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 6시 정각.
미련 없이 PC 전원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예전 같았으면 눈치를 보며 남은 업무를 끄적이고, 주말에도 단톡방 알림에 신경을 곤두세웠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업무 외적인 열정은 1도 쏟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조용한 사직'이다.
퇴사하지는 않지만, 딱 내게 입금되는 월급의 무게만큼만 책임지겠다는 소극적 저항.
"열심히 해봤자 결국 호구만 된다"는 서늘한 진실을 깨달은 직장인들의 최소한의 생존 전략이다.
내 모든 걸 바쳐 회사를 짝사랑하기를 그만두기로 결심하자, 역설적으로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열정을 거두기로 했을까?
김혜진 작가의 소설 『9번의 일』은 회사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친 노동자의 서글픈 말로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20년 넘게 묵묵히 청춘을 바쳐 헌신한 주인공.
하지만 회사는 나이와 실적을 이유로 그를 밀어내며, 이름 대신 사번인 '9번'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회사를 위해서는 뭐든 해야 하고, 뭐든 할 수 있는 ‘9번 남자’."
소설은 묻는다.
생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시작한 일이 어떻게 사람을 깎아내리고 왜소하게 만드는지.
맹목적인 성실함은 "자신의 모습이 아닐 거라 믿었던 자신의 모습"으로 그를 변형시킨다.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은 대가가 한낱 교체 가능한 '번호표'에 불과하다면, 그 뜨거웠던 열정은 결국 자기 파괴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다.
조용한 사직을 두고 기성세대는 '요즘 애들의 이기주의'라 혀를 차지만, AI의 분석은 다르다.
이것은 일종의 '정서적 디커플링'이자 무너지는 자아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기제다.
회사가 개인을 숫자로 치환하고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뇌와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 회사와 자아 사이의 연결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다.
즉, 게을러진 것이 아니라 '일이 삶의 근간을 갉아먹는 실존의 모순'을 막기 위해 스스로 안전 퓨즈를 끊어버린 아주 합리적인 선택이다.
회사가 나를 9번으로 부른다고 해서, 내 인생마저 9번이 될 수는 없다.
죄책감 없이 칼퇴하기 : 받은 만큼만 일하는 것은 근로 계약의 정확한 이행이지 태업이 아니다. 회사가 은연중에 요구하는 '가성비 좋은 헌신과 열정 페이'에 속아 무급 야근을 자처하던 과거의 나에게 작별을 고하라.
감정의 방화벽 설치하기 : 회사에서 겪는 불합리나 상사의 짜증을 내 내면으로 직행시키지 마라. "나는 지금 로그인 상태의 플레이어다"라고 최면을 걸어라. 회사의 문제는 회사의 것이지, 내 영혼의 결함이 아니다.
진짜 나의 세계 구축하기 : 회사에 바치지 않고 아껴둔 그 에너지를 퇴근 후 '진짜 내 이름표'가 달린 일에 쏟아라. 남의 세계를 지어주는 데 청춘을 소진하는 대신, 나만의 세계관이 담긴 텍스트를 직조하고 창작하는 데 열정을 불태워라. 그것만이 조직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그렇다고 회사의 진짜 가족은 더더욱 아니다. 평온한 삶의 근간을 갉아먹는 '일'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늘부터 마음의 거리를 두기로 하자. 딱 받은 만큼만 일한다는 선언은 회사를 향한 복수가 아니라, 잃어버린 내 이름 석 자를 되찾기 위한 가장 따뜻한 자기애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