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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벳 Jun 25. 2024

샤넬백 대신 1000권의 책을 가진 여자

백부심 대신 책부심이 있답니다



‘그동안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에요.’ 지인 sns에 올라온 글과 함께 가지런히 놓여있는 샤넬백. 스스로에게 수고로움을 토닥이며, 잘했다 응원하고 싶어 선물했다는 명품백에 ‘정말 부러워요. 좋겠어요. 예뻐요. 빛이 나요.’ 찬사를 보내는 댓글들. 이어서 정말 멋지다는 한 문장을 남겼다. 진짜 예쁘네. 부럽긴 부럽다. 솔직히 진짜 부럽다. 들고 다니면 어떤 기분일까. 잠시 그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반짝반짝 빛나는 샤넬백을 들고 다니면 만나는 이들 마다 감탄을 하겠지. 매우 우아하고 세련된 여자가 된 듯한 기분일 거야. 그렇지만 잘 들고 다닐 수 있으려나. 가방이 긁히고 작은 상처라도 입으면 어쩌지. 엄청 속상할 텐데. 비가 오면 가방이 젖어 버릴까 봐 온몸으로 가방을 꼭 껴안고 달려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가방을 들고 있는 건지, 모시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샤넬백을 들고 다니면, 그에 어울리는 옷과 신발도 있어야 할 텐데. 옷장을 열어보니 한숨이 나온다. 결국 가방을 사면 옷과 신발까지 싹 사야 되는구나. 이게 샤넬백을 가지고 다닐 자의 무게감인 건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더 아끼게 된다. 아이와 남편에겐 그러지 않으면서, 어째서 나에게 만은 어려운 건지. 휘뚜루마뚜루 보세옷을 툭툭 걸치고,  남편과 아이에겐 브랜드 옷들 입히는 여자. 언제부터 일까. 뼛속까지 엄마로 아내로서 살아가고 있었음을. 중요한 걸 잃어버리고 있는 듯 한 기분에 사뭇 울적해졌다.






그런 내가 아끼지 않는 게 딱 한 가지 있으니 바로 책. 어릴 때부터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어릴 때 꿈이 서점 사장님이었을 정도로. ( 왠지 서점 사장님은 책을 실컷 읽을 거 같았다 ) 여전히 서점 가는 걸 좋아하고, 온라인 서점 어플로 신간과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는 게 즐겁다.




책이라면 꽉 막혀 있던 지갑도 턱턱 열린다. 분명 나에게 쓰는 돈인데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읽고 싶은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한 달에 한두 번 결제 버튼을 누를 때의 짜릿함이란. 어서 오기를 기다리는 설렘은 어떻고. 도착한 택배 박스를 열어볼 때의 그 두근거림과 손에 들고 사라락 한번 훑어보며 책내음을 즐기는 시간은 더 없는 기쁨이자 행복이다.




손 닿는 곳에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책들이 좋다




그렇다 보니 책 덕후, 책 수집가로 불릴 정도로 집에는 책이 넘쳐난다. 집안 곳곳 책장엔 다양한 책들이 자리하고 있다. 왜 그렇게 책을 사는지 누군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 그냥 책이 좋아. 표지도 좋고, 안에 담긴 가지런한 텍스트들도 좋고, 사진들도 좋고. 특별한 이유 없이 다 좋아.’라고 답하며 그저 순수하게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느꼈다.




책을 빌려볼 수는 있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내 책이 아니라 그런가. 기일에 맞추어 읽는 게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어 집중이 안되더라. 특히 책 한 권을 완독 하기보다 여러 권을 쪼개어 보는 습관이 있기에 더욱 부담. 그래서 마음 편하게 책을 사서 읽고 싶을 때 보는 걸 선호한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책을 읽고 싶을 때, 몇 걸음 이내에 꽂혀 있는 책을 찾아 꺼내어 읽을 때의 만족감. 누군가로부터 추천받은 책이 이미 나에게 있을 땐, 역시 그렇지 하며 은근히 따라오는 쾌감. 읽고 싶어 샀지만 당장 읽지 못해도 상관없다. 언젠가는 읽을 거니까 ( 그런 이유로 여태껏 못 읽은 책이 태반이다 ) 언제 다시 읽고 싶을지 몰라 버리지도, 누구에게 주지도 못한다.

아. 이렇게 지독한 수집욕이라니.



집 안 곳곳에 있는 책들. 이 외에도 곳곳에 책이 있다



책은 나에게 있어 친구이자 동반자이며 위로자이다. 어딘가에 홀로 툭 떨어져 있는 듯한 외로움, 혹독한 육아에 지쳐 낙담되는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 시간만큼은 모든 걸 잊고 탐닉하는 듯이 빠져 들었다. 소설, 자기 계발서, 역사, 심리학, 인문학, 에세이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어졌던 독서. 그와의 달콤한 시간이 우울과 슬픔에 허우적대던 나를 위로하고 비로소 살아가게 했다. 




나의 책 컬렉션에는 지나온 십여 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당시에 느꼈던 오롯한 감정들도 함께. 나의 세계가 온전히 담겨있는 분신이자, 나만의 아카이브. 이곳에 머물며 읽고 깊이 빠져들었던 시간을 지나며, 어느새 단단하게 자라나고 유연해졌다.




물끄러미 책들을 바라보니 최소 1000 권이상은 넘을 듯. 한 권에 만원으로 계산해 보아도 이미 샤넬백 하나는 훌쩍 넘고도 남는다. 샤넬백은 없어도, 세상에 하나뿐인 명품 책장이 있는 여자. 언제라도 손이 닿는 곳에반짝이는 존재감을 지닌 책들. 그리고 이렇게 책에 진심인 책덕후 아내에게 눈치 한 번 주지 않았던 배려심 넘치고 따뜻한 남편이 곁에 있다. ( 본인은 책을 전혀 읽지 않음에도 ) 마흔에 들어서야 비로소 깨닫는 중. 그러니 울적해하지 말자. 이미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며, 스스로에게 귀한 선물을 주고 있었으니까.









남편! 고마워요.
샤넬백 대신 원 없이
책과 함께 할 수 있게 해 줘서



저는 백부심 대신
책부심이 있는 여자랍니다






메인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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