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같은 토요일 오전. 6살 하연이는 합창단 연습을 마치고, 점심시간에 안과에 가서 다래끼 진료를 받았다. 아빠는 하연이를 약국에 데려가서 티니핑 키즈 비타민을 사 주었다. 열 알의 비타민이 열 개의 각각 다른 티니핑 캐릭터 포장 안에 줄줄이 들어 있는 거였다. 5개 1줄, 5개 한 1줄 총 10알이었다. 인기 캐릭터가 들어갔으니 1알당 가격이 내가 먹는 비타민 1알보다 비쌌겠지.
집에 돌아온 하연이는 엄마에게 비타민 자랑부터 하였다. 아이의 마음 읽어 줄 센스라고는 없는 엄마는 비타민이 두 줄인 걸 보고, ‘하나는 동생이랑 나눠 가질 거야?’라고 했고, 하연이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 하연이는 비타민을 동생과 나누기 싫었다.
낮잠 자던 28개월 동생이 일어나자, 하연이는 엄마에게 말한 것이 있으니 일단 비타민 한 줄을 동생에게 나눠 주었다. 그런데 나눠주자마자 기분이 아주 나빠졌다. 동생한테 준 비타민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티니핑 캐릭터가 다섯이나 그려져 있었다. 주기 싫었고, 아까웠다. 막상 주고 나니 더 아까웠다. 주겠다고 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하연이는 발을 동동 구르고, 짜증 섞인 소리를 내며, '내 티니핑 비타민, 내 건데...' 했다.
엄마가 차려 준 애호박 달걀부침과 밥새우 주먹밥을 먹는 동안에도 하연이는 기분이 아주 엉망이었다.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엄마는 속상해하는 하연이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잔소리를 해 댔다.
“하연아. 다음부터는 엄마가 물어볼 때 처음부터, ‘엄마 나눠주기 싫어요. 저 혼자 다 갖고 싶어요.‘라고 대답해. 솔직하게 너의 의견을 말해주면 좋겠어. 네가 처음부터 주기 싫다고 했으면 엄마가 나눠주라고 안 했을 거야. 그런데 이미 네가 주기로 했으면, 준 다음에는 더 이상 그렇게 구시렁대면 안 돼. 그건 멋있지가 않아.”
엄마는 입만 살아서 청산유수로 말한다. 그렇지만 틀린 말이다. 엄마는 평소에 sharing is caring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면서, 나눠주기 싫다는 마음을 그런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하라니. 엄마가 하연이라면, 엄마도 엄마 눈치가 보여서 ‘네 엄마 나눠 줄게요. sharing is caring 이니까요.‘라고 대답했을 거면서. 그러고 나서 속 아파 했을 거면서.
밥을 먹는 내내 하연이는, 잃은(?) 티니핑 비타민 5알 때문에 기분이 아주 구렸고, 엄마는 구린 기분을 팍팍 티 내는 하연이의 모습에 기분이 구리고 못마땅했다. 저놈을 데려다 흠씬 혼내줄까, 아니면 억지로 이해해 주는 말을 해야 하나. 저걸 혼내? 감싸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남편이 같이 있어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엄마는 벌써 폭발해서 하연이한테 ‘이상한 걸로 짜증 좀 내지 말라 ‘며 ‘짜증‘을 냈을 것이다.
0-2세는 품 안에, 3-5세는 부모의 앞에서, 6-13세는 옆에서 있어줘야 하는 시기라는데, 옆에 있어준다는 건 어떤 뜻일까. 친구가 되어주라는 걸까. 어른으로서 ’ 옆에서‘ 응원해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바로 지금 내가 택할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모르겠다. 엄마는 아는 게 하나도 없다. 하연이의 엄마는 어리석다. 거의 늘 잘못된 선택만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뇌하던 순간, 엄마의 마음에 정답의 향기가 은은하게 번졌다. 혼내는 것도 아니고, 감싸주는 것도 아닌, 누가복음 6장 38절 말씀이 떠올랐다. 와우!
엄마는, 여전히 기분이 시무룩해서 여기저기 치대고 다니는 하연이를 불러다가 무릎에 앉히고 가만가만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연아.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한테 뭘 나눠주고서 기분 나빠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야. 우리는 죄인이거든. 우리 마음엔 하나님 닮은 마음도 있지만, 나쁜 마음도 있잖아. 엄마도 그래. 엄마도 엄마 친구 이모들이나 집사님들한테 뭘 나눠주고 나면, 아- 좋다 할 때도 있지만, 에이 괜히 줬나 봐. 아깝다, 주지 말 걸! 하거든. 우리가 예수님이 아니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너무 당연하지. 그런데 여기 봐봐. 하나님이 우리한테 이렇게 가르쳐주셨대. 누가복음 6장 38절 말씀이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주라. 그리하면 하연이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하연이에게 안겨 주리라."
"엄마. 하나님이 나한테 그럼 보석 상자를 주실 수도 있겠네?"
"그럼.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한테 요만큼 줬을 때, 우리한테 요만큼 주시는 분이 아니야. (팔로 원을 그리며) 이만-큼 주시지. 우리한테 가장 필요한 거, 우리한테 가장 좋은 것으로 돌려주셔."
"사랑이나 기도로 주실 수도 있겠네?"
"응. 하나님은 엄마한테, 하연이한테 뭐가 가장 필요한지를 제일 잘 아시잖아."
그 뒤로 하연이는 두 번 다시 티니핑 비타민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맞춰주지도, 아이를 나에게 맞추지도 않았다. 우리의 주파수가 하나님께 맞춰지니 문제가 스르르 녹고, 마음은 저절로 제자리를 찾았다. '아빠가 더 사주실 거야. 아빠가 더 준다고 했잖아 이제 그만해.' 그런 말들보다 정답에 가까운 나눔이었다.
나는 부모라는 역할을 맡았지만, 자녀에게 유익을 끼치기보다는 주로 해를 끼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나처럼 어리석은 인간도 오늘처럼, 없는 시간을 내어 기록해두고 싶은 대화를 할 수 있을 때도 있다.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번씩은 말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장 5절 말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