 자칭 미니멀리스트이자 타칭 우려먹기 달인인 나는, 인스타그램 콘텐츠로 글쓰기 인증을 하면서 인스타그램을 키워 가려했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한 편의 글이라 지칭하기엔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낮춰 보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의 글이 너무 멋졌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수업 자료를 올리던 블로그에 '글'을 쓰기로 했다.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까 고민하다,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나를 탐구하는 교육 프로그램 만들기’가 다시 떠올랐다. 올해 과제 중 하나가 '나를 찾는 것'인데, 그 과정을 쓰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교육 프로그램 제작은 아니더라도, 일단 나에 대해 써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효과가 좋았다. 그동안 나는 교과와 관련된 많은 정보를 토대로 창작물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수업이 그랬고, 강의가 그랬고, 책이 그랬다. 나의 이야기를 하기보다 양질의 정보를 가공하고 논리적으로 조합해 사람들에게 떠 먹여주는 활동을 오랫동안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배운 점이 많다. 나도 성장했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것을 끊임없이 퍼주는 것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열심히 배우고 정리해야 하며 시간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나’라는 사람은 사라지고 ‘정보’만 남는다는 것이다.



가장 씁쓸했던 것은 수업 블로그를 운영하고 모임을 운영하면서였다. 나의 수업 자료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칭찬받는 것이 즐거워서 하나둘 나눠주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인간 손혜정은 사라지고 자료 자판기가 된 느낌이 들었다.



자료를 퍼가면서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블로그 댓글로 내일 공개 수업을 해야 하니 자료를 달라고 하고(정중하게 부탁하는 것이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심지어 이런 일방적 댓글들은 백 프로 비공개 댓글이다. 본인도 민망함은 아는 것일까...) 특정 선생님들께 공유했던 자료가 출처 표기 없이 책에 실린 적도 있으며, 모임에서 공유했던 학습지가 나도 모르는 사이 저 멀리 다른 지방 선생님께 공유되고, 내가 다니는 학교와 개인 전화번호를 알아내 자료 공유를 요구하는 선생님들까지 있을 땐 정말 지친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정보성 콘텐츠나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분명 또 자료 자판기가 되어, 필요할 때만 찾는 존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소진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함께 글을 쓰는 과정은 달랐다. 글 속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 이야기, 학교 이야기, 과거 이야기. 선생님들의 글을 읽노라면 한 '사람'을 얻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누군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글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인간 손혜정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부끄럽고 걱정됐다. ‘손쉬운 도덕 손쌤’으로 나를 기억하는 선생님들이, 수업 자료를 찾으러 왔다가 알고 싶지도 않은 '인간 손혜정'에 대한 글을 읽으면 글 테러를 당한 기분이지 않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이 또한 인간 방패로 극복할 수 있었다. 오글오글 선생님들이 남겨주는 좋아요와 공감 가득한 댓글은, 불특정 다수를 걱정하는 마음에 방패막을 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요동치던 마음,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미움, 교직에 대한 열정과 무기력 그리고 휴직까지. 나에 대한 많은 의문이 정리되니, 진정한 의미에서 나를 이해하고 돌보게 됐다.



나에 대해 쓰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지자, 그때그때 떠오르고 생각하는 것을 생중계하듯 쓰게 됐고 일상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게 됐다.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글에 담다 보니 잊어버렸던 다양한 감정들이 살아나고 멈춰있던 가슴도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렇듯 한 사람의 글에는 하나의 삶이 들어가 있기에, 함께 쓰며 서로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한 사람의 마음에 긴 사다리를 내리고 한 걸음씩 들어가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정보성 글을 쓰며 느끼지 못했던 '사람',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사실 휴직 초기에 나는 매우 무기력한 상태였다. 정확히는 무기력과 긍정에너지를 오락가락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긍정님이 찾아오면 이 일 저 일 벌여 놓았고, 무기력님이 찾아오면 벌여 놓았던 일을 하느라 더 무기력해졌다.



오글오글도 마찬가지였다. 호기롭게 시작해 놓곤 무기력이 찾아올 때면 '사람에 지쳐서 홀로 있기를 선택해 놓고, 왜 또 글쓰기 모임을 만든 건가' 싶어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무기력이 짙어질 때면 아무도 없는 산속에 숨어들어 자연인이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함께'와 '사람'의 결합은 힘이 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열심일 땐 열심히 한다고 응원해 주고, 내가 방황하고 있을 때면 힘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지 않으니 글이 쌓였고, 좋은 사람들이 남았다. 그 덕에 긍정과 무기력 사이를 너울 치던 파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한 물결이 됐다.



한참 무기력할 때였는데 어떻게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던 거지? 내가 생각해도 의아할 때가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에겐 잠깐 스치는 긍정님을 민감하게 알아채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때다! 하고 열심히 일을 벌이는 자세. 그 자세 덕에 오글오글이 만들어졌고 그 이후에 내가 한 일은 없다. 오글오글에 오글오글 모인 사람들의 긍정 에너지가 모여 멋진 일들이 펼쳐졌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올해 가장 잘한 일은, 긍정님이 찾아왔을 때 열심히 나댄 일이다.



오글오글의 첫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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