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끝내라... 이 어미의 외침을 들어라~
이 이야기 들에 나오는 분들은 내게 문화적 영향을 준 사람들입니다
좀 더 이야기하자면 내 코드가 맞는 사람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내 영혼의 팬?
그냥 쉽게...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이 이야기들은 나의 십 대 말부터 지금까지 내 감성의 심연에 들어온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음악, 미술, 문학, 혁명가, 대중예술, 스포츠, 건축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글들입니다
그래서 깊이 없는 그저 내 감정, 내 마음대로 쓴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 둡니다.
우리나라에 80년대 중. 후반 한창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노동계도 잠자던 거인이 깨어난 것처럼 폭발하듯 올라왔고 예술 각 분야에서도 그랬고 미술계에서도 판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아는 그림 그리는 이들 몇몇이 그때 그녀를 알려주었었다. 그렇게 '케테 콜비츠' 그녀를 알았다.
그녀는 당시 독일 히틀러 치하에서 반전운동으로 몸을 바치고 또 판화로 세상을 고발하고 싸워나가는 어머니요 반전운동가요, 판화 예술가로 그녀를 보고 감명받던.. 그게 벌써 30여 년이 넘었다.
죽어가는 자식을 안고 절규하는 어머니, 부릅뜬 노동자의 눈, 팔다리 가느다란 아이들..
그녀의 작품에서 느끼는 전율들이다.
어떤 작가가 "삶이 공허하고 비루하게 느껴질 때 '케테 콜비츠'를 꺼내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뜨거운 불꽃처럼 살다 간 그녀이기에 그런 게 아닐까 한다. 내가 그녀를 알았던 80년대 말... 아마도 우리나라도 그렇게 뜨거운 시기였고 공허한 이념이나 무슨 주의가 아닌 삶 자체가 저항이고 투쟁이었던 그녀이기에
더욱 그녀에 대한 관심이 더 했던 것 같다.
'케테 슈미츠 콜비츠'는 독일의 판화가 이자 조각가로 1867년 당시 동프로이센의 쾨히니스베르크(지금 러시아령 칼리닌 그라드)에서 태어났다. 중산층 지식인의 계급으로 진보적인 사상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녀의 사상이 형성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녀가 태어날 당시 독일은 정치, 사회적으로 큰 변동을 겪고 있을 시기였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빈민의 증가, 주택난, 위생문제, 범죄증가와 같은 사회 문제들이 발생했으며 사회전반에 불안정한 분위기가 팽배해졌고 독일은 바로 세계 제1차 대전을 일으켰으나 1919년 패전으로 사회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결정적인 건 1차 대전 때 아들이 전장에서 사망했다는 것... 이 일로 그녀는 반전사상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된다. 그때 18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자원입대를 하고 곧이어 그 아들을 잃은 것이다. 아들을 잃은 어미의 분노와 크나큰 상실감이 있었지만 이내 그녀는 아들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넘어 반전 포스터를 제작하거나 전쟁의 광기를 알리고 참혹함을 고발하는 활동을 시작한다.
"우리가 전장에 내보내려고 아이를 낳은 건 아니다"
그리고 이번엔 나치가 집권하자 또 전운이 감돌며 젊은이들이 징발되기 시작했다. 이번엔 손자를 잃었다.
그래서 그녀는 평생 자애로운 어머니로는 살아갈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녀는 이후 민중의 시련과 고통을 안으로 끌어안으며 히틀러의 만행과 시대의 고통을 온몸으로 증언했다. 그녀는 전쟁, 빈곤, 억압받는 계층의 고통을 다룬 작업들을 진행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은 대개 어둡고 진중하고 무거운 느낌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크게 '어머니'와 '전쟁'이라는 두 이질적인 단어로 그녀의 작품을 말해주는데 '어머니'에서는 여러 명의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안고 있는 모습인데 각기 다 다르면서도 느낌은 비슷하다.
사랑스럽게 아이를 안고 행복한 느낌이 아닌 뭔가 절규하듯 하거나 바짝 마른 아이를 안고 있는 역시 마른
어머니... 전쟁의 고통과 혼란 속에서 어머니는 아이를 보호하려 하고 있거나 죽은 아이를 안고 절규하는듯한 어머니 상이 대부분이다. 어머니의 사랑과 보호 본능을 화사하고 뽀샤시한 느낌이 아닌 이러한 어둡고 무거운 모습을 통해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고 또 안에서 억누르는 듯한 강인함과 연민 등이 동시에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는 어머니의 강인함, 강한 모성보호 본능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무기력한 민중, 아들을 잃은 힘없는 어머니, 이기도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예술적 표현을 넘어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담고
있고 자신의 예술을 통해 관객들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이기도 했다.
전쟁에 대한 고발뿐 아니라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농민, 노동자들을 위한 작품활동도 활발히 했고 이는 1902년부터 1908년까지 <농민전쟁> 판화시리즈를 제작했는데 이는 1525년 독일에서 벌어진 농민전쟁을 배경으로 했으며 '직조공들의 행진'같은 노동자들의 연대와 투쟁을 다룬 작품시리즈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2차 대전 종전을 보름 앞두고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죽음을 맞이
했다.
어쩌면 내가 그녀를 처음 알았던 80년대 말의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비슷했기에 더 와 다았는지도 모르겠다.
터져 오르는 화산처럼 울산에서, 서울에서... 그렇게 각지에서 일어난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이 그때 그녀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아쉽게도 그 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그녀의 전시회를 가지 못했다. 그저 친구들을 통해 그녀의 삶에 대한 책을 접했었고 그 후 얻은 도록에서 그녀의 작품들을 보았을 뿐이었다. (예전엔 실천문학사에서 나왔는데 이 글을 쓰며 검색해 보니 현재는 풍월당이란 출판사에서 나왔다)
그런 그녀가 지금 다시 생각나는 것은 끝날 것 같지 않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차별 대량학살 같은 전쟁이 그저 먼 곳에서 벌어지는 남일 같지만 사실 그 안에는 자식을 잃고 가족을 잃은 우리네 어머니들의 통곡이 있을 것이고 우리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을 머리에 이고 사는 기분으로 지내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명분으로도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되고 전쟁과 가난은 얼마나 인간을 불안하게 하고 떨리게 하고 두렵게 하고 슬프게 하고 절망스럽게 하는지... 그녀를 통해 다시 한번 상기하 고픈 것이기도 해서이다.
[브런치북] 시골냥이들과의 날들 (brunch.co.kr)
[연재 브런치북] 개, 고양이 그리고 나 (brunch.co.kr)
[브런치북] 자두, 살구 이야기 (brunch.co.kr)
[브런치북] 어느 날 고양이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