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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작가 May 12. 2022

사라졌던(?) 친정을 찾았습니다

어느 이산가족의 감격 상봉기


"친정이 사라진 것 같아"


2019년 말쯤의 어느 날, 엉엉 울며 남편에게 말했었습니다.


아기 백일 기념 식사를 위해 서울에 올라오시기로 했던 대구 친정 부모님. 그런데 그날 두 분이 향한 곳은 기차역이 아닌, 병원이었어요. 그 무슨 하늘의 장난인지 딱 그때 췌장암 선고를 받게 됐던 아빠... 한쪽에서는 아기의 백일 축하 자리가, 또 한쪽에서는 항암치료가 시작됐었지요.

출산 후 우울증에 시달리던 내 증세는 그때를 계기로 훨씬 더 심해졌던 것 같습니다.


"친정이 사라진 것 같아"


왜 갑자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했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 한 마디를 내뱉고는 세상을 잃은 듯 대성통곡했었습니다.  

결혼하고 출산한 여자에게 친정의 의미, 엄마의 존재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이란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시는 것도, 핏덩이를 안고 내가 대구에 가는 것도 현실적으로 몇 년간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아픈 아빠도 현실이 버거울 엄마도 친정이 사라진(?) 나도 너무 불쌍해서 울기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뒤 되찾은 친정... 사라진 것은 제 우울증 외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모든 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오히려 더 따뜻해진 채로 말이죠.


 


작년 3월, 엄마의 칠순을 맞아 갔던 대구. 그 후로 코로나가 온 나라를 집어삼켰고 그런 와중에도 몇 번이나 내려가려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아기가 감기에 심하게 걸렸다든가 코로나 사태가 급격하게 악화됐다든가 그런 것들 말이죠.


그 후 우리에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친정 엄마는 당신의 엄마를 잃었습니다. 구순이 다 되신 외할머니가 노환으로 긴 여행을 떠나셨는데요, 이 또한 무슨 하늘의 장난인지 딱 그때 저와 남편, 아기까지 나란히 코로나 확진이 되어 장례식장에 갈 수도 없었어요. 심지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마저 발인을 하루 앞두고서야 전해 듣게 된 우리. 엄마는, 아기와 함께 먼 길 움직이기도 여의치 않을 텐데 괜히 미리 알려봐야 우리가 마음만 쓰게 될 걸 걱정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사실 우리도 온 가족이 확진됐단 사실을 엄마나 다른 친정 가족들에게 비밀로 했었답니다. 아픈 아빠와 할머니 사이에서 늘 동동거릴 엄마에게 우리와 관련된 그 어떤 걱정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사실은 할머니 돌아가셨어..."

"사실은 우리 셋 다 확진됐어..."

서로의 기막힌 비밀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잠깐 침묵했습니다. 


이제 함께 산 세월보다 떨어져서 산 세월이 길기 때문일까요, 딸은 엄마에게 엄마는 딸에게 조금이라도 걱정스러운 얘기는 꺼내지 않는 사이가 됐어요. 서로를 배려한 비밀이 많아진 그런 사이랄까요...


그렇게 무려 1년 3개월 여가 흘렀고, 지난주 드디어 친정에 다녀왔습니다.


남편이 쉬는 주말에 일정을 잡다 보니 용감하게도 어버이날이 낀 연휴에 길을 나선 우리 세 식구. 그래서 무려 6시간 이상을 차 안에서 보내야 했지만 한밤중, 함박웃음과 포옹으로 맞아 준 부모님의 온기는 귀향길의 고됨을 한 번에 날려주었지요. "잘 왔다" 그 한 마디에 모든 게 괜찮아졌습니다.


극심한 부작용에 항암을 중단하고 건강식과 운동, 긍정마인드로 암과 동행하길 선택한 지 1년 7개월쯤 된 아빠는, 아프기 전과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어요. 항암으로 다 빠졌던 머리카락들이 온전히 제자리를 찾았고, 염색이 몸에 좋지 않을 것 같단 이유로 그냥 방치했더니 백발이 돼 버렸지요. 그 모습도 참 근사했습니다.


큰 슬픔을 겪었던, 아니 아직도 겪고 있는 중일 엄마도... 참 우리 엄마답게 담담해 보였습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났던 꼬맹이가 그새 제법 '어린이스럽게' 커 있는 걸 보고 두 분은 연신 감탄을 하셨지요. 유독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는, 늘 휴대전화 속에서 (각도 조절 실패로) 이마만 보여주거나 희한하게 왜곡된 얼굴만 보여주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서웠는지 아빠 다리 뒤로 숨어버렸지만 할아버지의 하이파이브와 할머니의 악수 요청을 모두 쿨하게 받아들였어요.  


다음 날 아침. 친정 엄마와 남편, 아이와 아파트 놀이터에 갔습니다. 전원 속 아파트 단지여서 뛰어다닐 데도 많고 볼 것도 많아 아이는 무척이나 신이 나 보였지요.


남편과 아이가 노는 동안 엄마와 벤치에 앉았습니다. 바로 어제 만났던 것처럼 별 다를 것 없는 공기.. 어릴 때부터 허약해서 늘 애를 태웠던 막내딸은 어느덧 마흔이 넘은 엄마가 됐고, 희생과 헌신으로 숱한 세월을 보낸 엄마는 어느덧 칠순이 넘은 할머니가 됐지요. 바람은 세월 속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녀의 얼굴을 기분 좋게 쓰다듬었습니다.


엄마는 얼마 전 집에 다녀가신 서울 큰엄마가 전한 말이라며 '친정 도움 없이 아기 잘 키우는 네가 참 대견하다더라'라고 하셨어요. 아마도 당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겠지요. 핏덩이가 저만큼 사람이 되는 동안 많이 힘들었다는 얘긴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많이 힘들긴 했어도 원래의 생이 그런 거니 각자의 자리에서 그저 지금처럼 묵묵히 최선을 다 해 살자...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엄마는 몇 번 내 팔꿈치를 잡거나 허리를 안았더랬어요. 이제 막 만남을 시작한 연인들처럼 몽글몽글한 뭔가가 있었습니다.



늘 '언니 만들어줘' 했던 아이는, 찐 언니와 오빠의 등장에 조금 부끄러워하기도 했지만 곧 신나 했습니다. 한참 어린 동생과 온몸으로 놀아준 조카들. 혈육의 정이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서울로 돌아오는 길. 무려 열 시간 동안 차에 갇혀 있었지만 뭔가 마음이 뜨뜻했습니다. 딱 하루 있었을 뿐인데 오랜 시간 허했던 마음이 온기로 가득 채워진 느낌이랄까요. 사람도 들어갈 것 같이 큰 트렁크와 바리바리 들고 갔던 아기의 짐 가방들에 가족의 정을 넘치도록 담아왔습니다. 다음날엔 엄마가 싸준 반찬으로 안 먹던 점심밥을 다 먹고 출근했지요. 하루 종일 배가 불렀습니다.




여러분에게 친정은, 또 엄마는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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