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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 Nov 11. 2021

유치함

나는 유치한 게 좋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걸 보면 너무나 행복해진다. 좋게 보면 순수한 걸 좋아하는 건지도.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아이들 좋아하겠다, 아이들하고 잘 놀아주겠다, 하는데, 아이들을 좋아하거나 잘 놀아주지는 못한다. 아이들하고 잘 놀아주려면 우선 어른스러워야 하는 것 같다. 아무리 내가 아이 같다고 해도 어른이 아이는 아니며,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스럽게 그들을 잘 다루는 어른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우선 어른스러운 어른이 아니라서, 아이들을 몹시 어려워한다. 마치 아이가 아이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서 뭔가 어색하다. 사실 동등한 관계가 아니고, 내가 무언가를 주는 입장에 대한 부담감이 든다. 누군가의 아이들을 만나도, 어른으로서 아이를 대하는 게 많이 어렵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은 마냥 천진하지만은 않아서 대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 본인의 자식들을 귀여워해 줄 수가 없어서 부모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언젠가 내가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 하나 보다. 그런데 아이를 낳으려면, 진짜 어른이 되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진짜 어른은 수많은 배려와 희생으로 숙성될 때 비로소 만들어질 테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생각하면 아이들도 똑같이 느끼겠지.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나는 종종 몹시 아이 같아진다. 아이처럼 울고 웃고 즐거워하고 행복해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그럴 때 마음이 참 편해진다. 물론 밖에서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하루의 반이 매우 고통스럽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직까지도 이러고 있는 걸 보면 타고난 성품은 고칠 수가 없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매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 때 설레고, 첫눈에도 설레고, 귀여운 동물들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고,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미소도 사랑하고, 아이스크림이나 폭신한 무언가를 좋아하고, 온갖 잡동사니들은 바보 같은 캐릭터들 투성이고, 꽁냥꽁냥한 음악에 꽂히고, 천진하게 늙어가는 할머니들을 사랑하며, 오글오글 순수한 로맨스 영화를 누구보다 즐기고, 날 바라보는 인형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데려오는 바람에 침대에 한가득 쌓여있다. 나는 특히 바보 같은 귀여움을 너무 좋아해서, 곁에 두는 사람들도 약간 말랑말랑한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다. 뭔가 순수한 매력(너드미인가..)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조용한데 귀여운 친구들한테 자꾸 말 걸고 그랬던 것 같다. 그냥 그들 안에 있는 게 안심된다.


나는 사람은 누구나 유치함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가장 약한 부분일 것이다. 나는  부분을 건드려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만드는  굉장히 좋아한다. 어려운 상대일수록 도전정신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편안한 분위기일  안심하고 어리광을 부릴  있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있으므로. 그게 쉽지 않은 사람들은 일찍 철이 들었거나, 그래서 본인을 끊임없이 통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응석을 부리고 기댈 곳을 찾는 무의식은 존재할 것이다. 밖에서는  티가  나서 나도 그런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요즘 좀 힘들다. 같이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데, 갈수록 그럴 대상들이 사라지는 것 같다. 이제 어리광을 부릴 나이도 한참 지났거니와, 누군가를 돌볼 나이가 되어서 선택지가 별로 없다. 특히 사무실이 너무 힘든데, 속 얘기를 나누고 감정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좀 숨이 막힌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매일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들 너무 의젓하게 잘 살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을 솔직하게 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대화를 나눌 때도 내가 생각하는 것들은 입 밖으로 꺼내기가 너무 유치한 것 같아 입을 다문다. 영양가 없는 생각들 뿐이라서 말하기가 민망하다. 그래서 특별히 대화거리를 찾기가 힘들고, 좀처럼 공통사를 갖기도 힘들고, 자꾸만 마음이 작아진다. 솔직히 좀 슬프다. 마음 편하게 유치한 생각들로 웃을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곳이 필요함을 많이 느끼고 있다. 계속 이렇게 지내다가는 언젠가는 뻥 하고 터져버리고 말 거다.


그래서 오늘도 키보드를 부여잡고 여기에 속 얘기를 털어놔본다.

내일은 또 열심히 어른인 척 하루를 살아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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